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TV에 정치 다큐멘터리 드라마라는 장르를 도입. 혹은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석만(高錫晩) PD가 예전에 어느 잡지에 이승만 대통령을 주로 연기했던 탤런트 최불암 씨에 대해서 쓴 글을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 2공화국>이란 작품을 찍으면서 4.19 학생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나 이화장으로 돌아온 이승만이 하와이로 망명 길에 오르는 장면을 찍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비서역을 맡은 연기자가 공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리면, 이승만의 부인인 프란체스카(Franesca)로 분한 아마추어 외국인 연기자가 한마디를 하고, 이들이 말하는 도중에 창을 등지고 선 이승만 역의 최불암 씨를 방 전체로 훑고 들어간 카메라가 클로즈업한다는 순서였다고 합니다. 고 PD는 다른 무엇보다도 외국인의 분명 어설플 연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NG를 부르지 않는 관용을 베풀 것인가를 놓고만 사전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예상대로 외국인은 대사를 뱉어 놓고 미안한 표정과 한께 엉거주춤한 미소를 지었고, 고 PD가 NG를 부르려는 순간, 최불암 씨가 대본에 나온 대로 비서에게 역정을 내는 소리를 지르며 돌아서는 바람에 카메라가 돌도록 가만 놔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돌아서는 최불암 씨의 두 눈에서 대본에도 없는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NG 없이 그 날의 녹화 장면을 끝냈는데, 최불암 씨의 눈물에 대해서 고 PD는 이런 식의 얘기를 합니다. "어느 기록에도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는 날 아침 이승만이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최불암이 눈물을 흘렸다면 이승만도 분명 그 날 아침 눈물을 흘렸으리라고 확신한다." 최불암 씨가 이승만 역을 몇 번하고, 그럴 때마다 신문에서 정말 꼭 닮았다고 열을 올리곤 했는데, 저는 사실 외양으로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실제 인물과 닮기로 치면 생전(生前)에 박정희 대통령 역을 맡아놓고 했던 연극배우 이진수 씨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동숭동의 대학로 어느 생맥주 집에서 이진수 씨와 딱 마주쳤는데. 배우가 아니라 박정희와 마주친 것 같아서 놀라 소리를 지를 뻔한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진수 씨는 그저 외모가 똑같아서 박정희 역을 맡아 TV에 얼굴을 비춘다는 것에 대해서 정통 연극배우 출신으로서 상당히 불만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PD나 연기자나 후배들이니까 봐 줘서 나간다는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최불암 -이승만' 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내면일체의 모습은 본 기억이 없고, 잘 모르는 제 눈에도 어색하게 보이는 장면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닮은 것으로 치면 전두환 전 대통령과 외모가 비슷하다고 해서 전두환 정권 초창기 잠깐 가발을 쓰고 나왔다가, 아예 7년 동안 TV에 출연하지 못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박 모 씨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 양반이 전두환으로 분해서 출연한 드라마는 외모는 그럴싸하게 가장 비슷했지만. TV 출연금지와 별 다를 바 없는 코미디의 느낌을 주었습니다. 요는 외모도 어느 정도 중요하지만, 내면적인 성격을 어떻게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느냐가 인물을 그리는 데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브랜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외모처럼 겉으로 드러난 어떤 단어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이고, 그렇기에 파생적인 가치를 자신의 입장에서 어떻게 소화하고 표출할 것인지 생각하고 여과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브랜드는 허상(虛象)이라는 것입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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