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영리한 자는 불평하지 않으며...

에라스무스 |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자작나무
 
‘영리한 자는 불평하지 않으며 현명한 자는 흥분하지 않는다.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의 책은 어느 것이나 이처럼 날카로운 통찰의 문구로 가득차 있다. 전기(傳記) 작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책들은 주인공의 삶을 일방적으로 찬양하지 않는다. 업적이 아닌 삶,특히 내면에 주목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츠바이크는 위대했으나 행복하지 않았던,자신의 이상과 노력에 대해 보상받기는커녕 철저히 소외당한,그러면서도 일과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매진함으로써 세상의 변화에 기여한 이들의 생애를 추적했다. 그는 또 방대한 자료와 세밀한 심리 묘사를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의 소용돌이가 한 개인을 어떤 식으로 몰아가는지 실로 꼼꼼하게 그려냈다.

《에라스무스》(자작나무 펴냄)는 물론 《마젤란》 《발자크》 등 그의 전기소설들이 알려지지 않은 개인사와 함께 당대의 세계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건 이런 까닭이다. 폭력과 전쟁을 증오하는 중립주의자로서의 외로움을 엄청난 양의 집필로 달래려 했던 에라스무스에게 자신을 투영시켰던 걸까. 《에라스무스》는 츠바이크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에라스무스(1466~1536)는 뛰어난 문법학자 · 종교사상가 · 작가였다. 기독교 윤리와 철학을 바탕으로 모든 독단과 편협에 맞서 유럽 문화의 정신적 통일을 추구한 이성의 대변자인 동시에 교육자였다. 종교개혁의 기반을 제공했으나 피를 부르는 투쟁의 선봉에 선 마르틴 루터(1483~1546)와 노선을 달리함으로써 결국 현실세계의 패배자로 남았다.

책은 이런 에라스무스의 일생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다룬다. 신부의 사생아로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얼굴에 체구도 왜소했던 그가 어떻게 유럽을 대표하는 인문주의자로 우뚝 서게 됐는지와 평생 균형을 잃지 않던 그가 왜 망하는 길인지 뻔히 알면서 루터에 대한 반박문을 내게 됐는지까지 특유의 섬세하되 도발적인 문체로 기술한다.

에라스무스는 자유인이었다. 신부였지만 평생 사제복을 입지 않았고,오갈 데 없던 말년에 교황으로부터 추기경 자리를 제안받고도 거절했다. 그는 자기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큰소리로 맞서는 대신 조용한 방식으로 처리했으며 평생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은 채 읽고 썼다. 명작 ‘우신예찬’은 바로 그 같은 노력에서 얻어진 박학다식함의 결과다.

그의 목표는 폭력 배제,특히 전쟁 폐지였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자들에게만 전쟁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은 그의 생각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책은 이처럼 평생 화합과 조화의 인간을 추구했던 그가 루터에게 패한 이유로 민중에 대한 외면과 환상 및 결단력 부족을 꼽았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인물의 한계를 꼬집으면서도 작가는 에라스무스의 말을 빌려 선동을 일삼는 자를 경계한다. ‘개인은 군중을 격정에 몰아넣을 순 있으나 고삐 풀린 격정을 수습할 능력은 없다. 이성을 지닌 자라면 선봉에 서기보다 광신에 맞서야 한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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