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기 짝이 없는 이 세상에서 다만 손암 선생만이 나의 지기(知己)였는데 이제는 그분마저 잃고 말았구나. 지금부터는 학문을 연구하여 비록 얻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 상의를 해 보겠느냐.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가 없다면 이미 죽은 목숨보다 못한 것이다. 네 어미가 나를 제대로 알아주랴, 자식이 이 아비를 제대로 알아주랴, 형제나 집안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랴, 나를 알아주는 분이 죽었으니 또한 슬프지 않겠는가? 경서에 관한 240책의 내 저서를 새로 장정하여 책상 위에 보관해 놓았는데 이제 그것을 불사르지 않을 수 없겠구나.

 

 

위 글은 다산 정약용이 둘째 형님 정약전이 죽었다는 부음소식을 듣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 있는 글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실려 있다. 손암은 정약전을 지칭한다. 다산 정약용의 형제들은 비운의 삶을 살다가 갔다. 셋째 형님 정약종은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했고, 둘째 형님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를 떠나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둘째 형님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 결국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다산 정약용은 나이 40대 초반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무려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마치는 생애를 살았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누구에게 신임을 얻고, 인정을 받고, 산다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나를 알아주는 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는 흔히 나는 그를 안다고 하고, 그도 나를 안다고 말을 하지만, 엄밀히 보면 다산 정약용이 둘째형님 정약전이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아,나를 알아주는 자가 이제는 없구나” 라고, 마음 아파하는, 그런 사람을 갖기란 쉽지 않다. 다산 정약용이라고 주변에 사람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만한 인물이라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다산 같은 큰 인물도, 진정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형님 한 분 밖에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진정으로 나를 알아주는 자는 흔치 않음을 알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다산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왜,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그런 사람 하나 정도는 있었기에 말이다.

 

우리들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많은 부분이, 나를 알아주는 자가 있었으면 하고, 그렇게 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될 수만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알리려하고,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많은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를 올바르게 참으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내 주변에 어떤 인물이 살다가, 죽거나 이별을 한다면 흔히 잠간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고 괴로운 정도이지, 다산 정약용처럼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가 쓴 많은 책들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을 수 도 있다.
 

나를 알아주는 자가 친구이든,선배이든,후배이든,동성이든,이성이든, 가족이든 상관없이, 그를 생각하면 내가 힘이 생기고, 어디서 있든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자체가 나의 삶의 큰 위안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 한 사람이라도 나에게 있다면 그는 잘사는 인생일 것이다. 군중 속에 고독이라는 말이 있듯, 주변에 사람들은 적지 않고 많은데, 관계는 적지 않고 많이 맺고 있는데, 정말 나의 진정성을, 진실을 알아주는 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나의 고민을, 나의 노력의 열매를 함께 의논하고 상의 할 수 있는 자가 있는가? 요즘표현으로 하면 진정한 멘토를 만들고 있는 가이다. 다산에게 형님 정약전 같은 사람 하나쯤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글쓰기를 좋아하는 목사입니다. 몇년간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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