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자동차의 예술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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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예술 본능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남단에 위치한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에 연이어

있는 판잣집들이 펼쳐내는 색깔은 우중충한 여타 국가의 슬럼과는 다른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었다. 해변

언덕 위에 위압적으로 자리 잡은 흰색 일변도의 고급 주택들과 확연히 대비되었다. 철조망까지 두른 높은

담장도 모자라 ‘접근하면 쏠 거야. 어떤 일이 벌어져도 당신 책임이야’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Armed Response’라는 표지판이 거의 모든 고급 주택의 벽과 문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 고급 주택에 살 법한 백인 친구들 몇을 만났다. ’위대한 개츠비‘가

그의 영원한 사랑인 데이지에게 뿌렸던 것과 같은 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순백의 최고급 셔츠와, 그

때문에 더욱 짙어 보이는 검은 색 정장 차림의 그들에게 영국에서도 보기 힘든 전통 영국 귀족의 풍모가 남아 있었다. 그 ’흑과 백‘의 단조로움 속에 판자촌의 형형색색 지붕들과 공연장에서 본 흑인 민속의상의 색상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남아공을 떠나던 날 전형적인 휴양지 공항 분위기의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런 대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을 만났다. 공항 건물 안에

화실 겸 갤러리가 있었다. 화가가 직접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림들을

전시하고 팔고 있었다. 그것도 소품들이 아닌 큰 그림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그림들마다 압도적인 색상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워낙 인상이

충격적이어서, 거의 7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남아공과 케이프타운의 첫 연상은 희망봉이나 테이블마운틴이 아닌 공항 청사에서 본 그림들로부터 판자촌, 그리고 민속의상에서 펼쳐진 원색의 앙상블이다.

 

         3년 후 독일 뮌헨에 있는 BMW박물관에 들렀다. 아트카 컬렉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거기서 케이프타운에서의 기억을

가슴 속에 이는 강한 비트의 북소리와 함께 고스란히 되살려내는 아트카를 만났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에스더

말랑구(Esther Mahlangu)라는 여성 예술가의 작품이었다. 컬렉션에

참가한 최초의 여성이라고 한다. 말랑구는 남아프리카 자신의 부족의 전통 예술의 기조를 이루는 원초적인

색상과 상형 장식무늬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기회를 가져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강렬하고 개성적인 전통

예술의 계승자이자 전 세계적 전파자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럼

BMW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예술 활동을 후원하는 기업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타업종과 비교하여 자동차 기업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의미와 가치가 있다.

 

자동차 메이커가 아트 마케팅을 하는 이유

 

        사람들에게는 비어 있는 공간이나 시간을 채우려는 본능적 욕구가 있다. 스마트폰의 스케줄러에 일정이 비어 있으면 괜히 불안해하며, 억지로

약속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단색의

담벼락에 왜 낙서를 할까? 꼭 낙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릴 종이나 공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공백 자체를 견디지 못해서이다. 자동차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품 중 덩치가 가장 큰 편에 속하는데,

대부분이 단색이다. 그 단색의 공간을 채우고 싶은데, 사유재산이기에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할 수는 없지만 소수의 사람들, 곧 몇몇 예술가들만이라도 채색하고 꾸밀 수 있는 공간으로 자동차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기본적인 욕구를 대리로라도

만족시켜주는 행위이다. 아트마케팅을 하며 자신의 자동차를 캔버스나 재료로 제공하는 대부분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근본적인 욕구까지 생각하고 기획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트마케팅을 실행하는 기저에는 이런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채워줘야 한다는 기업으로서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가 기능하고 있다.

 

         ‘내가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다른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曹操)가

했던 유명한 말이다. 삼국지연의는 조조를 아주 부정적으로 그렸다. 그런

조조의 부정적인 측면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 바로 도망자인 자신을 환대해 주었던 아버지의 친구인 여백사의 가족을 오해 때문에 몰살시킨 일이다. 위의 말은 조조가 상황을 잘못 판단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힐난하는 그의 동행자에게  뱉은 말이다. 보통 조조의 독하고 간악한 성격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어구로 알려져 있다. 조조의

이 말은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기만의 길을 누가 뭐라 해도, 누구보다 먼저 밟아 가겠다는 자신감과 고집과 오기가 담겨져 있다. 그리고

실제로 조조는 그런 길을 인생을 통하여 밟아서 갔다. ‘예술 활동에 쓰도록 내가 스스로를 내놓을지언정, 사람들이 나를 자신들 맘대로 쓰게 하지는 않겠다’는 의도가 자동차를 예술가에게 캔버스로, 소재로, 재료로 제공하는 아트마케팅에 깔려 있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쓰게 되었고, 휴대폰이 패션 아이템과 같은 역할까지 하면서 기기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주기가 매우 빨라졌다. 자연스럽게 버려진 이전 휴대폰의 처리 문제가 대두되었다. 버려진

휴대폰을 가져가서 쓸 만한 부품이나 원재료로 들어간 금(金)을

캐내는 처리업자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막대한 양의 알맹이 빠진 휴대폰들이 산업쓰레기로 나왔다. 몇몇 언론에서 버려진 휴대폰 더미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내보내면서 보도를 하기도 했다.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주요 업종으로 지목을 받기 전에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그

때 나온 아이디어 중의 하나가 그런 버려진 휴대폰을 예술가들에게 작품의 재료로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버려진

휴대폰으로 만든 예술작품들을 전시하는 방안까지 기획했다. 예술가들 간에 은근한 경쟁도 유도하고, 화제꺼리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제품은 산업쓰레기에서

예술재료로, 기업은 환경문제의 주범에서 문화 활동의 후원자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이 기획은 성사되지는 못했다. 멀쩡한 물건이나 시설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반달리즘(Vandalism)’을 기업에서 먼저 조장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까닭이었다. 유감스럽게 어느 예술가가 버려진 휴대폰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다. 진정한 인간다운 삶을 저해하는 휴대폰이 주제였다. 먼저 폐기되는

휴대폰을 작품의 재료이자 소재로 제공했을 때, 과연 그렇게 직설적으로 휴대폰 자체를 공격하는 방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동차는 사실 휴대폰보다 더 많은 문제를 어쩔 수 없이 야기한다. 장기적인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일각에 생명이 오가는 사건의 원인이

된다. 폐차를 활용하거나 소재로 삼은 예술작품들의 역사는 길다. 폐차장은

영화나 사진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공간이다. 폐차가 아니더라도 생활 속의 모든 것에서 소재와 재료를 찾는

현대의 예술가들에게 자동차는 매력을 넘어, 쓰일 수밖에 없다. 이왕

쓰일 바에야, 조조처럼 선제적으로 자신을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에까지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처음 자동차가 출현했을 때야 기계 발명품들이 그랬듯이 외관의 아름다움보다는 실용적인 기능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졌다. 자동차는 일찌감치 예술적 요소를 따지는 제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1900년대 초의 클래식 골동품 차를 우리는 곡선의 유려함과 장식의 섬세함 등 조각품이나 건축물을 감상하는

기준으로 보고 평가하기도 한다. ‘멋지다’, ‘아름답다’와

같은 찬사를 던진다. 전화기, 냉장고, 라디오, TV, 전자렌지 등도 모두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초창기의 물품들을 가지고 사람들이

그런 잣대로 평가하고, 감탄사를 외치는 경우가 있는가? 자동차는

초창기부터 그 자체가 예술품으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그런 속성을 무시했던 인물이 바로

헨리 포드였다.

 

         그가 어느 초등학교를 방문해 무엇을 배우는지 물었다. 한

꼬마가 대답하며 되물었다. “우리는 ‘현대(Modern)’에

대해 배워요. 근데 할아버지는 그게 뭔지 아세요?”하고 무시하며

묻는 초등학생 꼬마에게 “얘야. 내가 바로 그 ’현대(Modern)’을

만든 사람이란다”라고 말했단다. 포드가 생각하는 ‘modern’은

’고객들은 어떤 색깔의 차든지 가질 수 있다. 단지 그것이 검은 색이기만 하면‘ 식의 예술적 가치는

완전히 배제한 채, 기계적 효율성만을 고려한 것이었다. GM이

포드를 제치고 선두로 부상하고,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나름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데는 바로

포드가 백안시했던 예술적 부분에 대한 고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일찍부터 예술가들이 제작 과정에서부터

참여했다. 우리는 그들을 보통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예술품으로서의

속성을 부각하는 아트마케팅의 맹아는 자동차산업에 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비었다고 생각하는 공간을 채우거나 장식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 현대 생활의 필수품으로서 예술가들의 소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의 적극적 대응, 초창기부터 배태되어 있었던 예술적 속성이란 근본적인 측면에서 자동차가 아트마케팅을 하는 혹은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보다 실질적으로 브랜드전략의 관점에서 아트마케팅을 전개하는 이유도 당연히 있다.

 

         10여 년 전에 미국 광고계의 원로와 광고인이 지켜나가야 할 것과 바꾸어야 할 것을 주제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가 “자동차는 말이야, 많이

바뀐 것 같지만 네 바퀴 위에 차체를 얹고 사람이 자리에 앉아 둥그런 핸들을 돌려가는 것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며, 근본이 바뀌지 않은 대표 품목으로 자동차를 들어 얘기했다. 그의

말처럼 자동차는 꾸준히 개선, 나름의 혁신이 이루어져 왔지만 사용 방식의 근간을 흔드는 혁명적 변화는

없었다. 업계 내에서야 혁명이라고 자부할 것들이 있었겠지만, 최소한

소비자들이 혁명이라고 여길만한 것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브랜드에 계속 ‘새로움’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자동차산업 외부의 조력이 필요했다. ‘새로움’을 갈구하며 끊임없이 시도하는 대표적인 부류가

바로 예술가들이다. 어느 정도의 지명도가 있는 예술가들은 그 자체가 브랜드이다. 그래서 그들과의 협력, 곧 아트마케팅은 공동브랜드 활동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자동차 브랜드는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스스로를 제공함으로써 브랜드에

신선한 공기를 계속 주입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확연하게 다른 브랜드들과의 차별점을 얻게 되는 효과가

있다. 예술과 결부되었을 때 갖는 ‘프리미움’한 이미지가 있다. 예술가의

명성, 기존의 브랜드로서 확립된 프리미움한 이미지의 전이를 기대할 수 있다. 예술가들도 자동차 브랜드의 인지도와 기업의 규모가 있기 때문에 폭넓은 대중에게 다가가고, 인정받는 존재로 자신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앞부분에서

에스더 말랑구라는 남아프리카 출신의 자기 부족의 전통을 모티브로 하는 예술가가 BMW를 캔버스로 만든

작품을 얘기했다. 남아프리카의 초원이나 사막 지대에 맞춰 몇몇 기능을 첨가한 것보다, 남아프리카전통예술을 입힌 아트카의 존재가 남아프리카 대다수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이미지를

주는 데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자동차 업종을 떠난 기업브랜드 차원에서도 문화 활동을 후원하는 ‘착한 기업’, ‘품격 있는 기업’이란 이미지로 나아갈 수 있다. 환경, 안전, 노동 문제 등에서 자칫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쉬운 자동차 기업들로서는

더욱 절실한 문제다. 예술과 연계된 일련의 아트마케팅 활동은 내부 임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신이 만들거나 판매하는 브랜드가 예술품으로서 전시되고 대접을 받고, 품격 있는 기업에 다닌다는 긍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아트마케팅의 미래-무엇을

보완해야 할 것인가?

 

         바로 위에서 내부 브랜딩, 곧 임직원들의 애사심을

고취하는 데도 아트마케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에 임직원들이 아트마케팅 과정에 직접

참여를 했다면 효과는 배가되지 않을까? 현대차그룹 연수원에 보면 ‘Who

Am We’라는 영상작품이 본관 건물 내부 벽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여기에는 임직원 하나하나의

사진들을 모아서 영상을 구성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자신의 사진을 크게 볼 수 있고, 함께 자신이 작성한 미래 비전이 나타난다. 여수 엑스포 현대관의

경우 관람객들의 움직임에 따라 벽면의 블록들이 반응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 요는 전통적인 예술작품처럼

단순히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단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로 든 스마트폰, 동작인식 소프트웨어 등의 IT기술을 활용하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스마트기기로 무장한 SNS시대의

소비자들은 이슈를 발굴하거나 창출하고, 확산시키는 증인, 기록자, 창조자의 역할을 스스로 수행한다. SNS를 비롯한 뉴 미디어, 계속 진보하는 IT기술과 연계하여 창작 과정에서 고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앞으로 아트마케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기업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 탐미주의자처럼

아름다움 그 자체를 위한 예술품을 만드는 데 SNS시대 소비자들이 대대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트마케팅이 사회적 기업으로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지만,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신과 연계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어야 한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2012년 초 친환경의 새로운 연료전지차를 홍보하기

위하여 일명 ‘투명자동차’를 만들고, 도심지를 주행하여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LED패널과 카메라를 부착한 특수 매트로 자동차의 실루엣만 보이고, 분명히

자동차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야 할 건너 편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만큼 배기가수 배출이 없어, 공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었다. 최신 기술과 접목하여

만든 자동차 자체가 과학과 예술의 만남 이상으로, 환경이란 사회 이슈를 부각시켰다는 데서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사회성이란 차원이 아트마케팅에 고려되어야 한다.

 

예술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사람에게도

다섯 가지의 감각이 있다. 이제까지 자동차 메이커의 아트마케팅은 주로 시각 예술에 치우쳐 있었다. 그것도 물리적 공간으로 자동차를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여러 형태의 콘텐츠로 펼치는 시대이다. 그래야만 다양한 대중의 욕구에 맞출 수 있다. ‘아트’의 영역을 넓혀 문화콘텐츠 전반을 활발히 활용하는 아트마케팅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야 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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