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붕괴를 오직 경제적 요인에 의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련이 1991년 붕괴되기 전 이미 다른 민족들이 서로 분쟁하기 시작했었고, 소련 중앙 정부가 이러한 민족 갈등들을 해소하는 데 있어 제대로 된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다.

20세기 출범한 다민족 소련 정부가 일차적으로 손을 댄 문제는 아제르바이잔 영토 안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 Karabakh 혹은 Dağlıq Qarabağ)이었다. 이 지역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지역이라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공화국과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공화국 중 어디에 속할 것인지를 두고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던 중 소련 중앙 정부의 개입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에 속한 ‘자치 공화국’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후 오랜 기간 묻어뒀던 이 문제는 소련의 힘이 약해지면서 1988년에 다시 드러났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의 귀결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 공화국 의회가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공화국에 합병되고 싶다고 소련 중앙 정부에 접수하자 나고르노카라바흐 안에 있는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크게 반발했다. 이 계기로 시작된 과정에는 양쪽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소련 중앙 정부는 초기에 중립적인 모습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소련의 무기들이 전부 아르메니아 측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소련이 붕괴 되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두고 전쟁을 벌였다. 1994년에 체결된 휴전 조약으로 전쟁이 끝났지만, 결국 유엔을 비롯해 한국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는 아르메니아 점령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1 마나트의 앞면-뒷면 모습 (출처: banknote.ws)



이번 글에서는 이름마저도 생소한 아제르바이잔을 아제르바이잔 화폐로 소개하려고 한다. 아제르바이잔 화폐에는 인물 사진이 하나도 없고, 오직 상징적인 물건과 건물 그림만 있다. 2005년에 발행된 신권에는 1 마나트부터 100 마나트까지 지폐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하여 그 것을 앞면에서 소개하고, 뒷면에는 아제르바이잔 지도와 함께 전통적인 아제르바이잔 카페트 무늬를 실었다. 예를 들자면, 1 마나트의 주제는 음악이다. 그래서 1 마나트 앞면에는 아제르바이잔 전통적인 악기들이 소개되어 있고, 뒷면에는 하나의 전통적인 카페트 무늬를 넣었다. 다만 5 마나트와 20 마나트 뒷면에는 예외로 카페트 무늬가 없다.

5 마나트의 앞면-뒷면 모습



5 마나트의 주제는 문학이다. 그래서 5마나트 앞면에는 역대 유명했던 시인들과 소설가들의 동상들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 아랫부분에 아제르바이잔의 애국가가 쓰여 있다. 이와 더불어 5 마나트에는 신기한 사연이 뒷면에 실려 있다. 이 화폐의 뒷면을 보면 수도 바쿠에 가까운 고부스탄(Gobustan)에서 발견된 고대 로마 제국 비문과 현재 몽골에 있는 돌궐 비문이 있다. 돌궐과 고대 로마 제국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설명 드리려고 한다.

8세기에 당나라에게 멸망한 돌궐이 유럽 쪽으로 이주하기가 시작했다. 돌궐 사람들 중에 제일 강력한 부족인 오구즈(Oguz) 부족이 오늘 날에 중앙아시아를 잠시 다스렸고, 그의 후손인 셀주크 제국이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중국 동부부터 터키까지 커다란 영토를 약 200년동안 지배했다. 셀주크 제국이 아제르바이잔을 11세기에 정복하기 전까지 아제르바이잔은 한 때 고대 로마 제국의 무역 허브였었고, 캅카스 기독교 세력과 중동 이슬람 세력에 의해 번갈아가며 지배당한 영토였으며 다종교, 다민족 사회이었다. 셀주크 제국의 지배 이후로 그 지역에 있었던 사람들이 돌궐 혹은 오구즈 언어 중심으로 동화되었고 오늘 날의 아제르바이잔 사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오늘 날 아제르바이잔 사람들과 민족 이야기를 하면, 그들의 민족주의는 오직 혈통중심적인 것이 아니고, 동시에 영토 중심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오늘날 쓰고 있는 언어는 우랄알타이어족의 투르크어족 하에 오구즈어족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돌궐의 후손이라고 하기에는 좀 과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돌궐과 함께 한 때 아제르바이잔을 다스렸던 고대 로마 제국을 통해서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20 마나트의 앞면-뒷면



20 마나트 뒷면에는 예외로 카페트 무늬가 없고 대신 하리 뷸뷸(Xari Bülbül) 꽃 무늬가 보인다. 하리 뷸뷸 꽃은 아제르바이잔 문화에서 평화의 상장이기도 하다. 필자는 왠 갑자기 꽃이냐고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이 꽃이 지구상에 오직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핀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리고 20 마나트의 주제를 확인해 봤더니 ‘나고르노카라바흐’였다. 또 신기한 것이 20 마나트 앞면에는 전통 아제르바이잔 무기들; 칼, 투구, 방패가 있다. 20 마나트의 양면을 살펴본 후 나의 해석은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아무리 평화적으로 외교를 통해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를 풀려고 하지만, 결국 안 되면 전쟁을 통해라도 영토를 되찾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필자의 바람은 오랫동안 같이 살아왔던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를 평화적으로 외교를 통해 풀고, 지역의 안전이 깨지지 않는 것이다.

 

알파고 시나씨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온 알파고 시나씨는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각국 화폐들에 대해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 :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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