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 당시 부서장이셨던 분께서 전화를 주셨다. 어느 잡지에서 내 글을 보셨는데, 직함이 바뀌어 있어서 깜짝 놀라셨다며 어쩐 일인가 물어보셨다. 여차저차 사정을 설명드리고나니, '잘되었다', '앞으로 더욱 잘하라' 격려를 해주시면서 마지막으로 덧붙이셨다. "새로운 곳에 들어갔으니, 여러가지로 잘 보고 다녀라." 다시 두어차례 중간 단어를 힘주어 반복하셨다. "여러가지, 여러가지 말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충분히 그 분의 마음이 전달이 되었다. 이전 회사의 사장을 지내셨던 분께서도 이직 소식을 들으시고는 전화를 주셨다. 역시나 마지막 말씀은 "더 신경 써가지고는 좀 알아봐."였다. 
그 두 분의 공통점은 과년한 딸이 있다는 것이었다. 몇년 전부터 만나뵙거나 인사를 전화로라도 여쭈면 꼭 딸들 신랑감을 알아보라고 압력 겸 사정을 하셨다. 그런 분들이 꽤 많다. 얼마 전 조카가 장가가는데 갔더니, 사촌누이가 나로서는 몇 십년만에 만난 누이의 둘째 딸을 옆에 세워 놓고는 "얘 신랑감 좀 알아봐라. 니가 옛날에 우리 00를 얼마나 이뻐했니? 책임을 져야지."하면서 내 입에서 '그러겠노라' 대답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밀어붙였다. "알았어. 신경 쓸게요."하는 말을 듣고는 "너 말한 것에 책임져야 해"하고 말했다. 
침으로 희한하게도 신랑감을 찾아봐 달라는 요청은 위에서 든 것 이외에도 무지하게 많은데, 신부감을 찾아달라는 요청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심심풀이 겸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 성비(性比)의 문제 : 결혼적령기 여성들의 숫자가 많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겠지만 단순한 인구로만 보면 그렇지 않다. 남성들의 숫자가 2~4% 많게 나타난다. 서울의 경우는 좀 다르다. 20대 후반부터 40대 초까지 여성들의 숫자가 남자보다 근소하게 많다. 그래도 직접적으로 신랑감 찾는 사람들만 있다는 이유로 충분치는 않다.  

- 내 주변 사람들의 특수한 상황 : 예외적으로 내 주변 인물들이 결혼적령기의 딸만을 집중적으로 데리고 있을 수도 있다. 남녀라는 아주 단순한 하나의 기준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예외적인 경우가 나올 수 있다. 내 주위가 좀 치우친 경우이고, 일반화하긴 힘들다는 얘기인데, 이건 일리가 있다.

- 여자들은 스스로 자기 상대를 찾지 못한다. : 남자들은 알아서 자신의 상대를 찾아서 부모들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데, 여자들은 그렇지 못하여 부모가 나서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이건 좀 얘기가 된다. 태생적인 적극성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사회적 통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관습이란 것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지는 않으므로, 아무래도 딸은 부모가 상대를 찾아서 보내는 것이란 관념이 남아 있어, 부모들이 딸의 상대를 더욱 열심히 찾는 것일 수 있다.

- 사회성 성비 : 위의 1번이 단순한 생물학적 성비였다면, 이제는 사회학적 성비이다. 여성이 자신과 대등하거나 나은 사회적 역량을 갖춘 남자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미국은 생물학적 성비는 맞는데, 결혼 적령기 남자들의 상당수가 감옥에 있어서 사회적으로는 성비의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한다. 한국도 감옥에 가 있는 수가 미국처럼 많지는 않지만, 실업이나 불규칙적인 단기 비정규노동의 불안정한 생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남성들이 갈수록 많다. 이에 비하여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두말할 여지 없이 늘어나고,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그에 갈맞는 결혼상대로서의 남성들의 수는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으니 찾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니 나같은 사람에게까지 부탁하게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통념적 지위와 능력을 검증 받은 남자라면 당사자나 부모를 비롯한 주위에서 나서기 전에 주문(?)이 밀려오기 마련이다.

- 더욱 안달복달하는 딸 가진 부모 : 위의 사회적 성비에서 얘기한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굳이 결혼하지 않고 자신만의 ?오?즐기려는 여성들이 많아지니, 전통적인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안달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혹여나 이 시대의 백마탄 기사같은 남자나 운명의 여신이 장난을 쳤는지 자기 딸 눈에 깍지를 씌울 남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 단순한 대화거리 : 그런 부탁을 하는 양반들의 말버릇일 수 있다. 나에게 할 말은 없고 해서 그냥 대화거리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왜 그럼 남성들의 부모는 그런 대화거리를 사용하지 않느냐는 문제가 있다. 별로 타당한 이유는 아니다.  
이유야 계속 몇 가지 더 들 수도 있겠다. 요는 한 가지만 가지고 어떤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많은 요인들이 서로 엉켜서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딸 가진 부모님들의 이 열화와 같은 요청에 어떻게 부응을 해야할지, 술 사달라는 후배 남자 애들 보면서 나도 좀 한숨이 나온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