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루에 얼굴을 몇 번 만질 것 같아요?” 지난 6월 말 열린 칸 국제광고제에 만난 미국 뉴욕 소재 광고회사인 R/GA의 창업자이자 공동대표인 원로 광고인 밥 그린버그(Bob Greenberg)가 “하루에 나이키 퓨얼밴드를 몇 번이나 체크합니까?”란 필자의 질문에 되물었다. 

나의 활동량을 기록한다 

나이키 퓨얼밴드는 팔찌처럼 팔에 차면 걷기, 달리기, 점프 심지어는 춤동작까지 각종 운동 종류에 따른 운동량과 칼로리 소모량을 측정하는 도구이다. 예전의 ‘나이키+’가 운동화에 센서를 장착하고 아이폰이나 아이팟과 연결해 결과를 봐야만 했던 것을 훨씬 쉽게 일체형으로 처리할 수 있게 했다. 칸 국제광고제에서 사이버부문 대상에 이어 ‘대상 중의 대상’이라고 하는 종합마케팅부문 그랑프리까지 거머쥔 올해 칸의 최고 화제작이었다. 

정말 사람들은 하루에 얼굴을 대체 몇 번이나 만질까? 그에게 답을 들은 후 칸에서 돌아와 강의가 몇 차례 있어 그때마다 물어보았다. 보통 20~30번 정도라고 대답했다. 밥 그린버그의 말에 따르면 1500에서 2000번이란다. 우리도 알지 못하는 새 계속 귀나 코를 만지고 이마의 땀을 닦고 눈을 비비고 하는 것들 생각해보면 그 정도가 나올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가 말했다. “나이키 퓨얼밴드는 몸의 일부분과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만지고 체크하고 그러죠. 하루에 몇 번 체크한다 얘기할 수가 없어요.” 몸의 일부분과 같다는 표현이 와 닿았다. 

“어떻게 이런 제품을 개발할 생각을 했죠?” 이 질문에 대해서는 “2년 이상 나이키와 공동 작업을 했다. 매우 힘들었다”는 얘기만 되풀이했다. 이전에 나이키+ 제품이 나왔을 때는 애플이라는 IT 부문의 최강자와 협력했다. 사람들은 나이키에 대해서도 그랬지만 역시 애플이라 환호했다. 이번 제품은 순수하게 나이키란 브랜드만이 새겨져 있다. 운동보조기구라 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전자제품이다. 그럼 나이키가 전자회사가 되었단 말인가? 퓨얼밴드를 함께 개발한 R/GA는 무엇이지? 

자동차 뒷좌석 보채는 아이를 위한 앱 

아들 둘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차에 태우고 다니는 게 고역이었다. 우리 애들은 아주 얌전한 편인 데도 5분만 넘으면 뒷좌석에서 몸을 뒤척이며 “얼마나 더 가야 해요?”하는 질문을 2~3분 간격으로 계속 물었다. 

일본의 도요타에서 위와 같은 상황을 타개할 마술 같은 아이폰 앱(App)을 가지고 나왔다. 앱을 설치하면 차가 달리는 경로를 따라 함께 달리는 효과를 낸다. 카트라이더와 같은 게임을 바로 현실의 길로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길을 달리면서 점수를 따는 장치가 있고 주위의 지형지물과 지리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익힐 수 있게 했다. 애들이 둘인 경우 서로 경쟁을 시킬 수도 있다. 애들을 조용히 시키는 데 이만큼 효과적이면서도 교육적인 도구는 없을 것 같다. 조금만 더 발전하면 카트라이더와 같은 게임회사나 닌텐도 같은 곳에도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종류의 게임 앱은 도요타의 어느 부서에서 개발해야 할까? 그 개발 과정에서 광고회사는 과연 어떤 역할을 했을까? 

신제품 개발과 신규 부문으로 확장은 누구의 책임?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회사에는 신제품 개발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다. 제품개발 부서는 대개 기존 제품에 기반을 둔 상태에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다. 1989년 필자가 모 전자회사의 신입사원 입문교육을 받을 때 신제품개발 부서 직원이 강사로 왔다. 그 분 말씀인즉 솔직히 얘기해서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할 만한 전자제품은 ‘짤순이’가 유일하단다. 다른 제품들은 외국에서 이미 개발된 것을 그대로 모방했단다. 그러면서 사실 따지고 보면 ‘짤순이’도 기존 세탁기에 있는 탈수 기능만을 떼어낸 것이라 신제품이라고 말하기도 쑥스럽다고 했다. 당시에는 교육생으로 가만히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짤순이는 세탁기를 살만큼 구매력이 없고 주거사정이 대형 세탁기를 놓을 공간도 마땅치 않은 한국 실정을 제대로 반영한 빼어난 신제품이었다. 한국의 전자산업발전사에 자랑스럽게 한 페이지를 장식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제품과 완전히 다른 업종으로 인식되는 제품을 새롭게 갖추는 것은 제품개발 부서가 아니라 ‘(경영)기획’ 부서의 일로 인식된다. 신규 업종의 진출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기존의 것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곳으로 진출하는 경우와 기존의 분야도 유지하며 다른 곳으로 확장하는 경우가 있다. 목재회사였던 노키아가 TV와 컴퓨터 모니터를 거쳐 핸드폰으로 사업을 전환한 것은 전자의 사례에 가깝다. 

한국의 기업들은 아무래도 확장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1980~1990년대 한때 한국의 대기업 집단은 다양한 업종에 진출해 있다는 자체를 자신들의 특징이자 자랑할 점으로 내세웠었다. 그런 경향을 발휘한 대표적인 광고물 두 개를 기억하고 있다. ‘A to Z’라는 헤드라인 아래 알파벳 A로 시작하는 ‘항공(Aviation)’부터 Z의 ‘동물원(Zoo)’까지 26개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모든 업종에 진출해 있다는 광고가 그 하나다. 비슷하게 ‘Chip to Ship’이라고 해서 ‘반도체에서 선박까지’ 아주 정밀하고 작은 반도체 칩부터 중후장대의 대표인 조선업까지 역시 다양한 업종에 진출해 있음을 핵심으로 하는 광고가 나온 적이 있었다. ‘짤순이’나 ‘반도체에서 선박까지’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사업분야에 진출할 때 광고회사는 아마도 사후에 바로 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은 광고물을 만들 때나 관여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수동적으로 주문을 받는 식이었을 것이다. 사전의 의사결정과정에서는 전혀 끼어들 부분도 없었고 의사결정권자들이 의견을 받는다든지 고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광고회사가 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라인을 확장하는 경우에 기업의 브랜드 성격이 어떻게 되는지 제품들은 소비자들에게 혹은 업계에서 어떤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감안하고 결정했으면 한다. 소비자들의 인식 측면에서 가장 가깝게 지켜보고 감을 잡고 있는 게 바로 광고회사 사람들이다. 

어느 기업의 대표가 친구인 광고회사 대표에게 말했다. “우리 광고는 10년 동안 바뀌지 않고 똑같은 것을 틀고 있어. 그런데 왜 내가 자네에게 돈을 줘야 하지?” 광고회사 대표가 대답했다. “안 바뀌게 하는 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이지.” 광고계에서는 유명한 일화이다. 광고회사의 그 대표는 단순히 광고물을 예전 그대로 고수하고 있던 것이 아니고 기업의 브랜드 그 자체와 관련한 활동의 일관성을 책임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 제품을 변화시키지 않고 신제품으로 만들기 

이 지구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없다는 얘기들을 한다. 창의적인 것은 만드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란 말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사과 산지인 아오모리현이 1991년의 태풍 피해를 극복한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태풍으로 대부분의 사과가 땅에 떨어지고 10%만이 겨우 나무에 매달려 있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아오모리의 사과재배 농민들은 그 10%의 사과에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는 이름을 붙여 수험생들에게 ‘합격 사과’로 판매했다. 원래 사과의 10배가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엄밀하게 보면 아이모리의 농민들이 판 것은 사과가 아니다. 합격을 기원하고 응원해주는 부적이나 행운의 상징이었다. 

미용용품으로 비누로도 쓸 수 있는 에그팩 제품이 있다. 주로 홈쇼핑으로 많이 팔리는 데 처음 이 제품은 비누인데 팩으로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호응이 별로 일지 않자 전략을 바꿔 팩인데 비누처럼도 쓸 수 있는 제품으로 알리자 매출이 급격히 올랐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혼다의 첫 번째 제품은 자전거에 모터를 단 제품이었다. 자전거인데 모터가 달려서 힘을 들이지 않고 언덕길도 올라 갈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라고 광고를 했으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제품 성격에 대한 규정을 바꿔 가벼운 오토바이로 규정하고 팔기 시작하자 날개 돋친 듯 팔려서 현재의 대기업 혼다를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제품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도 라인을 확장한 사례가 있다. 시리얼과 스낵칩의 중간, 우유를 부어서 먹기도 하고 그냥 과자처럼 먹기도 하는 쉬레디(Shreddies)란 제품이다. 영국을 비롯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같은 영연방 국가들에만 주로 유통되어 우리에겐 좀 낯설다. 광고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데 인턴으로 근무하던 친구가 네모난 칩 형태의 쉬레디를 다른 각도로 보면 마름모꼴 다이아몬드 형태로 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다. 거기서 출발해 쉬레디는 ‘다이아몬드 쉬레디’라는 신제품을 냈다. 이전의 제품은 ‘네모(square) 쉬레디’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네모와 다이아몬드를 혼합한 ‘콤보팩(Combo Pack)’이란 것까지 내놓았다. ‘네모’ ‘다이아몬드’ ‘콤보팩’ 쉬레디의 차이점은? 전혀 없다. 모양조차도 똑같다. 포장지 전면에 표기된 글자만이 다를 뿐이다. 

다이아몬드 쉬레디가 나온 후 소비자들이 직접 먹어보고 네모 쉬레디와 맛을 비교하는 조사 동영상을 봤다. 한쪽에는 네모 형태로 다른 쪽에는 다이아몬드 형태로 배열한 쉬레디를 조사대상자 앞에 놓고 비교를 하게 했다. 

조사원이 어리둥절해 하는 조사참여자에게 ‘그냥 모양만이 다를 뿐’이라고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70%의 사람들이 다이아몬드 쉬레디의 맛이 더 좋다고 응답했다. 

쉬레디와 같은 시리얼이나 스낵칩은 매장의 판매대에 차지하고 있는 공간과 매출이 거의 비례한다. 그런데 한 제품으로만 차지할 수 있는 공간에는 한계가 있다. 

쉬레디의 경우는 제품 자체는 바꾸지 않고 세 개의 제품라인을 갖게 되어 판매대의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 쉬레디 사례를 TED에서 발표한 광고회사 친구는 “제품에는 전혀 손대지 않고 무형의 가치를 더한” 대표적인 경우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영국의 철학자이자 문필가인 새뮤얼 존슨의 말을 덧붙였다. “새로운 것을 친숙하게, 친숙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시다.(Poetry is when you make new things familiar and familiar things new)” 브랜딩이나 마케팅이 바로 이 문구의 시와 같다. 몇십 년을 두고 쓰는 제품이라도 항상 새롭게 느껴지게 하는 게 바로 마케팅이고 브랜딩의 목적이다. 

자동차만 또는 운동화나 운동복이란 제한적인 업종을 넘어서 자신의 브랜드와 소비자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신제품을 내놓고 소비자들의 시각을 바꿔 기존의 제품을 새롭게 보도록 해 신제품의 효과를 보게 하는 것. 이런 게 바로 광고회사가 단순히 광고물만을 만드는 것을 넘어 추구하고 확장해야 할 부분이다.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장]-----------------------------<럭스멘>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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