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스스로 규정하고 만드는 것

입력 2012-02-26 19:41 수정 2012-02-26 19:41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규장각국학연구원 엮음, 김수진 책임기획, 글항아리 펴냄)이란 책을 읽다 보니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란 책에 읽힌 얘기가 책 소개와 함께 나온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조선고적도보>에 대해 이렇게 설명이 나와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 일본인들이 한국 고적의 도판(圖版)을 모은 책. 조선총독부의 후원 아래 일본인 학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다니이 사이이치[谷井濟一]·구리야마 슝이치[栗山俊一] 등이 1915∼1935년의 20년간에 걸쳐 낙랑시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고적을 주로 하고, 거기에 각종 유물들의 도판을 모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것이다.












이후에 인용된 것을 보아도 당시로서 우리나라의 유물과 유적들을 최대한 집대성한 아주 귀한 책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에서 이 책을 소개한 서울대 규장각의 목수현 교수의 360쪽에 나온 다음과 같은 언급들이 객관적인 책에 관한 사실들의 소개보다 인상 깊게 다가왔고 남았다.












<조선고적도보>의 주인공은 대부분 유적과 유물....












사람들은 유적의 크기를 알게 해주는 척도로 쓰였을 따름....












거기에는 이 유적, 이 문화를 일구고 가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지 않다. 다만 다스리게 된 땅의 ‘물건’을 재고 기록한 엄정한. 그렇지만 차가운 눈이 있을 따름이다.












역사를 어떠한 땅에 오랜 시간 머물렀던 사람들이 일구어낸 것으로 보지 않고 오직 그 결과물로 남은 물체로서 보는 역사관이 깔려 있는 것이다.












‘제품을 영웅으로 만들겠다’고 미국 광고 회사 애들이 얘기하는 것을 수차 들었다. 어느 순간에 한국의 광고 회사 친구들이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제품을 광고에서 멋지게 부각해달라는 광고주에게 그들이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제품을 영웅처럼 돋보이게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야 약간의 과장스런 표현이라며 넘어갈 수도 있다. 문제는 제품에 대한 집중과정에서 그 제품을 쓰는 소비자, 인간들의 모습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과학’과 ‘객관’을 표방하는 조사를 행하고, 수치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인간의 감성은 어딘가로 사라진다. 인간은 단순히 제품을 위한 소품으로만 등장한다. 그런 제품은 잠시 인기를 끌 수는 있어도 오래 갈 수 없다. 결코 그 제품이 걸고 있는 이름과 의미가 장기적으로 사람들 속에 남아 존재하는 브랜드가 될 수 없다.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극동(極東)’과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에 대해서 전우용 선생이 272쪽에 정확하게, 그리고 브랜드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게 그 문제점을 짚으셨다.












한국은 유럽을 기준으로 할 때에만 ‘극동極東’아시아 국가인데도, 이제 한국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지리적 위치를 극동이라고 표현한다.












1882년 그리피스가 조선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라고 부른 이래 많은 외국인 여행가들이 이 별명을 즐겨 썼다. 한국인들은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럽인들이 부르는 별명에 ’어울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스스로를 규정하지 못하고 남의 규정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피명명자의 숙명과도 같았다. 이른바 오리엔탈리즘이란 이름 붙이는 자와 이름 붙여지는 자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라 해도 좋았다.












동양사학과로 들어와서 처음 배우는‘동양사학입문’ 시간에 왜‘극동’이 아니고 ‘동아시아’인지에 대해서 민두기 선생님의 열변을 들은 기억이 있다. 어쨌든 한국인들 스스로 ‘극동’이란 표현을 쓴 지는 한참 되었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 남는 두 ‘극동’이 있다. 프로레슬링에서 왜 그렇게 명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극동챔피언’이란 타이틀이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70년대 초로서는 상당히 있어보이는 명칭이었다. 다른 하나는 초등학교 근처에 있던 ’극동방송국‘이었다. 그 동네에서 워낙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해서 역시 나에게는 ’극동‘이란 말이 뭔가 있어 보이게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초등학생 시절의 나와 같은 수준으로 ’극동‘이란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유감이다.












1997년 삼성의 해외브랜드전략을 수립할 때, 가장 먼저 현상 분석과 반성을 겸하여 한 말이 있다. ‘우리가 우리를 정의하지 못하여, 다른 애들이 우리를 맘대로 정의하게 놔두었다. 현재 우리의 이미지와 브랜드란 바로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외국인들이 생각하고 부르는 것에 맞추어 우리를 규정하려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처음 언급된 이래 지금까지도 많은 부분에서 해오는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 조사를 해서 나온 현재의 이미지를 가지고 그에만 맞추어서 자신의 브랜드를 정의하자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스스로를 피명명자의 굴레에 묶어버리는 행위이다. 브랜드는 스스로 설정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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