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일곱살 아이, 핸드폰 괜찮나요?

"저건 새털구름이니 뭉게구름이니?" 하늘을 수놓은 구름 이름 맞추기를 하며 아이와 걸었다.
“저건 새털구름이니 뭉게구름이니?” 하늘을 수놓은 구름 이름 맞추기를 하며 아이와 걸었다.

가끔 아이의 친구, 그리고 친구의 엄마들과 함께 만날 때면 각기 다른 교육 방식들이 부딪히곤 한다. 한 가정에서는 허용되는 것이 다른 가정에서는 금지이거나, 반대인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면 아이들은 질문이 많아진다.

“엄마, 엄마는 게임을 어떻게 생각해? OO엄마는 절대 반대래.”

“글쎄, 엄마는 꼭 반대는 아니지만, 주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

“에이, 그럼 반대라는 거네.”

“그런 건 아니야. 지오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찬성이야.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게임을 문화의 하나로 생각한대.”

“하하. 그런 이야기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그런데 문화가 뭔데?”

“…”

나름대로 책에서 읽은 지식으로 자신이 게임을 찬성하는 이유를 주장하고자 하던 아이는, 설익은 밥을 먹은 것처럼 외운 지식으로 주장을 하다 엄마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 버린다. ‘지하철 덕후’인 아이는 지하철에서 한 아이가 도망가는 게임을 간혹 나의 핸드폰으로 하곤 한다. 작년까지는 10분을 허용해줬던 휴대폰 보는 시간을 15분으로 늘려줬다. 대부분은 네비게이션이나 지도를 보며 경로 검색을 즐기지만, 간혹 게임도 즐긴다.

“엄마! 나 포인트 땄어.”

“그렇게 해서 계속 하게 만들려는거야. 자꾸 또 따고 싶지 않아?”

“아니야. ”

자기 말에 증명이라고 하듯,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핸드폰을 다시 나에게 준다. 친구의 엄마는 “나는 게임은 절대 반대예요. 지오는 정해진 시간 뒤 휴대폰을 달라고 하면 바로 주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그렇지 않아요”라고 내게 이야기했다. 과연 그럴까? 시간을 어겼다 1주일 정도 휴대폰을 못 본 적이 있는 지오는 엄마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또 건강을 끔찍이 챙기는 ‘애늙은이’ 지오에게 휴대폰을 보는 것이 뇌에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알려줬을 뿐이다.

사실 게임은 둘째치고 핸드폰을 주면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엄마가 육아 외의 집안일도 안 하고, 개인적인 업무도 보지 않고 아이와 24시간 밀착해 아이에게 집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핑계, 혹은 현실적인 이유로 나는 조금은 아이와 ‘밀당’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인가 원천적으로 금지했을 때, 반발 심리와 호기심 때문에 나중에 폭발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웬만하면 허용하되 선을 넘지 않도록 가르치려고 애쓴다. 최근 유치원에서 들었던 특강에서 선생님은 엄마의 휴대폰을 잠시 줄 수 밖에 없을 때는 반드시 옆에 있으라고 타협점을 제시해주시기도 했다.

어른도 그렇지 않은가. 급한 연락이 오기도 하고, 실시간 뉴스를 확인해야 하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무료한 틈새시간을 즐기기 위해 휴대폰을 들여다보곤 하는 것은 아닌지. 휴대폰이 없던 시절, 엽서도 끼적이고, 책도 뒤적이며 사색의 바다에 빠졌던 시간을 쉴 새 없이 휴대폰이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몸을 움직이며 놀고, 자연 속에 있을 때 휴대폰을 달라고 하는 경우가 확실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함께 몸을 쓰는 휴식 시간을 갖지 않은 채 이것 저것 하지 말라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 아이는 휴대폰을 갖고도 잘 놀고, 휴대폰없이도 잘 노는 아이가 되면 좋겠다. 휴대폰을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휴대폰’만’ 보는 것이 문제 아닐까.

게임에 반대하는 아이 친구의 엄마는 교육용 탭의 비밀번호는 아이에게 알려주는데, 나는 또 그건 반대하는 입장. 비밀번호를 누르면 콘텐츠를 결제하게 되는데, 부모와 상의없이 결제하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비밀번호는 비밀이야”라며 알려주지 않는다. 물론, 정답은 없을 것이다. 각자의 시각과 방법이 다른 것 뿐이다.

벤치에 앉아 주먹밥 도시락을 먹었다.
벤치에 앉아 주먹밥 도시락을 먹었다.

폭염이 조금 누그러진 어느 토요일, 아이는 산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일찌감치 15분 찬스를 써 버리고 심심해하다 낸 아이디어처럼 보였지만 날도 선선하니 괜찮을 것 같았다. 산 대신 가까운 공원을 걷자며 집에 있던 찬밥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배낭을 짊어지고 산보에 나섰다. 바쁜 아침, 유치원에 가는 길에 솔방울이라도 주울라 치면 지각이라고 재촉하던 게 생각이 나 발길 닿는 대로 계획없이 걸었다. 나무도 보고, 운동기구도 움직여보며 걷다, 다리가 아프면 버스도 타고, 하면서 3시간 가까이 가을을 만끽했다. 사실 아이보다 내가 먼저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속상했던 일 때문에 아이와 집에서 놀았다면 건성으로 이야기를 했을지도 몰랐을 상태였는데, 나무와 숲을 보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지오가 자연에 대해 쓴 글.
지오가 산책을 다녀온 1주일 뒤, 자연에 대해 쓴 글.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그림그리기나 글짓기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던 아이가 유치원에서 자연이 멋진 것이라 가꾸기로 마음 먹었다는 글을 알록달록 색연필로 적으며 놀았나보다. 나와의 산책 때문만은 아니겠지. 일주일마다 숲체험을 하며, 또 날마다 유치원 마당에서 놀며 느낀 것들일 터. 화장실에서 휴지 여러칸을 쓰면 “엄마, 자연을 보호해야지. 한 칸씩만 써”라고 훈수까지 둘 정도로 자연에 대한 사랑이 부쩍 커졌다. “여보, 어려서는 엄마가 소변은 한 칸, 대변은 두 칸이라고 정해주시더니, 이제 내가 엄마가 되니 아들이 나한테 아껴쓰라고 성화네. 난 계속 잔소리 듣는거야?”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하며 웃는 나를 발견했다.

이재원 문화평론가
한양대 실용음악과, 정보사회학과 겸임교수
전 텐아시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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