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프랑스 아이처럼

어린이는 몸이 작을 뿐, 어른과 똑같은 인격을 갖고 있다.
어린이는 몸이 작을 뿐, 어른과 똑같은 인격을 갖고 있다.

 

언젠가 나와 친한 친구가 나에게 버럭 화를 낸 적이 있다. “내가 네 친구 맞니? 넌 왜 상의하는 법이 없어?” 일을 다 저질러놓고, ‘어쩔 수 없었어. 어떡하지’라고 종종거리는 내게 한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좀처럼 누구와 상의하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고, 나 혼자 매번 마음 속에 천둥이 쳤다 바람이 불다 맑았다 해도 그냥 겉으로는 무표정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야기해서 여러 사람 피곤하고, 복잡하고, 무엇보다 결국 결정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어찌보면 유아독존 자만이고, 어찌보면 누가 내 인생에 관심이 있을까라는 지나친 겸손 같기도 하다.

정말 그렇게 내 친구가 지적한대로, 내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미리 상의를 하는 사람은 다섯손가락도 넘지 않는 듯 하다. 그래서일까. 고민이 생기면 서점에 달려가 관련된 책들을 마구 읽어대는 게 나에게는 상의라면 상의인 듯 하다.

몇년전, 회사 일과, 방송, 대학원 등 나 자신의 일만으로도 가득찬 하루 하루, 아이가 말을 하고 엄마와 같이 있고 싶다는 의사 표시를 울음이 아닌 말로 하기 시작하면서 육아에 대한 고민도 커질 때였다. ‘프랑스 아이처럼’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접하고 구입해 당장 읽어내려갔다.

 

'프랑스 아이처럼' 한국어판 표지.
‘프랑스 아이처럼’ 한국어판 표지.

 

미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영국인과 결혼해 프랑스에 살고 있는 저자는 미국식 육아와 프랑스식 육아를 비교하였다. 왜 미국 엄마들은 아이에게 쩔쩔 매는데, 프랑스 엄마들은 하이힐을 신고 우아하게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풀코스를 바르게 앉아 먹게 하는가. 저자의 생각에, 미국은 프로이드식 육아법이 너무 강해서, 엄마들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봐 너무 염려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상처가 트라우마를 형성할까봐 결국 아이에게 끌려다닌다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 엄마들은 아이를 어른과 똑같은 인격체로 대하며 사회에서 지켜야 할 것을 아주 어린 나이에도 엄격할 정도로 요구하는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그것을 해 낸다는 것이다. 대신, 아이에게 의무만 강요해서는 안 되고, 성인처럼, 예를 들면 이사를 갈 생각이 있다면 아이의 생각까지 묻고 반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느 정도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머리를 맞은 듯한 신선한 충격을 준 책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즈음 내가 너무 바쁘기 때문에 아이에게 부족한 엄마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프랑스 엄마처럼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상의하고, 묻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혹은 때문인지,아이는 너무나 어른스럽게 나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내가 틈이 생기면 어리광도 부리며 지낼 수 있었다. 때로는 아이를 어른처럼 대하는 바람에, 아이가 나이에 비해서 걱정이 많은가? 라는 생각도 해 보지만,후회는 없다.

아무리 어린 나이여도, 말이 서툴고,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를 뿐이지, 어른과 똑같이 이해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고 본다. 얼마 전 한 NGO 관계자가 쓴 글을 보고 마음이 아픈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등학교가 통폐합되며 아이들이 당장 정든 학교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는데, 무엇보다 아무도 미리 이야기해주지 않고 갑자기 통보를 받는 데 대한 상처가 크다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교사나 학부모들은 어른들끼리 정하면 된다고 여긴다고 한다.

돌아보면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이 꽤 생생히 기억이 날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라고 할 수 없다. 최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미래라이프 대학을 만들며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아 졸업생까지 나서서 시위를 하였다. 한 교수는 “학생이 왜 주인이냐”고 했다. 4년만 머무르는 학생은 주인이 아니라는 논리다. 그럼 주인이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총장은 “역사”라고 말했다.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숨결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하물며 말 못하는 갓난아이도 아니고, 성인 학생이다. 경찰 1600명을 불러 학생을 잡아가라고까지 했다.

학교가 결정하면 학생은 무조건 따라야지, 엄마가 결정하면 아이는 무조건 따라야지… 그런 생각은 엄격한 훈육이 아니다. 상대의 영혼을 무시하는 행위다. 상의하지 않은 결정을 관철시키려면 적어도 설득은 해야 한다. 싸우더라도 소통하는 것이 불통보다 낫다.

이재원 문화평론가
한양대 실용음악과 겸임교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과 박사수료
전 텐아시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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