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낭만닥터 김사부' 스틸. 사진=SBS.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극본 강은경, 연출 유인식 박수진)는 부용주라는 본명을 버리고, 시골의 자그마한 돌담병원에서 김사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의사가 주인공이다. 한석규가 맡은 김사부가 실은 신의 손과 같은 수술 실력을 지닌 외과의사 부용주였다는 사연이 드러나면서, 9일 김사부가 왜 김사부로 불리기 시작했는지 드디어 공개되었다.

김사부는 부용주를 존경하던 장현주(김혜준 분)가 부용주를 스승으로 받아들이며 붙여준 별명이다. 입원해있던 장현주는 부용주가 자신을 “김아무개”라고 하자, 수시로 “김아무개 선생님!”이라 부르며 각종 수술법에 대해 질문을 해 댄다. 장현주의 열정에 탄복한 부용주는 어느새 장현주에게 수술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건네며 제자로 삼기 시작하고, 장현주는 그런 부용주를 “김아무개 선생님” 대신 “김사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사부(師父)의 사전적 의미는 ‘스승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사부를 이름삼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름은 자신을 호명해주는 언어다. 곧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이 된다. 사부로 불린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 누가 보아도 스승으로 살아가겠다는 사명감과 자신감의 발로 아닐까. 14년전 장현주가 죽은 뒤, 거대병원을 그만둔 사실에 대해 김사부는 “부용주는 비겁했고 침묵했고 도망쳤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사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아픔을 잊지 않고, 누군가의 스승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겠다는 결심에 다름 아니었을 터.

지난해부터 막장드라마보다 더 믿기 어려운 뉴스에 몰두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스승의 부재(不在)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업의, 학교의, 정부 부처의, 나라의 리더가 보여준 지극히 이기적이고 불성실하며 무책임한 모습에 우리 모두는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졌다.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인기를 끄는 이 시대에 ‘낭만닥터 김사부’가 20% 넘는 시청률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김사부가 보여주는 리더의 조건은 현실에서 보는 리더와는 너무나 다르다. 첫째, 김사부는 후배를 위해 총대를 멜 줄 아는 리더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게 하고 다리를 절단하게 한 철부지 환자의 엄마가 돈을 무기로 도리어 큰 소리를 치자, 윤서정(서현진 분)은 “돈이 실력이고 엄마가 스펙이고...”라고 기가 막혀한다. “어쩌다 너같은 인간이 큰소리치는 세상이 되었는지”라는 대사는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윤서정을 불러 환자의 엄마에게 사과를 하라고 말하는 외과과장 앞에서 김사부는 “45도 정도로만 사과하라”며 윤서정을 보호한다. 뿐만 아니라, 강동주(유연석 분)에게 거짓 사망진단서를 종용하는 거대병원 원장을 찾아가 주먹을 날리며 “아이들을 그냥 두라”고 맞짱을 뜬다.
둘째, 김사부는 도전을 하는 리더다. 폐암에 걸린 신회장(주현 분)에게 인공심장을 교체하는 수술을 감행한다. 물론, 하루를 살더라도 편하게 숨을 쉬고 싶다는 신회장의 의지가 있었지만, 웬만한 자신감과 도전정신이 없이는 나서기 어려웠을 터. 외상 전문 병원을 짓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또한 자신의 야망이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이 수술을 제 때 받기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리사욕을 위해 무리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이익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리더가 바로 우리가 원하는 리더일 것이다.

셋째, 김사부는 숲이 아니라 나무도 볼 줄 아는 리더다. 리더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 거시적인 일들을 하다보면, 자그마한 일들은 참모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할 수 있거나 사소한 일은 위임하는 것이 전반적인 생산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리더 역시 사람이다 보니, 자칫 사소한 변화나 포인트를 챙기지 못해 결과적으로 큰 그림조차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김사부는 후배들의 미묘한 표정까지 감지해내며 겉으로는 '츤데레'이지만 속으로는 챙겨주는 세심하면서도 따뜻한 리더다. 강동주가 병원장에게 거짓 사망진단서를 쓸 것을 강요받는 자리도 복도의 공기가 다른 것을 감지하고 알아챌 정도다.

김사부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리더일까. 강은경 작가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기획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가치가 죽고, 아름다움이 천박해지지 않기를..시인 고은이 쓴 편지글 중에 있는 말이다. 이 시대 죽어가는 소중한 가치들, 촌스럽고 고리타분하다고 치부되지만 여전히 우리 모두 그리워하는 사람스러운 것들에 대한 향수들, '나는 지금 왜 이러고 살고 있는지' 길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용기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SBS 연기대상을 수상한 한석규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다.

 

 
이재원 문화평론가
한양대 실용음악과, 정보사회학과 겸임교수
전 텐아시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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