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물었습니다.남자의 로망은 무엇인가? 답은 여러 가지였습니다.아들 아이는 '쌍권총'이라고 답했고 사무실에선 '근사한 오픈카'라는 답도 나왔습니다.옆에 아리따운 아가씨를 태운 채 해변도로를 달릴 때라는 상황조건을 덧붙여.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탈출!"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그렇구나. 나만 탈출을 꿈꾸는 게 아니었구나. 다들 비슷하구나.참으로 오랫동안 탈출을 꿈꿨습니다. 일과 가족,크고 작은 욕심 등 나를 얽어매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던 것이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땅 남자들도 그런 꿈을 꾸고 있었던 겁니다.

  로망이란 실현 가능한 것보다 그렇지 못한 것인 수가 많습니다.실현 가능하면 로망이 아니겠지요.남자의 로망이 탈출이란 얘기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반영한 것일 테지요.가장, 아들, 아버지, 누군가의 상사이자 부하직원, 친구,동료 등 수많은 역할에 매여 하루하루 꼼짝 못하는 현실 속에서 어디로인지도 알 길 없는 탈출을  꿈꿔보는 것이겠지요.

   문득 안타까운 생각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학창 시절엔 자나깨나 공부에 시달리고,졸업하면  취업 걱정에 마음 졸이고, 어찌어찌 취업하면 상사 눈치 보랴 앞뒤좌우로 경쟁하랴 정신없이 내달리면서,잘난 아들이자 능력있는 남편과 아빠가 되기 위해 자존심과 오기 따윈 가슴 깊이 파묻거나 저멀리 내던진 채 살아야 하는 이땅 남자들의 모습이 떠오른 까닭이지요.

  어쩌겠습니까.마음같아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거나 "한번뿐인 인생,마음대로 살라"고 소리치고 싶습니다. 저 역시 그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니까요. 그렇지만.......일에서든 가정에서든 의무와 책임은 굴레요 족쇄임에 틀림없지만 주어진 소임을 다할 때 얻게 되는 기쁨과 즐거움도 있습니다.

  서글프고 가슴 아파도 스스로를 달래고 함께 살아가는 상대를 이해하고 안쓰럽게 여기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요. 뭐든 힘겹다 여기면 더 힘겹고 견딜 만하다 생각하면 견뎌지기도 하는 게 세상살이 아니던가요. 

   <탈출>

 아, 부러운 빠삐용
 '쇼생크 탈출'의 앤디는 어떻고
 눈 앞에 어른거리는.
 앤디와 레드가 만나던 그 푸른 바닷가
 
 그토록 간절했던
 탈출,
 이뤄졌다 싶은 순간
 나를 내려다보는 ,
 수많은 낯선 눈길들
 노려보고 째려보는
 
 소스라치게 놀라 버둥거리며 눈 뜨자 
 여기저기
 정겨운 사물들.
 가슴 가득 밀려드는 
 이 안도감의 정체는?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