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풍요 속에 영혼이 가는 곳은…

입력 2011-07-05 09:00 수정 2011-07-05 09:00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지음 | 황금가지
 

'예술은 정치나 도덕 등 예술 외적인 것이 아닌 예술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 '19세기 말 탐미주의는 이 같은 강령에서 비롯된다. 오스카 와일드(1854~1900년)는 바로 이 탐미주의의 대표작가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뒤 탁월한 재기(才氣)로 눈부시게 성공하지만 동성애 문제로 수모를 당하다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의 유일한 장편이다. 잡지에 연재된 뒤 부도덕하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평에 시달렸지만 그는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도덕적이거나 부도덕한 작품은 없다. 작품은 잘 쓰여지거나 못 쓰여질 뿐'이며 '예술가의 일은 현실에 없는 것,있어도 못 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란 주장이었다.

책은 환상과 추리가 뒤섞인 기묘한 분위기와 섬세한 묘사로 가득한 가운데 세상사의 본질을 꿰뚫는다. '인간이 관대하다고 믿는 건 이웃이 내게 도움이 될 만한 미덕을 지녔다고 믿고 싶어서다. 잔액보다 많은 액수를 인출해야 할 때 은행원을 칭찬하고,나는 안 털겠지라는 희망에 강도에게서도 좋은 면을 찾아낸다. '

주요 등장인물은 셋.예술의 절대성에 모든 것을 거는 화가 바질 핼워드와 아름다움만이 가치라고 믿는 헨리 워튼,관능과 쾌락에 몸을 맡기는 도리언 그레이다. 마냥 엄숙한 체하는 세상의 위선과 획일성에 대한 작가의 반발이었을까. 책은 바질이 그린 도리언의 초상화를 보고 놀란 헨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로 시작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지성의 표정이 비치는 데서 끝난다. 지성이란 일종의 과장된 양식이라서 어떤 얼굴이든 지성이 어리는 순간 조화의 아름다움은 사라진다. '도리언은 배우 시빌 베인을 유혹하곤 차버린다. 울며 매달리는 시빌에게 눈물조차 짜증난다며 돌아선 날 초상의 입가엔 잔인한 조소 같은 게 드리운다.

초상의 변화를 감지한 그는 잘못을 반성하지만 그녀는 자살하고 없다. 도리언은 '선의의 결단은 언제나 너무 늦게 내려진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한다. 이후 그는 수치스런 삶에 따른 어둠은 초상화에 맡긴 채 자신은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비밀스러운 쾌락,거리낌 없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겠다고 생각한다.

변치 않는 외모로 여성들을 농락하는 등 온갖 죄를 저지르는 동안 초상은 자꾸 일그러진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젊음을 샀다는 소문이 돌고,이를 듣고 찾아온 바질이 그림을 돌려달라고 하자 그는 바질을 살해한다. 착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뒤에도 초상이 그대로 있자 그는 속죄하기보다 그림을 없애기로 작정한다.

초상은 양심이자 영혼이니 이를 없애면 경고도 사라지고 평화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가 칼로 초상을 찌르는 순간 비명이 울리고 달려온 하인들은 늙고 추악한 시체를 발견한다. 책은 흥미진진한 가운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물질적 풍요와 화려한 외관에 매달리는 사이 영혼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면서도 흘러간 청춘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으로 흔들리는 마음에 도리언의 후회는 위안과 채찍으로 다가선다. '아름다움은 가면일 뿐이고 청춘은 비웃음 같은 것이다. 젊음이란 게 기껏 무엇이던가. 파르께하니 설익은 시간,얕은 감정과 병적인 생각의 시간이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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