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광야의 늑대, 광장의 봄

<사진: 김선미>

유사 이래 피지배자들은 이상-현실의 상호 교환과 그 안에서 되풀이되는 좌절의 역사에 순종했다. 이들에게는 정치권력의 역사만 존재했지 정작 자신들이 주체인 ‘모든 사람의 역사’를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철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경제, 노동 없는 부, 인간성 없는 과학, 인격 없는 교육, 윤리 없는 쾌락, 헌신 없는 종교(간디가 규정한 7대 사회악)가 역사를 좌지우지했으며 정의를 난도질했다.

유교에서 혁명이란 측은지심이 없는 군주를 제거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맹자는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한다. ‘잔적’한 사람을 필부라 이르니 만약 그러한 왕이 있어 살해된다면 ‘일개 필부인 왕 누구가 주살됐다’는 말은 들어도 ‘군주가 시해됐다’는 말은 듣지 못한다”라고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불공정한 게임 규칙과 그릇된 권력 구조, 불합리한 사회 현상이 만연하고 그것을 용인하는 통치자는 측은지심이 없는 자요, 죽어도 주살됐을 뿐 시해됐다는 말은 들을 수 없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인 칼 포퍼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국민의 손으로 통치자를 뽑는 것보다 잘못 뽑은 통치자를 끌어내리는 데 있다”고 했다. 빵을 미끼로 표를 구걸했던 권력이 백성의 배를 채워주기는 커녕 되레 뺨을 때렸다면 이는 분명 잘못 뽑은 통치자로 심판받아야 마땅하다.

2017년 1월 중순 대한민국 권력자와 부역자들은 어떠한가. 국정을 농단한 ‘큰 악마’는 잔인하고 사악한 얼굴을 여전히 숨기고 있으며 그 곁에 붙은 ‘작은 악귀’들은 조작을 넘어 애국 행세하느라 바쁘다. 판사는 ‘큰 도적’의 영장을 기각하고 ‘작은 도적’은 이에 박수를 보낸다.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다. 실낱같은 변화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백성의 얼굴이 오히려 화끈거릴 지경이다. 과연 정의라는 놈이 숨쉬고 있기나 한 것일까.

이젠 분명해졌다. 톨레랑스(관용)는 무슨 개뿔의 톨레랑스! 진정한 휴머니즘은 무차별적 톨레랑스가 아니라 ‘언톨레랑스에 대항하는 언톨레랑스’뿐이다.

광야의 늑대들이 광장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 Jose Carreras – Misa Criolla 중 Kyrie(Ariel Ramirez 작곡)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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