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 ㅣ 카트린 파시히 외 지음 ㅣ 김영사

정보와 재미,메시지를 다 갖춘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셋 중 두 가지만 있어도 기쁘고 고맙다. 저자 카트린 파시히는 독일의 소설가 겸 칼럼니스트다.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 수상자의 저서답게 책은 잘 읽히고,종종 고개를 끄덕이며,지나온 길과 걸어갈 길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미국발 경제 위기로 뒤숭숭한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지침도 준다. 여행 중 길을 잃었을 때의 대처법이 그것이다. 저자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서든 인생 여행에서든 문제가 생기는 건 길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길 잃은 상황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그런 일을 막으려면 가끔 길을 잃어보는 것도 괜찮다는 주장이다. 다들 기계적인 일상에서 작은 실수라도 할까 부들부들 떨며 휴가 계획조차 군사작전 세우듯 짜지만,무작정 떠나보면 낯선 곳에서 저녁 노을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이드와 지도,안내책자에서 벗어나면 주변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에 따르면 길을 잃으면 주변 지역을 확대경으로 살피듯 관찰하게 되고 부족한 방향감각을 보완하기 위해 두뇌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게 된다. 중요한 건 길을 잃지 않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패닉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이다. 길을 잃으면 당황한 나머지 패닉 상태에 빠져 바로 앞에 놓인 위험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그러나 본능에 몸을 맡기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본성은 생각하는 것보다 감각적이어서 위기에 맞닥뜨리면 숨겨졌던 방향 찾기 능력이 발휘된다. 길을 잃어본 사람은 겸손해지고 독단적이지 않은 태도를 지니게 된다. 길은 협정이다. 여러 갈래 가운데 하나가 만들어지면 모두 그대로 따라간다. 정해진 길은 주변 환경이나 방향감각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과 본능을 방해한다.
몸을 낮춰 구석구석 살피는 사람이 몸을 똑바로 세워 앞만 보고 걷는 사람보다 주변 환경을 더 세세히 알게 된다. 물론 길 잃기가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실패를 통해 뭔가 얻고 배우지만,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불행한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실패와 모험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 더 많다.

길을 잃게 만드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앞에서 비나 눈이 들이치거나 바람이 불면 얼굴을 돌리다 그만 방향을 잃는다. 안개 또한 방향을 잃게 만든다. 안개는 시야를 좁히고 바위 등 주변 지물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보이게 한다. 안개가 한순간에 걷히는 일은 없다. 짙은 안개 속에서 배우는 건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안개는 자신을 훈련시키는 요소다.

저자는 길을 잃고 위험에 빠졌을 땐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사람일수록 이리저리 헤매다 길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분노 또한 방향감각을 잃게 만드는 만큼 길을 잃었을 땐 당황하지 말고 일단 침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론은 극히 쉽고 간단하다. "무엇보다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 "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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