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전 그 글귀를 지금 읽어도…

입력 2011-08-02 09:00 수정 2011-08-02 09:00
리어왕·멕베스 | 셰익스피어 지음 | 을유문화사
 

"지닌 걸 다 보여주지 말고,아는 것보다 덜 말하고,가진 것보다 덜 빌려주고,가진 걸 내기에 다 걸지 말고,술과 여자를 멀리하고,집안에 얌전히 있으면,그러면 부자가 되는 거야." "이득을 바라고 널 섬기거나 허식으로만 따르는 사람은 비가 오기 시작하면 폭풍우 속에 널 혼자 남겨두고 짐을 쌀 거야."(광대가 리어왕에게)

셰익스피어(1564~1616)의 작품은 어느 것이든 시 · 공간을 초월하는 잠언으로 가득하지만 '리어왕'은 특히 더하다. 글은 쓰여진 지 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읽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두 딸에게 쫓겨난 뒤에야 막내딸의 진심은 물론 춥고 배고픈 백성의 삶을 생각하게 되는 리어왕의 독백과 그런 왕에게 광대가 하는 말 또한 한마디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그뿐이랴.부모 · 자식 혹은 형제가 갈등을 빚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권력과 돈을 둘러싼 싸움이 얼마나 추악한지 등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신과 같은 눈을 가진 작가가 있다면 바로 셰익스피어일 것'이라거나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가 아닌 영원에 속하는 작가'라는 찬사는 바로 그런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리어왕'은 크게 두 축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막내딸 코딜리어의 진심을 외면하고 고너릴과 리건 두 딸에게 전 재산을 물려준 리어왕이 그들에게 처절하게 내몰리는 과정이요,다른 하나는 재산을 노린 서자 에드먼드에게 속아 적자이자 큰아들을 내쫓은 글로스터 백작이 두 눈을 잃어버리고 파멸하는 과정이다.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아버지에 대한 고너릴의 대사나 에드먼드가 이복형 에드거를 모함하기 위해 쓴 편지 내용은 노소(老小)의 관계란 게 동서고금 모두 다르지 않다는 걸 일깨운다. "어리석은 노인네 같으니라고.이미 줘버린 권위를 휘두르려 하다니.내 단언하건대 늙은 바보들은 다시 아기가 되는 거야.망령이 났을 땐 비위도 맞춰야 하지만 야단도 쳐야 해."

"노인을 공경하도록 강요하는 건 한창 때인 우리한텐 너무 가혹한 거야.우리가 너무 늙어 재산이 있어도 즐기지 못할 나이가 돼서야 유산을 물려받으니 말이다. 그 노인네는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받아주니까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거야."

리어왕이 두 딸에게 퍼붓는 악담은 자식으로 인해 상처받은 부모의 비통한 심정을 대변한다. 하늘을 향해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못된 자식을 낳아 이마엔 주름,뺨엔 눈물로 인한 고랑이 생기게 해달라'는 게 그것이다.

리어왕과 코딜리어,글로스터 모두 죽음을 맞는 이 작품은 분명 비극이다. 그러나 탐욕에 눈먼 이들 또한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이나 리어왕이 끔찍한 고통 뒤에 세상에 대해 눈뜨는 대목은 그처럼 어두운 내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아.집 없는 머리와 굶주린 배,너덜너덜한 옷으로 어찌 이렇게 무자비한 폭풍우를 견딜 수 있겠느냐.나는 이런 일을 너무 등한히 했구나. "

또 하나,제 마음만 믿고 부친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은 코딜리어의 비극과 위험한 상황을 피해 몸을 낮췄던 에드거의 승리는 이 작품을 삶의 교본으로 여기기에 부족함이 없게 만든다. '머리 넣을 집이 있는 사람이 머리 좋은 거야'라는 광대의 말도 그렇고.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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