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에 사는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 집 앞마당에 옮겨 심었다. 이듬해 봄이 되어서 노란 개나리꽃이 필 것을 기대하면서 하루 하루 개나리를 지켜 보았다.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 덕에 가지와 잎은 한국에서 보다 무성했지만, 기다리던 개나리꽃은 피지 않았다. 첫해라 그런가 보다 여겼지만 2년째에도, 3년째에도 꽃은 피지 않았다. 그래서 왜 꽃이 안 피는지 알아보니 한국처럼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의 저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은 전문용어로 '춘화현상'이라 하는데 튤립, 히아신스, 백합, 라일락, 철쭉, 진달래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인생은 마치 춘화현상과 같다. 눈부신 인생의 꽃들은 혹한을 거친 뒤에야 피는 법이다. 그런가 하면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에 비해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의 수확이 훨씬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고 한다. 인생의 열매는 마치 가을보리와 같아, 겨울을 거치면서 더욱 줄기가 튼튼해져서 풍성하고 견실해진다. 마찬가지로 고난을 많이 헤쳐 나온 사람일수록 강인함과 향기로운 맛이 더욱 깊은 것이다.
60여년을 살아 오는 동안 아들을 하늘나라에 보낸 혹독한 겨울과 같은 힘든 일도 겪었다. 누구든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겪겠지만 사람마다 그 강도가 다를 것이다. 그 당시에는 더 이상 세상을 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니 어떻게 견뎌왔나 싶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야 되겠지만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 일을 겪고 보니 같이 있는 사람들과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들이 하늘나라에 가기 전 주가 추석명절 이었다. 어머니 집에 다녀 오는 길인데 명절이라 길이 막혀서 운전을 오래 하였다. 어찌나 피곤한지 중간 중간에 기지개도 켜면서 집에 오는 길이었다. 운전을 하다가 횡단보도에 신호가 걸려 서 있을 때 뒤에 앉아있던 아들이 그 작은 손으로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아들이 보기에도 아빠가 오랜 운전으로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도 그 아들의 마음이 예뻐서 그 손을 만져주었다. 아직도 그 때 그 아들이 어깨를 주물러 주던 그 감촉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들 보낸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속을 썩이는 자녀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보습을 보면, 마음속으로 그런 아들이 있다면 그런 것도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위해 본다. 이제 주위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본다. 그럴 때마다 살아있을 때 좀 더 잘 대해 줄 걸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같이 있을 때 좀더 잘 해주자고 다짐해본다. 그 사람이 언제 내 곁을 떠날 지 모르니까.
ⓒ최기웅 20170309 (kiung58@empal.com)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HRD를 공부했으며, 쌍용자동차 총무팀장, 인재개발팀장을 거쳐 현재 영업서비스 교육팀 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감성 칼럼니스트'로 사내외에서 리더십, 변화관리, 고객만족 등의 다양한 강의활동해오고 있다.
지은책: 내 마음의 한그루 感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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