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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내는 <북모닝CEO>에 실은 <비극의 비밀>(강대진 지음)의 해설 겸 서평입니다.몇몇 부분을 살작 덜어낸 북모닝CEO에 실린 내용은 여기 -> http://www.bmceo.co.kr/mail/2013/pdf/130621_BookMorningCEO_1413.pdf-------------------------고전으로서의 희랍 비극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얘기하지 않는 책이다.

 이태리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이탈로 칼비노-아마도 그는

이런 공식적이고 상투적인 정의보다 ‘글쟁이’, ‘이야기꾼’식의 딱지를 더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의 <왜 고전을 읽는가>(이소연 옮김, 민음사 펴냄, 2008) 맨처음에 나오는 고전의 정의의 첫번째 항목이다. 동사 ‘읽다’ 앞에 붙은

‘다시’라는 말이 당연히 읽었어야만 할 저작을 읽지 않아서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궁색한 위선’을 나타낸다고 했다. 오늘 다루는 책인 <비극의 비밀>의 저자는 궁색한 위선을 꾸밀 필요없다며 다음과 같은 말로 독자들을 토닥이며, 대표적인 고전이랄 수 있는 희랍 비극으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사실   ‘고전’이란 말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부담스럽다. 이 단어가 대개의 독자에게

뜻하는 것은 ‘꼭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작품’이거나, ‘시작은 했지만 마치지 못한 미완의 프로젝트’거나, 아니면 ‘겨우 다 읽기는 했지만 왜 좋은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 작품’이기 쉽다.

 희랍 비극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저자에

의하면 ‘국내 유수한 어떤 대학의 매우 이름 높은 모 과 대학원생들에게 희랍의 3대 비극 작가를 아는지 물었더니, 소포클레스 한 사람의 이름이 겨우

나왔다’고 한다. 이런 형편을 감안한 저자가 강의로 푼 것을

모아서 연재한 것이라, 희랍 비극이라는 다루고 있는 소재의 형식이나 내용의 생소함에 비해서는 쉽게 읽힌다. 그리고 비극의 주인공들은 대개 이름 정도는 들어본 사람들이다. 이름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알고 있는 신화의 한 토막과 엮여져 있거나 현대의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영화나 소설에서

재현되어 연상시키는 경우도 많다.

 

친숙한 이름들의 행진

 이 책에서 다루는 첫번째 비극 작품의 주인공인 ‘아가멤논’이란 이름은 개인적으로 내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우 친숙했다. 어머니께서

사주신 두 권으로 된 인물사전의 가나다 순에서 ‘ㅇ’부터

시작하는 하권의 첫번째 인물이 아가멤논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상권의 첫번째 인물은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소련의 ‘가가린’이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가나다순으로 두 권으로 나뉘어 인물사전을 낸다면 항상 이들이 각 권의 맨앞에 오리라 확신한다. ‘트로이전쟁에

나선 희랍 원정군의 총사령관을 맡은 왕. 딸을 제물로 바쳐, 아내의

원한을 사서 결국 원정에서 돌아온 직후 아내에게 살해당한다.’ 이게 당시 인물사전에 나온 아가멤논에

대한 설명의 전부였다. 팩트만을 전하는 신문의 메마른 단신 기사, 책

중간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관공서에서 발행한 신분증’처럼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아가멤논 사건 파일로 내게

존재하고 있던 이름이었다.

 비극의 다른 주인공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이디푸스는

아마도 여기서 소개되는 비극의 주인공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사일 것이다. ‘아침에는 넷, 점심에는 둘, 저녁에는 셋’이란

수수께끼는 어릴 때 들다. 커가면서 거기에 스핑크스가 나오고, 마침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정수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각인되면서

오이디푸스는 친숙한 인물로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여성판으로 엘렉트라 컴플렉스가 있지만, 그보다는

88 서울올림픽의 특별공연 작품이었던 <불의 아해들>에 관련된 분과 얘기를 나누다가 <나의 사랑 엘렉트라>를 비롯한 엘렉트라를 주인공으로 한 서구 작품들에 대해서 듣게 되며, 자연스럽게

엘렉트라라는 여인이 가진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안티고네는 희랍 비극의 주인공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연극무대의 주인공이나 문학작품의 모티브나 인용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 같다. 사실은 조금만 살펴보면 서구에서도

비슷한 것 같기는 하다. 어렴풋이 이름만 알거나 극히 한정된 팩트만을 알고 있었던 이들 인물의 내면과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변 인물들 및 신과의 갈등이나 개입과 같은 세계에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독특한 장치와 희곡으로서 갖는 의미

 수학공식 외우듯이 희랍 3대 비극 작가의 이름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신들과 인간이 어우러졌던 세계를 해석하는 그들만의 방식을 보는 것은 현재 우리에게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복잡미묘한 감정과 신까지 개입하여 더욱 얽혀 있는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그 시대의 독특한 장치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대표적으로 합창단이 있다.

 1995년에 개봉한 우디 알렌의 영화 <마이티 아프로디테>에서 가끔 가면을 쓴 합창단이 등장한다. 그들은 우디 알렌에게

쓸 데없이 궁금해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기도 하고, 관객들이 표현해야 할 감정을 과도하게 먼저 이끌기도

하고, 합창단이라는 본분에 맞게 배경음악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

영화를 보면서는 희랍 연극에 나오는 합창단의 역할을 우디 알렌이 코메디 목적으로 과도하게 활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비극들에서 합창단이 하는 역할을 보면서 우디 알렌의 천재성에 다시 감탄했다. <마이티 아프로디테>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이 책은 희랍 비극을 자연스럽게 현재 우리의 문화생활과 연계시켜 되살려낸다. ‘고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통의 기반’이라는 저자의 말이 실감난다. 희랍 비극이라는 한정된 대상으로 출발은 했지만, 희곡이라는 텍스트

원전을 통하여 무대를 재구성해본다. 이는 결국 현재 우리의 예술의 단초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의 원재료이자 독자들이 먼저 만나야 할 준비자료로서 희곡이 갖는 장점이 여기서 나타난다. 저자의 말대로 희곡은 ‘대사만 정해졌을 뿐 나머지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예전에 희곡 읽기를 즐기면서

이런 고백을 어느 지면을 통해서 한 적도 있다. ‘혼자 뒹굴대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관객과 소비자 앞에 직접 작품을 올리는 부담 없이 맘대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드는 희곡이 나는 연극보다 더 좋다.’

 그 고백을 할 때 읽은 작품이

영화배우이자 유명한 여배우 제시카 랭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샘 쉐퍼드의 약간은 괴기스럽기까지 한 일련의 희곡들이었다. ‘매장된 아이(Buried Child)', '굶주린 사람들의 저주(Curse of the Starving Class)'와 같은 제목만 보아도 약간 괴기스런 느낌이 오지 않는가? 아마 이들이 실제 연극 무대에서는 어떻게 해석되고 표현되었는지 확인해 볼 기회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상상의 세계 속에 샘 쉐퍼드의 무대를, 나름대로 충실하게 침대 위에 누워 세워 보았다는 데서 나름 충분히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도 읽다보면 어느새 희랍 비극의 무대장치를 설치하고 옮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순간은

합창단에게 신호를 보내는 연출가가 되기도 한다. 솔직히 토로컨대 저자가 몇 차례 사정하듯이 권고하는

희곡 번역본 읽기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만으로도 상상의 나래를 펴는 재미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문화의 길잡이이자 원천 소재로서 희랍 비극

 서구 문명을 이해하려면 ‘2 H’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바로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이다. 헬레니즘의 출발점이 바로 희랍신화이다. 책으로 나온 희랍신화부터 정독하는 것이 보통 헬레니즘 공부를 시작하는 방식이 되겠다. 그렇지만 무대에 올려진 인간들의 개별 사건으로부터 출발하여 간섭하는 신의 존재로 거슬러 가 신화의 세계를 탐색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런 거꾸로 된 탐험에서 이 책은 입심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신의 존재 앞에서 인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그 가치는 어디에

있고, 인간은 무엇을 지향하는가도 희랍 비극이 던지고 다루는 큰 질문이다. 저자는 곳곳에서 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넌지시 풀어놓는다.

 애초부터 오이디푸스는 개인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대표였다. 시인은 마지막 순간에, 인간됨의 존엄함을 다시 확인한다. 인간은 운명 앞에 약한 존재지만, 그렇다고 그 존엄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그것을 신적 가치로까지

끌어올렸다. 시인이 삶을 떠나며 남긴 마지막 말은, 인간임에

대한 더할 수 없는 찬양이었다.

 

영화 <페드라>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힙폴리토스>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작가는 ‘신들의 악의와 무능함에 대비하여 인간 사이의 유대와 공감이 두드러진다.’면서

‘무자비하게 관철되는 자연법칙을 형상화한’ 신들에 대해서

‘인간들 사이의 이해와 용서를 하나의 희망처럼 제시했다.’고 했다. 르네상스가 되살리려고 했던 가치의 원형, 맹아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결론이 아닌 독자들 나름대로의 생각 정리를 위한 기준으로써 저자의 의견

제시가 의미가 있다. 

 앞서 우디 알렌의 영화도 얘기했지만, 희랍 비극은 이후

영화나 다른 다양한 예술 장르의 마르지 않는 소재의 샘이었다. 비극에 나오는 장면을 형상화한 조각이나

그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책에 실린 그런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소재로서 뿐만 아니라 우디 알렌도 합창단을 이용했지만, 기법상으로도

희랍 비극은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히치콕이 즐겨 사용한 ‘서프라이즈’와 ‘서스펜스’의 차이, ‘관객과 등장인물의 지식의 격차에 의해 생기는 효과’라는 ‘아이러니’의 정의와

같은 것은 현대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 트로이에서의 승리를 전하는 봉화가 전해지는

경로로  30행이 넘게 조그만 봉우리마다

목록으로 읊어대는 것을 판소리 <흥부가>의 제비가

온 길을 나열하는 ‘제비 노정기’, 흥부네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들의 목록, 박에서 나온 재물들의 목록, 심지어는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 가사로까지 연결시키는 맞춤형

설명이 또한 이해도를 높여 희랍 비극에 대한 거리를 줄이면서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저자는 희랍 비극 작가들이 ‘다다른 사고의 깊이와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해낸 방식을 보면, 과연 인류가 지난 2500년

동안 진보하긴 한 것인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 찬탄에 100% 동의하거나 동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서구 문명에 대해 근원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예술과 역사를

보는 안목을 길러주며, 인간과 신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만이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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