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

우생학을 창시한 영국의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튼(1822~1911)은 한때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자질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1907년 어느 봄날 런던을 떠나 서부 플리머스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목적은 가축 시장을 방문해 우수한 유전적 특성을 측정하고 품종을 개량하려는 데 있었다.

골튼의 발걸음은 한 가축·가금류 품평회장에 멈춰섰다. 그곳에서는 소의 무게를 알아맞히는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살찐 소 한 마리가 무대 위에 올려져 있었고 군중은 한 장에 6펜스씩 하는 티켓을 사서 소 무게 추정치를 적어냈다. 실제 무게에 가장 근접한 사람에게 상금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은 800여 명으로 직업과 지식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다. 골튼은 현명한 사람과 보통 사람, 우둔한 사람이 섞여 있으니 반드시 잘못된 답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진행자에게 티켓을 넘겨받아 통계를 내봤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참가자들이 써낸 추정치는 평균 1,197파운드. 실제 소 무게는 1,198파운드였다. 소 무게 맞추기 내기를 통해 게임 참여자들의 무능력함을 증명하고자 했던 골튼의 의도는 보기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결국 “구성원들이 특별히 박식하거나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집단적으로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특별히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집단을 지배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과학 잡지 <네이처>에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한 ‘여론’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골튼의 경험은 몇몇 사람의 뛰어난 머리보다는 서로 소통하고 협업했을 때 발휘되는 대중의 지혜가 훨씬 더 위력적인 문제 해결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사례는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집단은 가능할 수 있다는 ‘집단 지성’의 개념을 설명하는 데 종종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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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단 지성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치열하게 작동하고 있다. 국민들이 구태 정치권을 ‘되치기’하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국민이 정치에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네트워크를 만들고 요구들을 정리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최근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밝혀지는 ‘촛불’이 여론의 최전선을 형성했다.

이달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100만이 훨씬 넘는 군중이 모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세월호를 기억해 주세요”를 외쳤으며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와 “성과연봉제 폐지”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종로, 시청앞, 무교동, 청계천, 남대문에서 분출된 다양한 목소리들은 광화문이 가까워지면서 “내려와!”라는 거대한 함성으로 바뀌었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들판이 출렁거리고 강물이 넘실댔다.

광장에 쏟아져나온 함성의 기저에는 국민 자존감의 상실과 오래 고통받고 살아온 피지배자로서의 분노가 도도히 흘렀다. 역사의 방향을 뒤로 되돌리고 싶지 않은 진지하고 절박한 소망이 배어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소리의 역사는 장소의 역사이며 거기 모인 사람들의 모든 축적된 역사였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요,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는 소설가 이병주의 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날의 촛불은 오욕의 역사와 ‘거짓 신화’의 뇌관을 해체하는 횃불이 되었다. 단호하고 숭고했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요한복음 1장 5절)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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