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시절 우리 부대의 학국어 명칭이 '교육지원단'이었다. 군대 내 교육에 관련된 시설이나 장비를 지원해 주는 부대였다. 카투사 중에서도 '꽃보직'으로 꼽혔다. 상급부대에서 교육지원단으로 뽑힌 나를 보고 '거기는 정말 편한 곳인데, 그만큼 군기가 세다'며 경고인지 부러움인지 선임들이 얘기해주곤 했다. 그 부대에서 그래도 힘든 곳이 동두천의 미군 2사단 파견대였다. 그들의 주업무는 탱크부대의 교육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부대 배치 받고 첫번째 맞이한 겨울에 그들 동두천 파견대가 활동하는 것을 점검한다고 해서 미군 책임자와 함께 그들이 훈련하는 곳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탱크훈련장이라고 하는 곳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었다. 힌국군 군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게 천막도 민간인아저씨들이 쳐주고, 천막 안에 난로도 있고 했지만 그렇게 야외에서 생활을 한다는 자체가 안스러웠다. 
우리 파견대는 주로 탱크 표적을 세우고 수거하는 일을 했다. 물론 아주 힘든 일들은 참으로 이상하지만 민간인일꾼 아저씨들이 다했고, 충분히 시간을 두고 하니까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추운 날씨에 흙투성이가 된 채 뛰어 다니는 당시의 고참들을 보면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자동차 몰고와서 그것을 지켜보는 내가 부끄럽고 미안했었다. 그런 야외훈련을 자주 할 수는 없었다. 1년에 두 차례 정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은 실내에서 시뮬레이션을 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탱크를 세워놓고 탱크 앞에 큰 스크린이 있었다. 훈련이 시작하면 그 스크린에 야산과 같은 풍경이 나오고 거기에 적의 탱크가 나타난다. 화면상의 적의 탱크를 향해 탱크병이 가상포나 기관총을 발사하고 그것을 심사관이 명중 여부를 알려주곤 했다. 오바하는 애들은 탱크 안에서 "또 어딨어? 나오라고!"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주 유치한 수준의 전자오락과 같았다.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미군이 저런 식으로 중학교 때 전자오락하듯이 훈련을 하고 개탄과 윳음이 함께 나왔다.
그런 어느 날 갑자기 최첨단 탱크 사격 훈련 시뮬레이션 기구를 설치한다면서 미국에서 나이든 중령 하나가 파견나왔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채, 남산의 힐튼호텔에 머무르던 그 중령의 운전병 비슷한 역학을 맡아서 그와 함께 계속 동두천을 오르내렸다. 나중에 부산까지 가서 컨테이너로 들어온 것을 동두천에 옮겨서 설치했는데 그게 바로 최첨단 탱크 시뮬레이터였다. 최초 설치가 끝나고 중령이 나를 보고 한번 시험해 보라고 했다. 정식 시험은 아니고 재미삼아서 해보란 얘기였다. 컨테이너 안은 실제탱크와 똑같이 되어 있었다. 조종석에 앉으면 실제 지형에 따라 자리가 쿨렁쿨렁했고, 화면에 적의 탱크나 장애물이 나타나곤 했다. 적 탱크에 대한 사격은 너무나 쉬웠다. 모니커 상에 나타난 적 탱크에 목표 겨냥 '+' 표시를 찍고 사격 버튼만 누르면 백발백중이었다. 그러면 바로 '명중'이라고 결과가 나타났다. 전자오락치고도 너무 쉬웠다.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그 때가 내가 처음으로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란 단어를 들은 때였다. 
그런 컨테이너 기구를 만들고, 모니터 상에 나타난 적 탱크에 사격을 가하고 환호한 행위 자체는 시뮬라시옹이다. 그런데 결국 모니터 상에서, 컨테이너 안에서 우리가 부수었던 것, 거기서 한 짓꺼리 따위는 결국 시물라크르 중에서도 아주 하급의 시물라크르였다. 진짜 적의 탱크에 대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할 일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상의 포격을 가하는 행위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진지하기만 했다. 그러다 보면 시뮬라크르와 정말 본질이 헷갈린다. 
광복절 퍼모먼스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고 방송에서 보도를 했다. 엄숙하게 대통령의 말씀을 진지하고 근엄한 얼굴로 듣는 사람들, 태극기를 휘날리며 싸이의 <젠틀맨> 춤을 추는 청소년들, 광복 체험을 재현하는 퍼레이드를 펼치는 사람들 등등. 해마다 반복되는 이 모습들에도 시뮬라크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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