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면체로 이루어진 입체 도형이 세 개라는 플라톤의 증명을 우주에서 찾으려고 했던 학자가 있으니, 바로 요하네스 케플러다. 케플러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태양계 행성이 다섯 개밖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는 이 행성들의 궤도를 연구하면서 플라톤의 정다면체 이론과 딱 맞아 떨어지는 비율을 우주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거의 성공할 뻔한 것은 맞다.

 

르네상스 시대에 플라톤을 재발견했던 사람은 케플러만이 아니다. 처음으로 도형기하학을 활용하여 원근법을 구사한 화가들이 있었고, 모든 주제를 섭렵하고자 했으나 서른한 살에 요절한 잡학박사 피코 델라 미란돌라도 있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원형론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연상케 한다. 그는 신이 각 동물에게 선험적으로 그 동물을 결정짓는 그 어떤 속성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토끼는 추위를 막아주는 털가죽을 받았고, 박새는 고양이를 피할 수 있게끔 날개를 받았다. 그런데 인간의 차례가 되고 보니 신에게는 이제 줄 만한 게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것도 받지 못했으나…… 대신 자유로이 살아갈 운명이라는 점에서 여타 동물들과 구별된다고 할까.

 

플라톤은 모델, 즉 세계를 단순화하는 심적 구조를 창안한 인물이다. 우리는 모델을 통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필요에 따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지금은 컴퓨터 모니터가 동굴의 암벽을 대신한다. 대신 이걸 잊지 마시길. 플라톤의 이론에 따라 동굴 속 그림자가 실재가 아니듯, 비즈니스 모델의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도표 역시 실재가 아니다.

 

특정한 범주의 생각 체계를 단순화시킨 모델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경제학에는 콘드라티예프 파동처럼 특정한 매개변수들을 통해서 어떤 주기성을 파악하는 모형들이 있다. 마케팅 세미나에 가본 적 있는가? 아마 고객의 기대를 순차적 단계로 파악하는 매슬로 피라미드 같은 모형들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이 피라미드는 즉각적이고 생리적인 만족, 안전, 소속감, 타인의 인정, 자기 가치관의 실현이라는 순서로 인간의 욕구가 발전한다고

본다. 심리학은 또 어떠한가. 교류 분석 모형이 있는가 하면, 남녀 관계의 차이를 화성과 금성의 긴장 관계로 설명하는 모형도 있고, 융의 심리 유형론에서 영감을 얻은 MBTI 모형도 있다.

 
2호선의 출발역은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를 조화시키고자 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us, 마지막 역은 ‘평균인’개념을 도입하고 체질량지수(BMI)를 고안한 벨기에 통계학자 아돌프 케틀레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면 화이트헤드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 플라톤은 서양 철학의 시조요, 레퍼런스요, 최초의 연출자다. 혹시나 여러분 중 2호선에서 존 로크John Locke의 이름을 발견하고 좀 놀랄지도 모르겠다. 사실 경험론의 개척자 로크는 모든 면에서 플라톤과 상반되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크는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여러 개념들이 경험을 초월하여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관념에 대한 이론을 개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관념론, 즉 이데아론은 영어권에서 형상 이론으로 통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관념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 ‘에이도스eidos’는 실제로 형상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플라톤의 책들은 꽤 읽을 만하다. 아주 옛날에 쓰인 책이라 말투나 표현이 낯설긴 해도 그의 사상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누구라도 그의 책을 읽으면 주요한 명제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플라톤의 책을 실제로 읽는 독자들이 별로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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