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화가 나 있다. 세상이 갈 수록 좋아질 것으로 믿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이 절망하고 있다. '성장'이 최고의 가치라고 배웠고 '성공'을 목표로 열심히 땀 흘린 사람일 수록 개선되지 않는 현실로 인한 허탈감과 분노 수위가 높다.

"무릇 있는 자는 더 많이 받아 풍족하게 되리라.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리라."
- 마태복음 25장 29절

'큰 파이', '낙수 효과'의 떡고물과 자신의 존엄을 맞바꾼 다수의 약자들은 뒤늦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성경의 예언처럼 먹은 것마저 토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혁명을 포기한 대가로 약속 받았던 'Fuck Your Money'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결과적으로 하위 99%가 전체 자산의 10%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어처구니 없는 생존 게임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세월호와 메르스, 가습기 살균제로 이어지는 릴레이 참사를 지켜보며 똑똑히 자각했다. 세상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 한 이런 비극은 계속되고 국가는 얼마든지 '괴물'이 될 수 있음을, 재난을 극복하는 방식이 재난 자체보다 더 참혹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일본군 위안부와 사스 배치 건을 통해 정작 중요한 피해 당사자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도 간파했다.

생산에 가담했지만 자신이 만든 생산물로부터 소외되고, 자신이 직접 선출한 권력에게 압박받으며, 보잘 것 없고 왜소한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하는 질주를 거듭해야만 했던 마이너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호모 사케르'(헐벗은 삶), 즉 언제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존재로 추락한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중계동 백사마을 벽화>



인류 문명의 7000년이 '성벽의 역사'라고 누가 말했던가? 역사상 오직 한 번 무산자 계급의 진입을 허락했던 신분 경계의 성문이 닫힌 지 얼마였던가? 어쨌거나, 반칙과 특권으로 철옹성을 쌓은 성 안의 유산자들은 성벽 밖에서 아우성치는 무지렁이들에게는 관심조차 없다.

오늘날 권력의 수호무사들은 애국심을 입증할 대국민 사업 수립에 여념이 없다. 피 같은 세수로 아무도 예상 못 했던 기상천외한 일을 벌여 갖가지 음모론을 유발하지만 본인들은 전혀 괘념치 않는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특유의 분할 통치 기법에 아랫것들만 속이 타들어간다.
"사람은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다." - 맹자

자존감과 주체성을 상실한 연이은 '실험'을 경험하고 나서야 '높은 분'들의 진의를 의심하기 시작한 성벽 밖의 사람들에겐 무한 침묵이 강요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라는 한 마디는 곧바로 '괴담'으로 간주되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에겐 '도로교통법 위반'이 기다리고 있다. 역시 대중은 '개 돼지'인가?

"지금의 성골 진골은 태생이 별로 귀족스럽지 못하다. (중략) 신 중간층이 중심허리가 되는 제도 개혁을 이루려면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이 가치 기준인 성골 진골류의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시기하는 것을 넘어 진짜 천민으로 볼 수 있는 당당함이 전제돼야 한다." - 이남곡(인문 운동가)

그러니 주눅들지 말고 넋 놓지 말고 미치지 말 일이다. 특히 인생을 자주적으로 설계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라면….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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