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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 비법(?)-부족함을 강점으로

지난 주 기억에 남을만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나 했다. 광고회사에서 가장 큰 행사로, 힘을 많이 기울이는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경쟁사와 경합하는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다행스럽게 좋은 결과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여러 가지 특이한 점들이 있었다. 어찌 보면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는 방법과는 거리가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점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물론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 견강부회했다고 해도 할 말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이번 한번만으로 한정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몇 가지 내게 부족했던 점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긍정적으로 작용한 부족했던 것들을 살펴보자.

1. 전문 지식 부족

이번에 프레젠테이션을 한 부문은 내 전공이 아니었다. 꼭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까지 해온 것과는 거리가 있는 분야였다. 처음부터 경합 프로젝트에 관여를 했지만, 아주 한정된 분야에서만 아이디어를 내려고 노력했다. 원래 제안서 서류 심사에서 차이가 많이 날 경우에는 본선 프레젠테이션 없이 결정한다고 해서 제안서 심사만으로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반농반진으로 얘기를 할 정도로 그 분야에 대해서는 별 자신이 없었다. 백지 상태에서 받아들이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물어보았다. 그러다보니 심사위원을 비롯하여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용어들도 생경한 것들이 많아서 어떤 의미인지 이해를 하려다보니, 그쪽 분야의 용어가 아닌 일상용어로 바꾸어서 뜻을 헤아리고,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경합을 포함하여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전문용어를 구사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 어떤 때는 그렇게 해야 전문성이 인정된다고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함께 듣는 나도 그런 용어를 들을 때마다 프레젠테이션 받는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도 알게 모르게 그런 용어들을 쓰고는 ‘아차’ 싶을 때가 많다. 별 것 아니게 ‘브랜드전략이 필요합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브랜드전략’이란 용어의 정의뿐만 아니라, 범위에 대해서는 제각기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광고의 요체는 설득이라고들 얘기한다. 광고를 통하여 소비자들을 설득해서 내 제품을 사도록 한다. 이전에 광고회사에서는 광고물을 클라이언트에게 팔아야 한다. 그래서 그 광고물들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고, 어떻게 효과적일 것인지 설득하여야 한다. 그 설득을 위한 대표적인 과정이 바로 프레젠테이션이다. ‘내가 전문가이니 내 말을 따르시오’라는 식의 접근이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눈높이에 맞추어 그들의 언어로 얘기를 해야 제대로 소통이 되고 설득을 할 수 있다. 이번 경우에는 내 전문성이 부족한 관계로 자연스럽게 상대의 눈높이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2. 연습 부족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일수록 회사 내 최고경영층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정식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직전의 리허설도 몇 차례씩 하는 경우도 많다. 실전에 가까운 무대에서 연습을 할수록 실제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고, 특히 프레젠테이션에 이어지기 마련인 질의응답에 대한 대비를 충실히 할 수 있다. 실제로 프레젠테이션 자리에는 예상 질의응답서를 가지고 가는 경우가 많다. 예상 질문을 세세하게 만들고, 그에 따라 역시 자세한 답변을 준비해 간다.

몇 차례 리허설 형식의 연습을 하면 프레젠테이션 시간도 거의 딱 들어맞게 맞추고, 리허설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서 질문을 해도 예상 질문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자신감도 쌓이게 된다. 그런데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하면 연습에서 했던 형식에 얽매여 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지를 자신도 모르게 없애버릴 수 있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친구가 프레젠터로 나서는 그런 경우가 생기기 쉽다. 아무리 실전과 비슷하게 해도 회사에서는 아는 사람들이고, 나름의 유머가 통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심사위원 앞에서 회사에서 했던 농담을 그대로 사용하여 썰렁한 분위기 만드는 것을 자주 보았다. 질의응답할 때도 준비한 대답을 그대로 외우다시피 해서 대답을 하다 보니 정작 질문자의 의도를 넘어서 시간만 소비하며, 짜증을 내게 만드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이번에는 타이밍이 묘하게 걸려서 사내에서 리허설을 하지 못했다. 관련자들이 몇 차례 모여서 함께 공부하며 동시에 프레젠테이션 원고를 만들었다. 초안 하나를 만들면 그것을 가지고 대충 읽어보며 내용을 소화시키고, 시간도 얼추 맞추어보는 식이었다. 그런 과정을 세 차례 거치면서 내용과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숙지 정도와 자신감이 조금씩 붙었다. 맨 처음 초안을 만들고 그것을 훑으며 독회 형식으로 했을 때 20% 정도였다면 이후로 그런 과정을 다시 할 때마다 상태가 20% 정도씩 높아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현장으로 가기 직전의 마지막 회의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몇 개 나왔다. 여러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으니, 아는 만큼만 얘기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며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워낙 전문적인 분야라 해당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인원이 두 명 들어갈 수 있었다. 대충 직접 대답할 수 있는 건 하고, 맡기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편해졌다. 그리고 질의응답에 대비하여 위험한 여지가 있지만, 비장의 무기를 하나 직접 마련했다. 약간 도박성이 있는 것이었는데, 멋지게 적중했다.

3. 포장 부족

대규모 회사일수록 프레젠테이션에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자금이 많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회사 대비 그런 점에서 강점을 가지다 보니 사실 큰 회사가 펼쳐내는 프레젠테이션이 여러 가지 화려한 기법을 동원하여 다채로운 메뉴를 제공한다. 예전에 삼성전자는 산탄총, 애플은 저격용의 총을 쓴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큰 회사들은 본인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산탄총식 다르게 표현하면 융단폭격을 하는 방식을 잘 취한다. 거의 10년 전에 광고회사 별 프레젠테이션의 특징이란 제목으로 그런 물량공세를 꼬집는 형식의 인터넷 유머가 돌기도 했다.

이번에는 유감스럽게 다채롭게 꾸며서 내놓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발표자인 내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내용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을 간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볼거리 동영상이나 화려한 애니메이션과 같은 포장은 최소한도로 절제하고 본론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워낙 내용을 모르기도 하고, 있는 내용을 소화하기도 벅찼으니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결국 있는 것들만이라도 최대한 충실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듣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얘기를 하는 게 좋겠다는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그들에게 미약한 내용이나마 듣기 좋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우러났다. 실제 프레젠테이션에서 그런 마음이 전달되었다고 자부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논란이 심했던 2000년 대선 개표방송은 첨단 그래픽의 경연장이었다. 마침 불어 닥친 IT붐도 한몫했다. 온갖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정치전문가들이 나서서 말의 성찬을 벌였다. NBC의 정치담당 기자였던 팀 러서(Tim Russert)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애들이 쓰는 작은 보드에 직접 득표수를 쓰면서 설명했다. 그리고 ‘플로리다’를 세 번 반복해서 쓴 종이를 보여주며, 플로리다가 관건임을 강조했다. 그 해 미국 대선 관련 방송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팀 러서의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모습이 꼽혔다. 지난 2008년 58세의 나이로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떴을 때, 어린이들이 쓰는 보드나 A4 종이위에 쓴 조문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도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게 팀 러서 식의 단순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접근이 차라리 요점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효과를 거두었던 것 같다. 세 팀이 경합에 참가했는데, 우리가 마지막 순번이었다. 앞선 팀들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하여 이미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으리라 추정하여, 바로 우리가 얘기하고 싶은 내용에만 주력해도 괜찮고, 과도한 포장으로 주변 때리는 것은 연이은 프레젠테이션을 듣느라 지친 심사위원들에게 별로 어필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경합 프레젠테이션에서 순번은 매우 중요하다. 보통 추첨으로 결정을 하니까, 받는 순번 자체를 어떻게 할 도리는 없다. 순번에 따라 프레젠테이션 방식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마지막 순번이면 대개 심사위원들이 지쳐있기 마련이다. 빨리 끝내주는 게 좋다. 당연히 무조건 빨리 끝내는 것은 아니다. 할 얘기는 하면서 심사위원들을 배려한다는 느낌을 주면 된다. 잘만 하면 말 한 두 마디로 충분히 가능하고, 내용에 더욱 집중하며, 잘 정리되어 있다는 인상까지 심어줄 수 있다. 너무 리허설이나 실전연습 때 보여준 것과 같은 틀을 탈피할 여지를 갖는 것과 같은 선상의 얘기이다.

경합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이겼다는 통보를 듣는 그 날만 좋다고들 한다. 환희는 그야말로 순간이고, 바로 일상의 업무가 되어 압박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부족한 점들이 있었지만, 운이 좋게 프레젠테이션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뻔뻔스럽게 잘했다고 이렇게 졸문까지 써서 올리는데, 진정한 성과와 평가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 잔치는 끝났다. 이제는 다시 일상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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