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ㅣ 괴테 지음 ㅣ 정서웅 옮김 ㅣ 민음사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었다. 세상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쓰디쓴 눈물을 흘리며 울고 싶은 건 하루가 다 지나도록 한 가지 소망도 이루지 못한 데다,모든 쾌락에 대한 예감은 집요한 비판에 줄어들고 가슴 속에 약동하는 창조의 열정도 오만가지 일로 방해받기 때문이다. '

온갖 학문을 섭렵했는데도 모르는 것 투성이에 돈도 명예도 없다는 자괴감에 휩싸인 파우스트의 한탄이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런 그를 유혹하겠다고 선언하고 신은 허락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며,'착한 인간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알고,게으른 인간을 구하자면 악마의 역할도 필요하다'면서.

괴테(1749~1832)가 희곡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2세 때다. 59세에 1부를 마치고 76세에 2부를 시작,죽기 1년 전에 마무리했다.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목도한 이의 만년작이어선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가요 바이마르공화국 재상을 지낸 대문호의 역작은 시 · 공간을 초월하는 판타지극이자 잠언집으로 읽힌다.

널리 알려진 것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가 순진한 처녀 그레트헨을 망가뜨린다는 내용의 1부지만,실은 2부가 더 흥미진진하다. 1부가 개인의 빗나간 열정에서 비롯된 비극에 초점을 맞췄다면,2부는 세대 갈등과 권력의 속성,무분별한 지폐 발행과 재개발 사업의 부작용 같은 경제사회 문제까지 들여다본다.

파우스트는 약하고 이중적인 인간의 전형이다. 극 초반,젊어지기 위해 마녀의 약을 먹을 때만 해도 그렇다. 다른 방법은 없느냐는 물음에 악마는 '있다. 당장 들에 나가서 밭 갈고 땅 파면 된다. 가축과 더불어 살고 밭에 거름을 주라'고 답하지만 파우스트는 '익숙하지 않고 괭이를 들고 싶지도 않다'고 외면한다.
트로이의 헬레네를 꼬드기는 말은 기가 막히다. '한 번뿐인 운명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십시오.존재한다는 건 의무입니다. 순간일지라도.' 이런 솜씨도 아들에겐 안 통한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현기증나는 계단에 올라 고통에 찬 영역을 그리워하는구나. 우리는 네게 아무것도 아니냐'고 하소연하지만 소용 없다.

지폐를 찍어 국가 부도를 막는 대목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 않나 싶다. '폐하,부채란 부채는 모두 정리됐으며 고리대금업자의 성화도 진정되었나이다. 모든 고통을 운으로 바꿔 놓은 이 역사적 문서를 보십시오.' 문서는 간단하다. '이 지폐는 일천 크로네로 통용될 것이다. 제국의 영토에 매장된 무진장한 보화를 담보로 충당한다. '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마지막으로 대규모 간척사업을 벌이는 중에도 나타난다. 필요한 땅을 갖기 위해 살던 사람을 강제 이주시키려다 불을 내 죽게 만드는 게 그것이다. 파우스트는 "바꾸려고 했지 빼앗으려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비극은 돌이킬 수 없다. '인간'에 대해 궁금할 때 이 책을 펴게 되는 이유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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