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지오에 대한 애정을 담아 모래 사장에 지오 이름을 썼던 모습. 환하게 비추는 햇살이 하늘나라를 떠오르게 한다.



“지오야. 외증조할머니 병원에 계신 것 알지? 좀 안 좋아 지셔서 삼촌이 전화를 했네.”

지오를 재우던 중, 막내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가 위독하셔서 가 봐야 할 것 같다는 전갈이었다. 외할머니가 중환자실에 잠시 계시다 좋아져 일반병실로 옮긴 지 1주일만의 일이었다.

“돌아가실 것 같아?” 일곱 살 아이의 낮은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좀 힘드신가봐. 일단 지오는 자자.” 잠자리에 든 지오가 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 사람은 누구나 죽는대. 그런데, 죽어서 좋은 것도 있대.” 아이의 말에 놀라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하늘나라에 가잖아. 거기에서는 무섭지도 않고, 사자랑 같이 놀기도 한 대. 게임은 안 좋으니까 게임을 못하겠지만, 좋은 곳이래.”

아이는 여름성경학교에서 하늘나라에 대해 배우며 죽음에 대해 생각한 듯 하다.



여름방학 동안 교회 여름성경학교에서 아마 배운 내용인 것 같았다. 가끔은 “나이드는 게 싫어. 그럼 엄마 아빠 죽잖아”라고 하기도 했던 아이의 말에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교회에서 하늘나라에 대해 배우면서, 죽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했던 아이는 나름대로 죽음은 무서운 것이지만 좋은 점도 있다고 정리를 했나보다.

지오가 갓 돌이 지난 무렵, 나의 엄마이자 지오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3년 째되던 해에, 내가 엄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듯, 엄마도 먼저 하늘나라로 향한 외할아버지나 이모를 그리워하며 지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명 두명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면,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서도 미리 가서 기다리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뒤에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나의 외할머니이자 지오의 외증조할머니께서는 올해 98세의 연세에 신체는 노쇠해져가고 있으셨지만, 정신은 건강했던 분이다. 요양병원에서도 여전히 신문도 읽으시고 하셨는데, 폭염 때문인지 식사를 잘 못 하시더니 갑자기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고 마셨다. 치료를 받느라 장치를 달고 계신 할머니의 말씀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내가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말씀드렸을 때 “고맙다”는 말씀은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좀 더 버티실 것 같았던 할머니는 날을 넘겨 새벽에 급격히 위독해지셨고,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10분 전 이미 운명하신 뒤였다. 미국에서 나와 계셨던 나의 삼촌은 “편안하게 가셨다”고 했지만, 할머니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사후에도 청각은 한동안 살아 있다는 속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에서 엄마도 만나고 외할아버지도 만나고 이모도 만나서 행복하게 지내시라고 말씀드렸다.

지오의 외증조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한지상자.



유난히 손재주가 좋아 초등학교 방학 숙제를 도와주셨던 기억이 생생한 할머니. 요양병원에 들어가며 갖고 계신 것들을 많이 정리한 상태였지만, 나에게는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한지상자가 남아 있다. 아마 10년도 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그 상자를 아마 오래 간직할 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조각을 전공했음에도 손으로 만든 것을 남겨주지 않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를 잃은 슬픔에 어머니 생각까지 더해져 마음이 더 아팠다. 아니, 어머니는 나를 만들어놓고 가셨다. 나는 어머니 작품이니 잘 살아야 한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에는 지오라는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을지 궁금하다.
이재원 문화평론가
한양대 실용음악과, 정보사회학과 겸임교수
전 텐아시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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