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던 여름도 저 멀리 떠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 가을이 왔다. 가을이 참 좋다. 추수의 계절이기도하고, 활동하기가 참 좋다. 천고마비. 높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인생을, 나를 한번 돌아보게 하는 철이기에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책을 가까이 하기에 좋은 철이다.

 

지금까지 내 인생을 뒤 돌아볼 때, 그래도 무던히 힘쓰고 애를 썼던 것 중 하나는 책에 관한 것이다. 35년 전 노트를 가끔 본다. 읽고 싶은 책 목록, 구해야 될 도서목록을 메모한 흔적을 본다. 지금도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노트에는 도서목록이 기록한 것이 있다. 누가 좋은 책이라 소개하거나, 이 책은, 읽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이 되면 먼저 제목과 저자를 메모해 둔다. 그러다가 형편이 되면 구해서 읽는다. 일을 하면서 박봉이지만, 책 구입을 위해 애를 썼다. 그렇다고 많은 책을 소장하고 읽은 것은 아니다. 그냥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게 읽었다.

그런 나에게, 이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 같다 라고 하는 생각을 잠시 한 글을 읽었다. 그는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1712~1791)이다. 문집은 순암집이 있다. 그의 책과 관련된 시 두 편을 보자.

①『초서롱에 쓰다(題鈔書籠)』

몸에 고질병이 있는데도(沈疾已在躬)아직 책이라면 그리 좋아(嗜書猶不廢) 귀한 서적 있다고만 들으면(每聞有奇籍)어떻게든 꼭 구해야 하지만(多方必圖致) 책 살 돈이 없기 때문에(旣無買書錢) 그 책 베낄 수 밖에 없어(乃有鈔書意) 온종일 수그리고 앉아 쓰고(垂首坐終日) 등불 아래서까지도 계속이지(復以燈火繼) 자잔할 글씨에 지렁이처럼 그려도(蠅頭畫蚯蚓) 부끄러워할 까닭이 없고(曾不爲愧耻) 정 피곤하면 남의 손까지 빌어(力疲倩人手) 그 책이 끝나야만 말지(卷終斯置已) 그리 어렵게 만들어진 책이기에(成編亦艱難) 나에게는 아주 진귀하다네(把玩自珍貴) 집 식구는 그때마다 말리면서(家人屢挽止) 피로 쌓여 병 될까 걱정하고(勞瘁恐成祟) 친구들도 비웃으며 하는 말(亦蒙朋友笑) 벼슬까지 해놓고 뭘 그러느냐지만(旣宦安用是) 내가 내 몸의 병을 알기에(自知身有病) 벼슬자리 오래 있을 생각 않고(不作長久計) 내 좋은 것 줄곧 좋아하면서(偏好固莫捐) 애오라지 내 뜻대로 살리라(聊爾從吾志) 자식 하나 아우 하나가 있지만(有一子一弟) 누가 물려 받을지는 모르는 일(不知誰可遺) 내나 보고 읽으면 그뿐이지(我但要披閱) 뒷일까지 생각할거야 뭐 있는가(豈復思後世) 잘못 두면 있던 것도 없앨 것이고(逢愚聚亦散) 자손 잘 두면 더 보탤 것이고(賢必能添寘) 제일 좋은 것은 지금 당장(不知供目前) 한 권 책으로 맛을 느끼는 일이라네(一卷有餘味).
②『저서롱에 쓰다(題著書籠)』

우리 한산 가업을(惟我漢山業) 팔백 년을 이어왔지만(相承八百年) 집안이 원래 청빈하여(家世本淸貧) 책 하나도 쌓아둔 게 없다가(曾不有簡編) 몇십 년 갖은 애를 써서(辛勤數十載) 전심전력 구해 들인 끝에(求之心頗專) 경사와 그리고 자집까지(經史與子集) 대강 갖출 건 갖추어 두고(裒稡亦略全) 낱낱이 질긴 종이로 된 가의를(一一堅紙裝) 애를 써가며 손수 다 꿰맸지(辛若手自穿) 화가 나다가도 글만 읽으면 좋고(當怒讀卽喜) 병이 났다가도 읽기만 하면 나아(當病讀卽痊) 이것이 내 운명이라 믿고(恃此用爲命) 앞에 가득 가로 세로 쌓아 놓았지(縱橫堆滿前) 그 때 이 책 쓴 이들은(當時作書者) 성인 아니면 현인들이어서( 非聖必是賢) 책을 펴 볼 것까지도 없이(豈待開卷看) 그냥 만지기만 해도 기쁘다네(撫弄亦欣然) 몇 해를 그리 읽고 나니(讀之積年歲) 책은 백 권 천 권도 넘고(卷帙踰百千) 가슴 속엔 무엇이 있는 것 모양(胸中如有物) 구불구불 자꾸 나오려고 해서(輪囷欲自宣) 에라 글 한번 써보자 하고(遂起著書意) 밤에 잠도 잊고 엮어 본다네(編輯夜忘眠) 집안 식구나 친구들이야(家人與朋友) 미치광이로 볼는지 몰라도(視之若狂癲) 제 보물은 그저 제가 좋아하는 것(燕石謾自珍) 양자운(楊子雲)도 태현경 쓰지 않았던가(子雲曾草玄).       위 두 시는 순암집1권에 나온다.

 

이 가을에 책을 가까이 함이 어떨까?

 


글쓰기를 좋아하는 목사입니다. 몇년간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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