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의 추억

입력 2017-03-06 09:58 수정 2017-03-06 17:06
요즘은 살기에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 자라오면서 이런 세상에서 살리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자라온 환경도 그리 좋지 못했고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발전할 줄도 몰랐다. 태어났을 때 아버님은 경찰로 계시다가 지리산 공비토벌 때 총상을 입어 퇴직하여 시골학교 일을 돕고 계셨다. 그나마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논과 밭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좀 나은 생활을 하였다. 집안 일을 돕는 분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그 당시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지역에 댐을 건설하면서 집안에 가진 많은 땅들이 물에 많이 잠기면서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지금도 물에 잠기지 않은 땅들이 조금 남아 있어서 이에 대한 재산세가 나오고 있다.

고생은 도시로 이사오면서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이사를 왔는데 시골생활과는 달리 모든 것이 돈이 있어야 하는게 도시생활이었다. 학교에 수업료도 내야하고 각종 준비물도 챙겨야 하는데 제 때에 내지 못했던 적이 많았다. 중학교 때는 수업료를 마감날까지 안 냈다고 불려나가서 기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 때 그 선생님이 잊혀지지 않는다. 날짜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 냈는데 불려나가 혼이 나니 참으로 슬펐다. 그 선생님은 나중에 교장선생님까지 된 것을 보았다.

나만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주위에 어려운 친구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 그 당시만 해도 연탄보일러를 이용하여 난방을 할 때였는데 돈을 아끼려고 재료를 사서 어머니와 둘이서 안방에 보일러를 설치했던 적이 있었다. 그전에 기술자들이 설치하는 것을 유심히 보았더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래는 옆 개울에 가서 퍼서 리어카로 실어왔다. 방바닥을 잘 정리한 다음 틈을 잘 메우고 그 위에 모래를 덮고 플라스틱 배관을 깔았다. 수평이 안 맞으면 보일러가 부글부글 끓기 때문에 기술자들이 하는 대로, 작은 관을 이용하여 수평을 잘 맞췄다. 그 배관 위로 다시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서 미장을 잘 하여 마무리 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른 다음 연탄을 피우고 배관에 물을 넣어서 테스트를 했는데 대성공이었다.

한번 시도해본 보일러설치가 잘 되어서 자신감이 생겨서 집안의 모든 방의 보일러를 어머니하고 둘이 다 설치하였다. 그 당시에 나보다 더 어려운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집안 보일러설치를 못하고 있었다. 친구 아버님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혼자서 삼남매를 어렵게 키우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보일러재료와 시멘트를 사놓으라고 하고 주말에 공사를 하자고 제안하였다. 주말에 공사를 진두지휘하여 전에 경험한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몇 번 하다 보니 기술자처럼 능수능란하게 설치할 수 있었다. 아무리 공사를 잘 하여도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실패여서, 어느 정도 마른 다음 연탄을 피워 확인을 했는데 방도 따뜻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친구와 친구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셨다. 이것이 소문이 나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자기집 보일러를 설치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그 친구는 선생님이 되어 동생들을 대학교까지 다 가르쳤고, 지금은 해외에 나가서 교수를 하고 있고 동생은 안과의사, 막내는 선생님이 되었다.
ⓒ최기웅 20170303 (kiung58@empal.com)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HRD를 공부했으며, 쌍용자동차 총무팀장, 인재개발팀장을 거쳐 현재 영업서비스 교육팀 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감성 칼럼니스트'로 사내외에서 리더십, 변화관리, 고객만족 등의 다양한 강의활동해오고 있다.
지은책: 내 마음의 한그루 感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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