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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炸裂)하는 잉여력

작렬(炸裂)하는 잉여력

        잉여의 사전적인 뜻은 ‘다 쓰고 난 나머지’. 인터넷 누리꾼 등을 중심으로 경쟁에서 낙오해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존재이거나, 쓸모없는 일을 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자조적인 뜻으로 쓰이는 ‘인터넷 은어’다. (2012. 2.9. 한겨레신문 기사 중)

        작년 하반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땅 관련한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다. 히틀러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 독일 영화를 패로디하여 내곡동 사건을 비꼰 동영상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원래 영화의 대사를 사건에 관련된 내용으로 바꾸어 자막에 올렸는데, 길이와 입모양까지 맞춘 것과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그럴 듯했다. 원래 그 영상은 지난 2010년말 롯데마트에서 ‘통큰치킨’을 내놓았을 때, 그것을 패로디하며 처음 등장했다. 가끔 강의할 때 그 통큰치킨의 패로디 영상을 보여주곤 하는데, 지금도 보여줄 때마다 청중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다. 히틀러가 전황이 왜 엉망이 되었냐고 그의 장군들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질책하는 장면을 통큰치킨을 먹지 못하여 흥분한 것으로 바꾸었다. 통큰치킨에서 쓴 원판은 그대로 두고 대사 자막만을 바꾼 내곡동 동영상을 보면서 감탄을 하는데, 한 친구가 말했다. “잉여력이 작렬하는구만!”

        그 때 처음으로 ‘잉여력’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잉여’란 말이 인터넷 세상에선 널리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1년 8월 23일 주의 <주간한국>에 의하면 2010년 네티즌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 순위에서 잉여가 ‘레알’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필자 자신이 새로운 언어와 문물에 둔감했던 것을 절감하며 반성을 했다.

과거와 현재의 ‘잉여’는 다르다

        ‘잉여’라는 말이야 오래 전부터 있었다. 사실 ‘잉여’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필자에게 처음으로 떠오른 연상은 전후 5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중의 하나로 꼽히는 손창섭 선생의 소설 <잉여인간>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수필가로, 또 청록파 시인 3인 중의 한 분인 박목월 시인의 아들로도 널리 알려진 박동규 선생님께 소설 관련 과목을 학창시절에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선생께서 척박하고 앞이 보이지 않던 한국전 후 1950년대의 모습을 손창섭의 그 소설을 들어서 실감나게 묘사, 설명해주셨던 시간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잉여인간>이 영화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지만, 소설 <잉여인간>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줄곧 이범선 선생의 원작에 유현목 선생이 감독한 영화 <오발탄>의 장면들이 생각났다. 바로 그 분위기였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출구는 보이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고 거리는 황량하기 그지없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실제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다.

        지금의 잉여는 손창섭 선생이 그린 한국전으로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회 전체가 피폐해진 ‘50년대의 잉여와 다르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그래서 아무 것도 만들어내는 것 없이 환경적으로 강요된 ’무위(無爲)‘의 상태가 바로 과거의 잉여였다. 이에 비해 지금은 히틀러 영화를 패로디한 동영상에서 보듯 꼭 시간이 남지 않고, 자신이 꼭 해야 할 의무감 없이도 뭔가를 만들어낸다. 즉 ’무위‘의 상태로 지내기를 거부하고, 뭔가를 이루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잉여력이다. 예전처럼 만들어서 자신만의 장소에 꼭꼭 숨겨 두는 것이 아니라 공개한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남는 시간에 심각하게 한 것이 아니기에 사실 비난하거나 혹평할 이유도 없다. 그런 비평을 하는 당사자가 유치해지고 모자라 보일 뿐이다. 대부분 잊혀지지만 히틀러 패로디처럼 격찬을 받는 작품들은 순식간에 인터넷을 풍미하면서 아류들이 나오거나, 원본 패로디를 패로디한 잉여의 잉여 산물들이 줄을 잇게 된다. 어찌 보면 집단창작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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