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이제야 읽었네요. 000 처입니다. 유독 남편생각나는 저녁 하릴없이 남편이름 검색했더니, 이런 글이.."
위에서 언급된 ‘이런 글’은 2011년 초에 내 블로그에 올린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이었다.---------------------------------------
'99년 미국에 주재를 갔을 때 큰 애는 겨우 만 6세를 눈앞에 두고 있었고, 작은 애는 만 3세가 조금 넘어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한국보다는 주말에 야외 활동을 친구들과 가족 단위로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런 어린 애들과 함께 놀만한 꺼리가 없었다. 약간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게 배드민턴이었다. 그럭저럭 애들도 휘두를 수 있고, 흉내는 내겠다 싶었다. 그런데 올림픽 경기를 유심히 본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미국 애들은 거의 배드민턴을 하지 않는다. 전문 대형 스포츠 유통점에 가면 있겠지만, 동네의 슈퍼나 작은 스포츠용품점에서는 배드민턴 채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 때 한 친구가 미국으로 출장을 온다고 뭐 필요한 것 없냐고 연락을 했다. 지나가는 말로 배드민턴 채 얘기를 했다가 그냥 오라고 했는데 사무실로 찾아온 그 친구의 손에 사진과 같은 배드민턴 채가 들려 있었다. 2000년 봄이었다.


그 뒤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많은 교포 가족들이 미국에서 이 배드민턴 채를 가지고 즐겼다. 교회 야유회나 친구들과의 바베큐 파티 등에 이 배드민턴은 필수 지참품이었다. 뉴저지 쪽 죠지워싱턴 다리 아래의 공원에서 한 교포 친구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배드민턴을 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거의 매주 함께 테니스를 하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몇 번 치고는 고개를 저으며, "와우, 배드민턴도 무진장 힘들구나!"한 말에 아주 뿌듯했다. 귀국 후에는 애들과 주로 아파트 앞 주차장과 건물들 사이의 쪽마당 같은 곳에서 배드민턴을 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애들은 친구들과도 배드민턴을 하고 해서 실력이 늘었다. 아빠와도 대등하게 아빠의 온몸이 땀에 흠씬 젖을 정도였다. 배드민턴 채를 가져다 준 친구와는 노스웨스턴대학교 켈로그경영대학원의 연수 과정을 함께 갔다. 옥외광고를 하면서 올림픽과 같은 큰 행사에 참여도 많이 하고, 애가 없는 대신 부인과의 잉꼬 애정을 쌓아 왔고, 특히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돌보아 주는 데 능하여 연수 과정 중에 여성 멤버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다. 손재주가 뛰어나 그의 성인 ‘은(殷)’과 ‘맥가이버’를 혼합하여 ‘은가이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한번 크게 신세를 졌다. 연수과정 중 몇몇 친구들과 캠핑여행을 떠나는 아침에 갑자기 반지 낀 손가락이 계속 퉁퉁 부어올라 무턱대고 그의 방으로 찾아 갔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가 결국 그와 함께 건물 지하의 빌딩 수선실로 가서 반지를 잘라내고 여행을 떠났었다. 그리고 2008년 가을이었다. 그 친구 팀원 중 하나가 결혼을 한다며 결혼 당사자와 함께 청첩장을 전해 주러 왔다. 서로 식사 자리 같이 하자며 못하던 참이라 결혼식 때 같이 보고, 끝나고 맥주라도 함께 하자고 했다. 옆에 있던 팀원과 서로 겸연쩍게 쳐다보더니 결혼식 전에 막상 자신은 스페인으로 휴가를 떠나 결혼식에 참석을 하지 못한단다. 팀장이 그래서 되냐고 농담식으로 책망하다가 잘 다녀오라며 귀국 후에 자리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친구는 스페인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설 연휴에 아들과 배드민턴을 치는데, 아들이 세게 스매싱 비슷하게 채를 휘두르면 셔틀콕이 바로 채에 박혔다. 줄을 조정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아들이 배드민턴 채가 너무 오래되서 그런 것 같다고 새로운 채를 사자고 한다. 배드민턴 채를 11년 사용했으면 오래 한 것인가? 그 채를 사다 준 하늘의 친구 은00에게는 미안한 것은 아닌가? 심성 곱고, 무뚝뚝한 듯 다정하고, 손재주 좋은 그 친구가 문득 너무나 그립다.-------------------------------
이런 한 순간의 감상에 젖어 썼던 게, 근 3년 후에 먼저 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부인의 눈에 띌 줄이야 어떻게 상상이나 했겠는가? 갑작스럽게 올라온 댓글에 놀라움과 반가움을 표시하며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내가 올린 글과 관련하여 남편의 생전의 행동을 회고하는 내용이 담긴 답신이 왔다.--------------------------------올리신 배드민턴과 남편에 대한 포스팅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전에 남편이 출장 가면서 배드민턴 채를 사갔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네요. 출장 갈 때면 항상 그곳에 주재하시는 분들을 위해 이런 저런 선물을 챙기던 남편이었어요. 한번은 선물을 박스로 꾸려놓고 집에 두고 와서 공항서 다시 집으로 불이나케 다녀갔던 기억도 스치고요. 남편이 운전을 참 잘 했는데, 운전 중 사고로 떠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요. 그래도 그 사람 떠나는 순간 제가 옆에 있었던 것이 참 고마운 일이예요. 출장 가서 혼자 그렇게 되었다면 제가 정말 더 마음이 아팠을 거 같아요. -------------------------------
쑥스럽긴 했지만 감사의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저야 하루도 남편에 대한 추억을 거르는 적이 없지만, 회사 동료분들이 아직도 은00에 대해 말씀하시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계시다니 정말 기쁘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면 위와 같은 글은 일기장이나 낙서장 한 쪽을 차지하며 내 서재 밖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전 같으면 절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것을 인터넷 시대의 큰 변화로 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온라인상에 커뮤니티가 많이 생기고, 오프라인으로 연결된다. 인터넷이 사람들을 서로 격리시키리라고 했던 비관주의자들이 생각할 수도 없었던 오프라인 상의 만남을 이끌어냈다. 물론 그렇게 이루어진 온오프라인의 만남들 중에는 문제가 되는 것들도 무척이나 많다. 허위로 유포되는 사실들도 당연히 많고, 그에 따른 해악도 상당하다. 그래도 그 친구를 계속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람이 세상 한 구석에 있다는 것을 그의 남은 가족이 알 수 있게 했다는 것으로만도 내게 인터넷은 충분한 역할을 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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