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의 자격

 

가격만으로, 상표명으로 럭셔리를 정의하는 시대는 지났다. 개성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가 함께 해야 럭셔리로서 자격이 있다.

 

‘버투(Vertu)'라는 핸드폰 브랜드가

있다. 한때 세계 핸드폰업계의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가 1998년에

야심차게 내놓은 초고가의 핸드폰이다. 제일 싼 게 5백만

원 정도로 시작했다. 가장 비싼 것은 한정 특별판으로 몇 대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박혀 10억 원 이상으로 가격이 책정된 제품들도 나왔다. 대부분의

버투 제품들에는 사실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박혀 있었다. 지금도 해외 대도시에 버투 매장들이 있는데, 큼지막한 다이아몬드가 몇 개씩 박힌 몇 천만 원 짜리 제품들을 진열해 놓고 팔고 있다. 버투가 성공했을까? 노키아는

2012년 6월 버투를 매각했다. 물론 극도의

경영악화에 시달린 노키아의 구조조정 차원으로 벌어진 매각이었지만, 버투의 미래도 불투명한 상태임은 분명하다.

다이아몬드하면 우리말로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고 번역된 'Diamond is Forever'란

불멸의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지구상의 물질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다이아몬드처럼 굳은 사랑, 수만 년 동안 맺힌 결정 덩어리인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하기에,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때 다이아몬드가 이용된다. 남성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며 프러포즈를 하고, 여성은 더 이상 행복할 수는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다이아몬드 광고의 전형적인 공식이다. 그런데 어느 조사에 의하면

결혼 예물이나 프러포즈 선물로 건네지는 반지에 달린 다이아몬드의 크기, 곧 값어치와 결혼 생활의 길이는

반비례한단다. 여자가 남자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며 프러포즈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이런 다이아몬드의 유통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광고

캠페인이 있었다. 여성의 독립성을 상징하는 표식으로서 오른손에 끼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세운 것이다.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기존 유통점에서 반발이 무척 심했다고 한다.

다이아몬드 반지의 존재 의미를 밑바탕에서부터 흔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여류 유명 인사들이 오른손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반지 낀 손을 일부러 보여주며 그 의미를 얘기했다.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곧잘 내는 여배우 할리 베리가 TV 토크쇼에서 여성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오른손에 낀 반지를 보였다. <캣

우먼>에서는 오른손에 낀 반지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춘 포스터를 제작했다. 그리고 독립 성향이 강한 뉴욕 여성들의 삶을 그린 <섹스 앤

더 시티> 의 주인공들이 역시 종영 파티에서 기자들에게 오른손에 낀 반지를 보여주며 포즈를 취했다. 유명 방송인인 케이티 커릭이 역시 오른손의 반지를 내보이며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남자들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버는 똑똑한 여자들이 왜 남자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죠?” 다이아몬드 반지의 매출은 10% 가까이 올랐다.

 버투의 핸드폰에 박힌 다이아몬드와 ‘똑똑한’ 최소한 ‘똑똑해 보이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오른손에 낀 반지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들의 엇갈린 매출 성과는 무엇을 얘기하는가? 단순한 가격을 떠나 다이아몬드에 담긴 의미가 다르다. 버투는 자신이

돈이 많다는 것을 과시했을 뿐이다. 가격만으로 따진다면 얼마든지 더 비싼 핸드폰이 나올 수 있다. 실제 근래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이 박힌 디자이너가 만든 아이폰 케이스가 버투보다 비싼 가격에 훨씬 많이
팔리고 있다. 오른손의 다이아몬드 반지는 가격을 가지고 따지지 않는다.

어떤 크기의 다이아몬드라도 오른손에 끼었다는 자체로 독립된 존재로서 자아실현을 위하여 노력하며,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가격만으로, 상표명으로

럭셔리를 정의하는 시대는 지났다. 개성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가 함께 해야 럭셔리로서

자격이 있다. 스마트한 개인으로서의 개성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보여 주는 게 바로 이 시대의 진정한

럭셔리, 스마트 럭셔리다.

박재항(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Pulse> 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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