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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의 데생과 추사의 세한도

마산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선생은 회화에도 뛰어나서 젊은 시절에 훌륭한 데생 작품을 몇 점 그렸단다. 어떤 사람이 그의 데생 여섯 점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조각가가 된 후 문신 선생이 젊은 시절 자신의 혼이 깃든 데생 작품인데 되팔 수 없겠냐고 간곡하게 부탁을 했는데, 그 데생 작품의 소유자는 거절을 했단다. 이후 세월이 흘러 문신 선생이 작고하고 나서, 문신 선생의 부인이 찾아와서 똑같은 제의를 했단다. 마산시에서 문신미술관을 만드는데, 그 데생 작품이 있어야 문신 선생의 예술 역정을 완성할 수 있으니 팔라고 했단다. 그 때도 역시 거절을 했단다. 그런데 2010년 해운대의 고급 아파트에 화재가 났을 때, 그 여섯 점의 작품도 함께 소실되었단다. 당시 해운대 고급 아파트에 그 작품들을 보관하고 있었던 소유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한없이 후회했습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가지고 있다가 결국 화가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재산을 잃은 것보다 더 안타깝습니다.”

 

위의 얘기는 검사 출신의 조근호 변호사라는 양반이 쓴 <오늘의 행복을 알 수 있다면>(21세기북스)이란 책이 나온 일화이다. 가까운 예전 클라이언트가 저자가 자신의 친구라며 선물로 줘 훑어 보았는데, 눈에 띄었고 기억에 남았다. 아마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 곧 제주도 편을 읽고 있는데, 거기서 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올 때의 그 유명한 일화와 겹쳐지며 연상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세한도는 청나라 경학(經學) 전공자인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서울에 왔다가 추사 연구를 하며 자료를 모은 후지쯔까 치까시(藤塚鄰)가 휘문고등학교를 세운 민영휘의 아들인 민규식으로부터 구입했다. 1944년 여름에 후지쯔까는 살림살이를 싸들고 일본으로 귀국했다. 서예가이자 서화수집가였던 소전(素田) 손재형이 이 사실을 알고 개탄을 하다가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던 후지쯔까의 집으로 찾아 갔단다. 두 달간 매일 후지쯔까의 집에 찾아가 자신에게 세한도를 넘기라고 졸랐단다. 그의 열정에 후지쯔까는 아무 조건 없이 잘 보관만 해달라며 세한도를 넘겨주었다. 3개월이 지난 후 후지쯔까의 집이 미군의 공습으로 불타서 전소되었다고 한다. 손재형이 아니었다면 세한도도 한 줌의 재로 변할 뻔했다.

 

두 일화가 충분히 함께 엮여 연상될만하다. 문신 선생의 대셍 작품을 고집스레 가지고 있다가 결국 후회를 하게 된 분은 그 사건에 깨달은 바가 많았다고 한다. 해운대 그의 아파트에 화재가 나서 아파트에 있던 재산을 모두 잃었지만 아래처럼 얘기하며 무척이나 담담했다고 한다.

 

“남은 것은 제 몸과 머릿속에 있는 추억뿐이지만 마음은 매우 홀가분합니다. 그동안 무슨 이유로 그렇게 소유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인생관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는 게 정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베풀고 나누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위의 얘기에 이어 문신 선생의 데생과 관련한 일화가 나온다. 그 분께서 문신 선생의 데생 작품을 비롯한 소유물은 잃었지만 새롭게 깨닫고 발을 디딘 무소유, 베푸는 삶이 계속 된다면 이제까지보다 더 한 행복을 느끼고 계실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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