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까치밥


  ‘월화수목 금금금’ 일했었습니다.기자 노릇에 휴일이 따로 없기도 했지만 한때 주 7일 신문을 발간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주5일제와 상관없이 신문은 주6일 나오다 보니 격주로 일요일에 출근합니다.대체휴일을 쓰라지만 그게 말처럼 쉬우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글 쓰는 일이라는 게 남이 대신 해줄 수 없다 보니 논설실에서 일한 10여년 동안에도 1주일 연속휴가를 내보지 못했습니다. 기껏 해야 사나흘 가는 휴가조차 그 전에 며칠치를 미리 써놓느라 밤 늦게까지 일하곤 합니다. 그래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제때 퇴근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퇴근시간이라는 게  따로 없다시피 했으니까요.

  편집국 데스크 시절엔 밤 10시 이전 퇴근이 어려웠고, 새벽 2시30분까지 당직국장 근무를 하고도 아침 8시30분이면 출근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무슨 기운으로 그렇게 했을까 궁금할 정도입니다. 명색이 엄마인 제가 그렇게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혼자 지냈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구요.

  저는 그랬으면서도 딸아이가 야근 때문에 늘 늦는 걸 보면 그야말로 속이 터집니다. 부모의 이기심일까요. 이태백도 모자라 이구백이라는데 다행이 취업해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싶다가도 밤 10시까지 회사에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일하는 걸 보면 울화가 치밉니다.

  남들처럼 유학을 보냈어야 했나,싫다고 하든 말든 교사를 하도록  닥달했어야 했나,어떻게든 외국회사에 취업하도록 밀어부쳤어야 했나 등등 온갖 생각에 머리가 어지럽기도 하구요.아이가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 소화가 안된다고 할 때면 일한답시고 아이들 교육에 무심했던 저 자신이 얼마나 밉고 원망스러운지 가슴을 쥐어뜯게 됩니다.

  어쨌거나 아이는 평생 ‘성실’밖에 내세울 게 없다고 믿었던 저를 닮아서인지 꾀 안부리고 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거기까진 괜찮은데 불규칙한 식사가 탈입니다.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채 출근하는데 저녁 식사시간도 엉망인 듯합니다.야근을 하더라도 식사는 제때 하라고 채근하는데도 사정이 여의치 않은지 밤 10시 이후에 들어와서도 주방을 기웃거릴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세상만사 늘 그렇듯 아이가 찾는 먹거리도 필요할 땐 없다는 겁니다. 뭔가 남겨놓은 날은 식사를 하고 왔다며 그냥 지나쳐 아까운 음식을 버리게 되고, 남겨놓지 않은 날엔 꼭 배 고프다며 주방을 찾습니다. 그럴 때 아이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까치밥이 없네.” 자신을 위해 조금씩 남겨놓는 음식을 까치밥이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까치밥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남겨놔야 맞습니다.먹고 안먹고는 그 아이의 몫이니까요. 가을철 까치밥으로 남겨놓는 감은 눈이 내릴 때까지 그대로 있다 마르거나 얼어서 떨어지는 수도 흔합니다.

  예전 우리 부모님들은 식시시간에 집을 비운 식구를 위해 꼭 따로 상을 봐놓곤 했지요.저도 그래야 마땅하겠지요 바쁘다,음식이 남으면 아깝다 등은 핑계일 겁니다.그래도 저는 아이에게 말합니다. “까치밥을 먹으려면 미리미리 연락을 해라. 오늘은 저녁을 집에서 먹을 거라고. 그래야 준비를 하든지 남겨놓든지 할 수 있다”구요. 

   부부 사이에도 같다고 봅니다. 밖에 있으면 언제쯤 귀가하겠다거나 식사는 어떻게 하겠다고 연락하는 게 도리겠지요.그래야 기다리는 사람이 식사 준비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고 기다리느라 초조한 것도 덜할 테니까요. 
 
  까치밥 먹기는 회사 생활에서도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외출할 땐 언제쯤 돌아오겠다,맡은 업무는 언제쯤 끝낼 수 있겠다 등을 상사가 묻기 전에 미리미리 보고하는 습관을 들이면 상사가 궁금함을 참다 못해 독촉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이 줄어들겠지요.

  보고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얼른 끝마치고 보란 듯이 내놔야지.”  그러다 시간을 놓치고 끙끙대는 동안 상사의 독촉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중간보고를 하고 나면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상사는 상사대로 진행과정을 알게 돼 마음이 편해지구요.보고를 잘하다 보면 뭔가 떨어지는 게 있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까치밥처럼요.

  <까치밥>
 밤 10시 반
 허겁지겁 들어온 딸
 냄비 뚜껑 들었다 놨다
 냉장고 문 열었다 닫았다

 “오늘은 까치밥이 없네”
 가슴 미어지는데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
 “그러게 연락을 좀 하지
 제때 먹고 일하든지”

 시무룩해진 아이
 제 방으로 들어가고
 속 상한 에미
 TV리모컨만 꾹꾹
 볼륨 잔뜩 높아지고.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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