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느 대기업의 중역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한 분이 당시 술상에 오른 새로 나온 소주를 보고 이런 얘기를 했다."요즘 '처음처럼'이 잘 안 팔리는 것 같에요. 왜 그렇죠?"그래도 이전에 광고회사 있었다고 내게 물었는데, '그렇게 안 팔리는 것 같지 않은데'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다른 분이 불쑥 대답을 했다."노무현이 아래서 국무총리하던 한명숙이라고 있잖아요. 그 남편, 감빵갔던 빨갱이가 상표 글씨를 썼거든요. 그게 알려지고, 사 먹으면 얼마씩 거기들 도와주는 거라고 해서 안 팔리잖아요."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기막힌 상황에서 일단 완전히 틀린 사실만 바로 잡았다."저, 그 글씨는요 신영복이라고요 지금 성공회대 교수하는 양반이 쓴 겁니다. 그 양반은 '60년대에 통혁당 사건이란 걸로 감옥에 갔었죠." 모두들 신영복 선생을 모르는 눈치였다."어, 그래요?"하면서 틀린 말을 했던 이가 이었다. "뭐 똑같은 놈들인데, 뭘." 사람들 모두가 '와아'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신영복 선생을 모르고,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인 박성준 선생이야 더더욱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을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걸로 모든 행위의 인과관계를 정리해버리는 것이 가당한가? 전에 박성준 선생에 대해서는 한명숙 총리가 한참 뇌물수수를 했네 어쩠네 하면서 기소를 당했을 때, 골프를 쳤네 안 쳤네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 http://blog.naver.com/jaehangpark/40103639713 )    사람들이 너무나도 뻔뻔스럽게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뇌물수수라는 공식 기소항목과는 무관하게 한명숙 여사가 골프를 쳤네 안쳤네를 두고, 괜히 사람들이 혀를 차며 '(청렴한 척 하더니)골프도 친다'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작태도 참으로 치사하다. 무언가 골프를 치면서 찜찜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덕성이나 청렴함 등에서 컴플렉스를 주었던 인물도 골프를 친다는 게 일방의 주장이요 진위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일단 활자로 신문에 실렸다는 자체로만 위안이 된다. 이 사건이 불거진 초기에 외부에 보내는 성명에서, 그리고 재판정에서 한명숙 선생이 '돈을 받을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 분이야 내가 먼 발치에서 뵌 적 밖에 없어서 모르겠는데, 미국의 교회에서 몇 차례 뵌 그 분의 남편인 박성준 교수님을 보건대 나는 그 말을 100% 믿고 지지한다. 그 분은 당시 뉴저지에서 아들 한길 군과 함께 자취를 하며 공부를 하고 계셨다. 가끔 우리 교회 목사님이 자리를 비실 때면 직접 설교도 하시고, 신도들과 식사도 같이 하셨는데, 한국에서도 미국에서처럼 식사차리고 빨래 등 가정일을 바쁜 한 선생보다 더욱 열심히 하셨다고 한다. 한국에서 밥을 짓고, 그 밥을 식구들 아침 식사를 위하여 공기에 담으면서 그 밥공기를 손으로 보듬으며 가족에게 보내는 소망을 보내신단다. '한명숙, 숙. 이 밥 먹고 오늘도 활동 열심히!', '박한길, 길. 이 밥 먹고 학교가서 친구들과 잘 뛰어놀고!' 그 순간이 그리 감사할 수 없다고 조용한 어조로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사회활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아내를 둔 가사남편(house-husband)로서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으시며 가사를 돌보셨을, 박성준 선생의 그 때의 말씀과 진실 그 자체로서의 삶이 느껴진다. 지금 검찰이 주장하는 바나, 그것을 믿으며 자기위안을 삼거나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살아서는 박성준 선생 같은 분과 단 한시라도 살 수가 없다.  

   -------------------------------------------------------대기업 중역의 다수가 당시의 '검찰이 주장하는 바나, 그것을 믿으며 자기위안을 삼거나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이다. 다수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 소심한 나의 경험으로 보건대는 그런 사람들이 대기업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큰 목소리를 낸다. 다른 목소리가 나올 여지가 거의 없다.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바로 싸우자는 얘기가 되거나 이념성향이 의심스러운 인물로 바로 찍힐 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가만 있게 된다. 길지는 않지만 직장 생활을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서 대기업들의 규모와 영향력이 커지며 대기업 임원들의 자부심과 책임감과 목소리도 커졌다. 정부 부처 사람들, 대학 교수들, 언론계 인사들을 언급하거나 대할 때의 자세나 말투가 10년전, 20년전과 완전히 다르다. 특히 우리가 소위 주류 언론이라고 부르는 곳들과 '한명숙이가 골프를 쳤대' 식의 본지와 하등의 상관이 없고 사실여부도 뚜렷하지 않은 것들을 알리고 퍼뜨리고 기정사실화하는 자신들만의 선순환을 만들었다. 그 결과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들이 있고, '자신들만의 선순환'의 선함에 그들은 자신을 갖고 힘을 얻으며 자기확신을 넘어 자신은 무오류라고까지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2006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처음처럼은 소주 시장에 그야말로 돌풍을 불러 일으켰다. 한홍구 교수가 '서예의 대중화'의 가장 극명한 예라고 할 정도로 신영복 선생의 글씨와 거기에 담긴 의미가, 곧 브랜드가 큰 역할을 했다. 처음부터 신영복 선생의 글씨값으로 수익액의 일정부분을 성공회대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당시 그린으로 점유율 5% 내외에서 허덕이던 두산에서는 처음처럼을 내놓으면서 이런 사실들을 홍보 소재로 삼았고, 효과는 아주 좋았다. 하긴 당시에도 일각에서 빨갱이 글씨 운운하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다. 신영복 선생이나 박성준 선생이나 똑같은 놈들이라고 한 분은 성공회대학교 자체를 '빨갱이 양성소'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처럼은 꾸준히 매출이 올라 2009년에 10%를 돌파했고, 롯데가 인수한 후인 2012년말에는 15%까지 올랐다.  처음 근래에 처음처럼이 안 팔린다는 얘기를 꺼내신 분은 알칼리환원수 파동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하신 게 아닌가 싶다. 약간만 더 깊게 들어가면, 올해 기업계를 결산하며 낸 지난 12월 10일 중앙일보 기사 중 다음과 같은 부분을 보신 것 같다. 소주 ‘처음처럼’을 만드는 롯데주류는 SNS 모니터링에 실패해 1000억원대의 손실을 입고 현재 경쟁사와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발단은 지난해 3월 한 인터넷방송이 ‘처음처럼’의 원료로 쓰인 알칼리 환원수가 인체에 해롭다는 얘기를 내보낸 데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 루머가 SNS상에서 나흘 사이 20만 명가량에게 퍼졌다. 이때까지도 롯데주류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바로 나타났다. 두 달 만에 ‘처음처럼’의 시장점유율은 18%대에서 13%대로 추락했다. 롯데주류는 그제야 전담조직을 만들어 대응했으나 때는 늦었다. 올해 3월 롯데주류는 경쟁사인 하이트진로가 SNS에서 조직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100억원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처음처럼의 올해 11월말 점유율은 16% 정도라고 한다. 수치로는 어느 정도 회복한 셈이다. 곰곰 생각하면 근래 내 주위에도 굳이 참이슬을 찾는 사람들이 늘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처음처럼의 매출이 공식적인 숫자로 보면 그렇게 준 것은 아니다. 빨갱이 글씨나 공작금 따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긴 나는 모르지만 이미 대기업 중역들의 세계에서는 이미 혹ㅈㄴ실로 그런 얘기들이 유포된 지 꽤 오래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처음처럼을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처음 제품을 출시할 때의 신영복 선생 글씨와 장학금 관련한 스토리텔링에 이어, 이효리를 전면에 내세운 '흔들어라' 캠페인을 시작한 게 출시한 다음 해인 2007년이었다. 사회적 인간미에서 섹시함으로 방향을 너무 확 틀은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되었다. 그렇지만 처음처럼은 주인이 바뀌면서도 꾸준히 '흔들어라'캠페인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광고 모델도 조인성과 고준희로 바뀌었지만 '흔들어라'는 계속되고 있다. 그 일관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 일관성이 있는 한 내가 참석한 술자리에서와 같은 소리 따위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또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광고를 진행하고 있는 대홍기획의 후배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사진을 올렸다. 그 일관성이 바로 '처음처럼, 대홍처럼'이라면 그렇게 꾸준히!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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