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세계 최대', '세계 최초'의 범람

“이 업계에서 저보다 똑똑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당신의 회사에 입사하려는 지원자가 이런 말을 한다면 그를 뽑겠는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우리 학교에서 수학을 제일 잘해”라고 하는 애가 있었다면 그와 친해지고 싶던가? 대놓고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실제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심하게 별나거나 정신이 나간 친구로 취급하고, 채용을 하거나 친구로 사귀려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을 향한 광고를 비롯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이런 낯뜨겁고, 영어식으로 하면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잘난 체하는 말들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The World’s First Curved UHD TV” 

삼성전자에서 이번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국제가전전시회) 부스에 내놓은 UHD TV에 걸어놓은 문구이다. 이번 CES에 TV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모두 UHD TV를 전시품목으로 내세웠다. 그런 업체들과 자신을 구분하고 싶었겠다. 그래서 저런 문구가 나왔겠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문구를 보고는 삼성의 기술력을 인식하고, 기왕에 UHD TV를 산다면 꼭 삼성 제품을 사겠다고 생각할까? 사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역시 삼성의 기술력이 대단하구나’ 혹은 그 전에 삼성이 UHD TV를 최초로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거나 기억할까? 

“World’s First ULTRA HD 3D Wall” 

이건 LG전자에서 내건 문구이다. ‘3D Wall’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최초(First)’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비슷한 문구들이 계속 등장한다. “World’s Largest 105” ULTRA HD Display”. 사실 ‘UHD’의 ‘U’가 어떤 단어를 뜻하는지, 앞선 ‘HD’와는 어떻게 다른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 상황에서 ‘세계 최초’, ‘세계 최대’를 붙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90”-World’s Largest Available Full HD LED TV” 

일본의 도시바 전시장 입구에 대표 제품에 걸린 문구이다. 

여기서의 방점은 당연히 ‘Available’에 있다. 삼성, LG, 소니 등의 경쟁사와 같이 과시용으로 시제품만 내놓은 게 아니라, 자신은 실제로 매장에서 팔고 있음을 강조하며 차별화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느껴진다. 그런데 대체 누구를 향해서 저런 문구를 아로 새긴 걸까? 

오래 전에 휴대폰 두께와 무게가 경쟁의 주요 요소였던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확실히 ‘와우’하며 놀랄 정도로 이전의 휴대폰과는 상대가 되지 않게 가볍게, 얇게 나와 휴대폰 역사에 획을 그은 제품들이 있다. 그렇게 나온 제품들이 무게와 두께의 표준이 되었다. 소비자들은 대략 어느 정도 선에서 사용하고 남에게 보이기에도 충분하다고 느꼈는데, 소량화와 경량화 경쟁은 줄어 들지 않았다. 새로 나온 제품이 그때까지 가장 얇았던 것보다 0.1mm가 더 얇다거나 0.05g이 더 가벼우므로 그것을 광고에서 부각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건 소비자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데요” 식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들, 개발자들 간의 자존심 싸움이었고, 한편으로는 업계와 자신의 회사 고위층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컸다. 

CES와 같은 전시회에서는 1차 타깃이 업계 사람들이고 자신 회사의 고위 경영층이 꼭 들르니 ‘최초’, ‘최대’와 같은 소비자에게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쓰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겸양지덕이 미덕이 되는 시대가 아니고, 자기PR의 시대로 자신의 뛰어남을 설사 뛰어난 점이 없더라도 만들어서 외쳐야 하는 상황이니 이해가 간다. 그런데 특정한 상황으로 한정 짓고 이런 식의 자기과시형 문구를 쓰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다른 부문까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목표 타깃이 명확해도 그리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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