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싱가포르 화폐에 보이는 리관유의 사회 통합 정책

한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해외 지도자들 중 하나는 바로 싱가포르의 옛 총리 리콴유이다. 리콴유는 “한국을 번영시키겠다는 박정희의 강한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와 같은 발언을 했으며, 한국의 보수층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리콴유와 박정희가 자주 비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두 지도자 모두 강력하게 반공 정책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박정희와 리콴유는 모두 강력한 권력으로 자국의 경제 개발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두 지도자의 업적이 비슷하다 하더라도, 각자가 고민했던 문제들은 조금씩 달랐다. 박정희는 분단된 나라의 대통령이었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안보 문제가 존재했다. 반면 리콴유의 경우, 싱가포르는 분단국가가 아니었으므로 안보 차원에서는 다소 안심할 수 있었으나 또 다른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바로 사회 통합 문제였다.

싱가포르는 본래 말레이 민족이 살고 있던 영토에 속한 섬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 인도에서 많은 사람을 이 지역으로 끌고 왔다. 당시 말레이 지역에 인도계와 중국계 이민자들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인구 구성이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지역의 허브 역할을 했던 싱가포르에서는 중국계 인구가 다수를 구성했고, 말레이 인구는 소수가 됐다. 말레이 술탄국들은 1957년에 연방제로 통일을 한 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1963년에는 다른 말레이 식민지들과 연방을 하려고 했으나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실패가 있었다. 바로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 화폐 모두 앞면에는 1999년부터 말레이계 유솝 빈 이스학(Yusof bin Ishak)의 초상화가 실렸다. (출처: banknote.ws)

1964년 싱가포르에서 일어난 반무슬림 폭동 이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중앙 정부 사이에는 골이 깊었던 민족 문제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했다. 리콴유는 중국계가 대다수인 지역에서 독립 했지만, 그 땅은 정통적으로 말레이 민족들의 영토였다. 게다가 북쪽에는 무슬림 국가인 말레이시아가, 남쪽에는 인도네시아가 있었다. 중국계인 리콴유는 중국계 자국민의 민족주의적인 감정을 잘 다스리면서도 말레이 정체성을 가진 국민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마치 양날의 칼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리콴유는 국내 정치를 아주 예민하게 관리해 나갔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중국 느낌을 풍긴다. 그러나 국가 기관들을 살펴보면 말레이적인 특징들이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리콴유의 포용 정책이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싱가포르의 화폐이다.

1999년부터 모든 싱가포르 화폐의 앞면에는 말레이계인 유솝 빈 이스학(Yusof bin Ishak)의 초상화가 실리고 있다. 유솝 빈 이스학은 리콴유의 친구이자, 싱가포르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이러한 화폐 디자인 정책으로 리콴유는 말레이계 국민의 민족주의 감정을 해소시킬 뿐 아니라, 동시에 자신이 독재자가 아니었다는 메시지도 던지고 있다. 이것은 마치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마자 자신의 얼굴을 화폐에 담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달리, 위인들의 초상화를 실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권을 차지한 후 화폐에 자신의 초상화를 실었던 감비아의 야흐야 자메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보카사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확실하다.

다시 싱가포르 이야기로 돌아가지면, 싱가포르 화폐에는 4개 언어로 ‘싱가포르’가 쓰여져 있다. 중국어, 영어, 말레이어 그리고 타밀어이다. 이 4개 언어는 싱가포르의 공용어(official language)이다. 다만, 그 중 말레이어는 국어(national language)이다. 모든 화폐의 왼쪽 위에 두 마리 사자로 된 싱가포르 국장이 보인다. 국장에는 ‘유일신이 싱가포르를 지켜 주길 바란다’는 의미의 이슬람식 술어 ‘Majulah Singapura’가 쓰여져 있다. 이 문구는 말레이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단위가 큰돈; 10000 싱가포르 달러. (출처: banknote.ws)

싱가포르 화폐와 관련해 리콴유 이야기만 한다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마무리하기 전에 한 가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싱가포르처럼 말레이시아에 합류되지 않았던 브루나이는 싱가포르와 화폐가치가 같다. 예를 들어 1 싱가포르 달러는 1 브루나이 달러에 해당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단위가 가장 큰 돈을 스위스의 1000 프랑(한국 돈으로 113만원)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이보다 더 큰 화폐가 있다. 바로 10000 싱가포르 달러다. 1000 스위스 프랑보다 약 8배 가치가 높은 10000 싱가포르 달러는 한국 돈으로 환산했을 때 800만원을 넘는다. 다만, 국제 범죄 집단이 이 화폐를 돈 세탁에 많이 이용하면서 싱가포르와 부르나 이는 더 이상 발행하지 않고 있다.

 

알파고 시나씨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온 알파고 시나씨는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각국 화폐들에 대해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 :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