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광고주의 창의적(틀린) 해석

청바지와 엽기적인 광고로 유명한 디젤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펼친 이제는 전설이 된 ‘Be Stupid’ 캠페인의 인쇄광고 중의 하나인데, 내가 특히 좋아하는 광고물이다. 강의할 때 한국광고물들에 스토리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며,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제시하는 하나의 예로 이 광고물을 보여준다. ‘Be Stupid’는 문자 그대로 ‘어리석어지자’인데 ‘바보가 되자’고 번역하기도 한다. 
이 광고물을 본격적으로 들여보자. 침대 밑에 옷을 홀딱 벗은 여성이 겁에 질린 상태에서 깜짝 놀란 모습이다. 입에서 뭔가 소리가 새나올까봐 입을 꽉 막았다. 침대 위에는 하반신만 보이는 두 남녀가 있다. 청바지를 입은 남성이 앉아 있고, 그 남성에게 핫팬츠가 꼭 보이지는 않지만 그와 유사한 정도의 섹시한 의상을 입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여성이 덮칠 듯이 달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디젤에서 당연히 어떤 스토리인지 얘기하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끼리 추정하며 얘기를 나눈다. 청바지를 입은 애가 자기 자취방 같은 곳에 여자 애를 데리고 와서 일을 치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진짜 여자 친구가 들이닥쳤다. 옷을 제대로 걸쳐 입을 상황도 아니었기에 여자는 침대 밑으로 숨어들어갔다. 아마도 남자는 자기 동생이나 클래스메이트 정도로 애기하면서 잠깐만 침대밑에서 기다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다짜고짜로 남자애에게 육탄공세를 펼친다. 침대 밑의 여성의 제 1감정상태가 놀라움에서 배신감으로 진행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나랑 다르게 해석하고 상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사람들이 상상하며 나름 얘기를 만들어가는 꺼리를 디젤이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Smart has the plans, Stupid has the stories’란 문장을 그래서 ‘똑똑한 놈들은 (잘 짜여진)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바보들은 얘기거리를 가지고 있다’로 번역한다. 약간 다르게 광고회사 친구들에게는 ‘똑똑한 애는 잘 만들어진 기획서를 가져오고, 덜 떨어진 놈이 희뜩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다’고 변용하여 쓰기도 했다. 소비자들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자신들의 의도대로 유도하는 계획을 가진 기업과, 맘대로 상상하고 꾸며댈 얘기꺼리를 제공하는 기업과, 어떤 족으로 가고 싶은가? 구속하려 하지 말고 맘대로 상상하게 하자. 그게 바로 스토리텔링의 기본이라는 얘기를 바로 이 광고물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지난 5월 어느 회사에 가서 대표를 포함하여 모든 임원들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이 광고물을 화면에 띄워 놓고 중간 휴식시간을 가졌다. 다음 시간을 시작하려면서 사람들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리는데, 한 사람이 가장 높은 양반에게 광고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광고물이 무슨 뜻이죠?” 질문을 받은 양반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사진을 보세요. 바람피다가 딱 걸린 것 아뇨?” 여기까지 아주 좋다. 질문의 핵심이었던 뜻 번역에 잠시 어떻게 해야하나 당황했다.  “똑똑한 사람은 저런 경우를 대비해서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계획이 있어요. 근데 어리석은 애들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꾸며내느라 힘들어요. 그래서 스마트한 사람은 플랜이 있고, 스튜피드한 사람은 스토리가 있다는 것이죠.” 그러자 질문을 한 사람이 존경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두 번째 시간을 광고물 설명해주면서 시작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제대로 해석을 해주자니 그 회사 높은 양반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고 해서, 광고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고 ‘광고물도 아무리 짧아도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하면서 그냥 넘어갔다. 강의는 아주 잘 끝났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전체 맥락을 모르는, 즉 디젤이 어떤 회사이고, 그전부터 어떤 식의 캠페인을 해왔고, ‘Be Stupid’라는 슬로건 아래 어떤 광고들이 함께 집행되고 있는지 모르면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에이티브한 번역이었다. 그 때의 강의 자리에서는 시간도 부족하고, 질문자의 공감 정도가 너무 세서, 제대로 얘기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번역 전반의 문제까지로 확대하여 얘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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