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The PR>12월호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자전거로 읽는 기아차 브랜드




        지난 11월 11일 ‘케이벨로(K-Velo)’라는 자전거가 시장에 나왔다. 신제품이라고는 해도 자전거 하나가 그렇게 조명을 받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자전거는 기아차의 최고 디자인 책임자인 피터 슈라이어가 직접 디자인한 자전거로 ‘케이벨로(K-Velo)’라는 브랜드를 달고 화려한 조명 아래 발표되었다. 피터 슈라이어는 2006년 아우디에서 기아차로 합류한 이후, 기아차 ‘디자인 경영’의 실질적이면서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얼마 전 VW그룹의 페르디난드 피에히 이사회 의장이 유럽에서 기아차가 매년 보여주고 있는 무서운 성장을 떠올리며 獨언론과 인터뷰서 "이미 잃은 것에 대해 평생 후회한 적이 없는데 단 하나 예외가 있다. 피터 슈라이어를 아우디에서 떠나보내 기아자동차로 가게 한 것이다. 그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얘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케이벨로 자전거 출시와 관련하여 어느 신문은 ‘기아차가 자전거도 만든다?’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눈길을 끌기 위해서 의문부호를 붙이 것일 수도 있으나, 자동차 기업에서 자전거를 내놓았다고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사실 자동차 기업에서 자전거를 내놓는 경우는 많다. 작게는 장난감과 같은 모형차에서 액세서리, 티셔츠와 점퍼 같은 의류, 골프백 등의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자동차 기업에서는 ’브랜드 컬렉션(Brand collection)'이라고 하여 전시하고 직접 판매해왔다. 자전거도 그런 브랜드 컬렉션의 단골 품목 중의 하나였다. 기아차에서도 이미 인기 품목인 소울을 모델로 한 자전거를 내놓았었고, 현대차에서도 투싼과 쏘나타 자전거가 나왔었다. BMW자전거는 많은 자전거 애호가들의 로망 품목 중의 하나이다.




        이번에 출시된 케이벨로가 앞서의 브랜드 컬렉션 자전거와 다른 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브랜드의 상징적 인물인 디자이너를 전면에 내세웠다. 특정한 모델이 아닌 기업 전체 브랜드와 연결시켰다. 모든 기아차 디자인의 상징적 요소 중의 대표격인 ‘호랑이 코(tiger nose)를 자전거 프레임에 적용시켰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기아차의 디자인을 반영했다는 것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였다. 둘째, 일반적인 브랜드 컬렉션으로 기념샵 같은 데 전시되거나 아주 제한적으로 팔리는 것을 넘어서 자전거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판매할 계획을 명확히 보여줬다. 100만원에서 150만원의 가격대를 알렸고, 유명 탤런트를 기용하여 1호 자전거 증정식 행사와 함께 케이벨로의 대변인 격의 역할을 맡겼다. 셋째, 한국의 대표적인 자전거 전문 기업인 삼천리자전거와 공동으로 연구, 개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본격적인 자전거 시장 진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삼천리자전거와의 협력은 기아차 브랜드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원래 기아차와 삼천리자전거는 뿌리가 같았다. 기아차는 일제말인 1944년에 경성정공이라는 자전거부품 생산 공장으로 태어났다. 자전거 부품을 만들고 수리를 하다가 1952년 한국전이 한창인 상황에서 ‘삼천리호’라는 최초의 국산 자전거를 내놓았다. ‘삼천리금수강산’의 통일을 바라는 염원으로 삼천리라는 브랜드를 붙였는데, 이는 기아의 독자적인 자전거 브랜드가 된다. 이 때 회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변경했고, 자동차에 대한 연구도 시작했다. 1979년에 ‘삼천리자공’이라는 회사를 세워 자전거사업부를 분사시켰고, 이후 삼천리자공은 삼천리자전거주식회사, 즉 지금의 삼천리가 된다.




        해외 시장을 향해 기아차의 기업 브랜드를 수립하기 위한 작업을 하면서 필자는 기아차의 역사, 특히 초기의 탄생과 자전거 얘기에 매혹되었다. 1944년이라는 일제말의 그 힘든 시기에 자전거 부품을 만드는 회사를 세울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한국전이 한창인 와중에 ‘아시아를 일으켜 세우겠노라’하는 ‘기아’라는 브랜드를 만든 호방함은 어디에서 연유했을까? 이후 굴곡의 세월을 거쳐 1998년에 현대차그룹에 합병된 이후도 쉽지는 않았다. 결국 디자인경영으로부터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하며, 현재의 기아차로 우뚝 서게 된 그 역사에 기반을 둔 스토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전거로부터 시작하여 지금의 기아차가 되는 과정을 훑으며 기아차 브랜드를 얘기하려던 시도는 유감스럽게도 그다지 좋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 거의 가내수공업에 가깝게 자전거나 두드려 맞추던 시절을 보이면, 기아차의 품질에 대한 의구심만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요 논지였다. 논지를 떠나서 현재의 자랑스러운 것들이 많은데, 굳이 예전의 부끄러운 모습을 들추어 보이려는 것이냐는 반응도 있었다.




        예전에 삼성 브랜드를 할 때도 비슷한 반응을 겪은 경험이 있다. 삼성전자가 산요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으며 출발했고, 눈치껏 기술을 훔쳐오다시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먹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했고, 아주 기본적인 의류조차 변변치 않던 시절에 밀가루, 설탕, 면직의 세 가지 흰색 재료나 물품을 쓰는 소위 삼백(三白)산업으로 그룹을 일으켰다. 이 역사가 멋진 스토리텔링의 재료라고 생각하고 제시했는데, 격렬하다고까지 표현할 정도의 반대에 부딪혔다.



        자신의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감추려 하는 것도 일종의 콤플렉스이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럴 이유도 없을뿐더러, 자칫하면 기만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역사는 진실한 것이기에 사람들을 끄는 힘이 있다. 이번 케이벨로 출시를 하면서 기아차의 해외 블로그에서 자전거와 결부된 기아차의 역사에 대해서 이전의 흑백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포스팅을 했다.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미약한 시작에서 이룬 놀라운(amazing) 이야기’라는 표현이 숱하게 나왔고, 기아차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고 토로한 친구들이 꽤 많았다. 무엇보다 과거를 인정하고, 그것을 원천으로 자신의 기업 브랜드와 연결시켜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의 제품으로 만들어 내놓은 기아차의 자신감에 박수를 보낸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