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도도한 산, 오서산을 탐하다.

입력 2017-02-27 20:33 수정 2017-02-27 20:33

28인승 리무진버스에 탑승인원은 열아홉이라~ 참으로 널널하다. 항공 비즈니스석이 부럽지 않다. 그 바람에 배낭들 조차 어엿하게 좌석을 차지하고 말았으니.. 산행을 추진한 멤버들이 들으면 뚜껑 열릴 일이겠지만 말이다.

 

모교 동문산악회에서 1년에 두어번 원행에 나선다. 올해 첫 원행으로 보령 오서산이 밴드에 공지되어 있었다. 오서산은 산림청 지정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속해 있다. 지금껏 100대 명산 중 예순네곳을 접수했다. 아직 서른여섯 곳이 소생을 기다리고 있다. 100대 명산만 야금야금 찾아 다녔더라면 아마도 버얼써 쫑 냈을 터~ 그러나 물 흐르는대로, 발길 닿는대로, 다시말해 마음 내키는대로 걷다보니 100 명산 완주도 더디고, 백두대간길 역시 85% 정도에 멈춰 있다.
그런데 때마침 동문 모임에서 오서산을 찾는다니,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100 명산 중 한 곳을 거저 줍는 기분이 들어 밴드 공지에 잽싸게 참석 꼬리를 달았다.

집결 장소인 양재역 서초구청 앞, 사방이 깜깜한데 산악회 버스들이 줄지어 산꾼들을 기다리고 있다. 익숙한 풍경이다. 서초구청 사거리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빵빵하게 틀어 놓은 스팀으로 차안은 온기가 가득한데 몇 안되는 좌석은 군데군데 펑크다. 동문 후배 산대장이 민구스럽다며 머릴 긁적인다. 오붓해 좋다고 위로?했다. 이를 두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라던가.

서해대교 행남휴게소에 잠시 들러 몸무게를 줄인 다음, 다시 버스에 올라 취침모드로 전환했다. 몸쏠림을 느끼며 눈을 떴다. 창밖으로 장승들이 도열해 '반가워유' 인사한다. 버스는 막 홍성 상담주차장에 멈춰섰다. 요며칠 매섭던 날씨는 남쪽이라 그런지 푹해진 느낌이다.

 

방한복장 점검하고, 신발끈 조이고, 스틱 길이 맞추고... 일행들의 산행 전 준비 동작이 마치 전장으로 향하는 전사들처럼 비장해 보인다. 내리쬐는 아침햇살을 맞받으며 산자락으로 들어섰다. 산 중턱 절집, 정암사까진 포장길이 나 있으나 지름길인 숲길을 택했다.

 

마을길을 지날 땐 푹했으나 응달진 산속은 을씨년스러웠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정암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담주차장에서 2.5km 걸어 만난 정암사는 고려때 창건된 고찰로 수덕사의 말사이다.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산꾼들 쉬어가는 장소로 딱 좋다.

 

여기서부터 '마의 계단'이랄 수 있는 1,600개 목계단이 시작된다. 어떤 이는 이 계단길을 일러 세걸음 뗄 때마다 욕이 한번 나온다고 '삼보일욕'이라 했다. "옛길이 그리운 분은 계단을 이용하지 마시고 데크로드 옆 옛 등산로를 이용하세요" 540 계단 지점 안내판에 쓰여진 내용이다. 그러나 '그리운 분' 생각에 잔설이 얼어붙은 옛 등산로를 택했다간 자칫 화를 소환할 수도 있으니 각자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까칠한 계단길이란 게 사실, 올려다 보면 지치기 십상이나 계단에 코박고 걷다 보면 반드시 쫑난다. 필연이다. 1,600 계단이 쉼없이 이어진 게 아니라 숨이 가빠질만 하면 완만한 흙길이 나와 숨도 고르고, 데크 쉼터도 있어 서해를 조망하며 다리심을 충전할 수도 있다. 결론은 지레 겁 먹을 필요 없단 얘기다.

 

'마의 계단'을 벗어나 능선에 올라 섰다. 홍성 들판 저머너로 서해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갈대와 서해 조망은 오서산의 백미이다. 가슴 뻥 뚫리는 상쾌함에 감성이 말랑말랑해지는 그런 기분이다.

 

서해를 품은 오서산은 예로부터 까마귀가 많이 살아 까마귀 보금자리(烏棲)라고 불린데서 유래되었다. 지리적으로는 충남 보령시 청라면과 청양군 화성면, 홍성군 광천읍을 경계하고 있다. 또한 오서산(790.7m)은 금북정맥의 최고봉이자, 서대산(904m), 계룡산(845m) 다음으로 높아 충남 3대 고봉으로 산꾼들 사이에 입소문이 자자하며 천수만 일대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등대 구실을 해 뱃사람들은 '서해의 등대산'으로 즐겨 부른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응달진 산비탈엔 잔설이 희끗하나 햇살이 내려앉은 양지녘엔 봄기운이 느껴진다. 겨울은 꼬리를 내리고 봄은 기지개 켤 준비를 끝낸 듯 하다.

 

능선 길목에 목 데크로 단장한 너른 쉼터에 잠시 배낭을 내렸다. '오서전망대'다. 원래 오서정이란 쉼터 정자가 있었으나 몇해 전 태풍에 부서져 버려 정자를 대신해 목데크를 넓게 깔아 놓았다. 일몰시간이 가까워지면 데크 위는 서해 낙조를 즐기려는 백패킹족들의 야영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동문산악회나 시산제 때는 약속이나 한듯 단체인증사진을 습관처럼 박는다. 우리 일행 역시 이곳 오서전망대에 이르더니 '**동문산악회'라 적힌 플랑카드를 꺼내 펼쳐 들었다. 우르르 플랑카드 뒤에 늘어섰다.  그리고 의식(儀式)인양 판박이 사진을 박았다.

 


정상을 중심으로 약 2km의 민둥한 주능선은 오서산의 백미, 억새밭이다. 가을을 은빛 찬란하게 보낸 억새는 겨울이면 금빛으로 변해 또한번 존재감을 과시한다. 금빛 억새 사이로 난 능선길은 스멀스멀 백사가 기어가는 듯 하얗다. 산꾼들의 발자국에 잔설이 다져져 쉬 녹지 않은 탓이다.

 

능선 남쪽에 있는 정상을 향해 걷다보면 동쪽으로는 청양과 홍성 들판이 포근하게 다가서고 첩첩 산능선들이 아득하게 눈에 들어온다. 또한 서쪽으로는 천수만과 대천 앞바다의 장쾌한 풍경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그야말로 눈(眼)의 호사다.

 

정상표시석을 배경으로 하는 인증샷은 역시나 인내를 요했다. 출근길 전철 승강장의 북새통과 흡사하다. 일행 중 한 명이 스맛폰을 들고서 '하나둘셋'하면 정상석에 붙었던 사람이 잽싸게 교체된다. 이 역시 산정에서만 볼 수 있는 판박이 인증샷 모습이다.

 

정상 아래 양지바른 산자락에 자리를 폈다. 각자 먹을거리를 끄집어 냈다. 그야말로 십시일반이다. 12첩반상이 부럽지 않다. 파란 하늘을 지붕삼아 산중성찬이 펼쳐졌다. 굿보다 젯밥에 관심 가듯 산행보다 먹을거리에 신경을 많이 쓴 듯 하다. 산행을 핑계로 동문 선후배끼리 만나 권커니 자커니하는 게 곧 동문 산악회 모임 아니던가.


 
주말 산에 푹 빠져 사는 트레킹 매니아로서 산행 관련 기록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山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 월간지(3종:월간 봉제기술/배관기술/플랜트기술)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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