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브랜드처럼 세대 만들기

Generating generations

-브랜딩 관점에서 본 세대 만들기-

        2003년 약 4년간의 미국 주재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자리를 잡자마자, 몇몇 친구들이 그 층 구석의 회의실로 불렀다. 자신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세대 하나를 파악하여 그들의 성격을 정리했는데, 그 세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작명 관련한 아이디어를 달라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그 세대에 관한 설명을 듣고, 며칠 고민하면서 이리저리 단어와 알파벳을 조합한 몇 가지를 내놓았으나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결국 다른 분이 낸 안이 채택이 되어서 세상에 발표가 되었다. 바로 ‘P세대’였다. P세대는 그 해의 주요 신조어이자 시사용어로 선정될 정도로 널리 회자되었다. 그리고 다른 알파벳을 단 세대들이 줄을 이었다. 2011년에는 ‘애국심(Patriotism)’에 초점을 맞춘 다른 의미의 P세대를 모신문에서 주창하곤 했다.

알파벳 스프속의 세대들

        원조 P세대 이후 어느 지루한 회의 자리에서 주제에서 벗어나 혼자 머릿속으로 단어 퍼즐 놀이를 했다. 알파벳을 가지고 이리저리 단어를 만들어보는 놀이였다. 그러다 불현듯 지금의 20~30대의 속성과 ‘I’로 시작되는 여러 단어들이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Internet)으로 시작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뭔가 이루어져야 하는 인스턴트(Instant)적인 성격, 해외 경험이 이전 세대와 비교하여 많고(International), 본능에 따른 행동 경향이 짙고(Instinct), 깊은 뜻보다 재미를 추구한다(Interest) 등등 여러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이들을 한번 ’I 세대(Generation-I)’라고 명명하고 글을 한번 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I 세대’는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 다른 알파벳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하는데, 알파벳을 이용하여 명명된 여러 세대들이 굳이 자료를 따로 찾지 않아도 툭툭 떠올랐다. 호기심으로 세대 명에 아직 쓰이지 않은 알파벳이 있는가 찾아보았다. 웹사이트 검색 결과, 알려진 정도나 설득력과 적합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26자 모든 알파벳이 세대를 가리키는 데 쓰이고 있었다.

        알파벳이 세대를 가리키는 데 잘 쓰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브랜드에 역시 알파벳이 많이 쓰이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1. 단순/강렬함 – 한 자로 표현한다.

2. 이해/용이함 – 누구나 대충이라도 읽고, 알고 있다.

3. 연상/확장성 – 자유롭게 뜻을 상상할 수 있다.

X세대 이전의 명멸한 세대들

        알파벳 한 자만이 쓰인 것은 아마도 ‘X세대’가 효시가 아닌가 싶다. 그 이전 서구에서는 주로 특정한 성격을 지닌 주로 소수집단에 대해 단어를 만들어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1950년대 기성질서에 저항하는 문학을 추구하고 공연을 하던 젊은 예술인 집단에 붙은 ‘비트세대(Beat generation)’에서 ’비트닉(Beatnik)’이란 단어가 나왔고, 이어 ‘60년대에‘히피(Hippie)’로 약간 성격이 변하여 대를 이었다. 이 두 세대의 출생과 성장기를 가른 것이 2차 대전이다. 비트닉은 한창 감수성 예민한 10대에 전쟁을 겪었고, 히피들은 그야말로 전후세대이다. ’30세 이상은 믿지 말라‘,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며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과 함께 기성세대에 저항하고, 그들이 만든 질서를 조롱했다. 반전, 자연, 평화운동을 주창했다고 해서 이들을 ’플라워(Flower)세대‘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많은 히피들이 암울했던 ’70년대를 거치면서 정반대 성향의 ‘여피(Yuppie)’로 변신했다. 인구통계학적인 용어로 보면 여피가 2차 대전 직후부터 ’60년대 초반까지 베이비부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여피들은 자본주의의 첨병 노릇을 하며 ’탐욕의 80년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여피들의 바로 아랫세대가 X세대이다. X세대 이후로 예전에 온갖 알파벳이 난무하던 IBM의 제품명을 두고 누가 ’알파벳 스프‘라고 표현한 것처럼 세대명에서도 N세대, Y세대하는 식으로 알파벳들이 줄을 이었다.

        한국에서의 세대는 11980년대 말까지는 특정 시기의 정치적인 사건을 두고 주로 명명되었다. 1945년에 태어났다고 해서 ‘해방동이’라고 불리던 이들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호칭 자체로 지난한 현실 속의 몇 안 되는 위안거리가 되었다. 1960년의 4ㆍ19혁명과 1963년의 한일협정 반대 시위인 6ㆍ3의 주축이 되었던 이들은 ‘60년대 후반부터 자연스럽게 4ㆍ19세대, 6ㆍ3세대로 불리었다. 그리고 ’70년대에 들어서도 정치권과 갈등을 빚었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1972년 친위쿠데타와 같이 제정된 유신헌법 이후라고 해서, 유신 치하에서 수시로 발동되던 ‘긴급조치’에 휘몰렸다고, 당시의 대표적인 학생운동사건이었던 ‘민청학련’에 연루되었다고 해서 각각 ‘유신세대’, ‘긴조세대’, ‘민청세대’라는 말이 쓰였다. 이들 용어는 대상도 극히 한정적이었고, 사회학적이나 마케팅적으로 해석할 여지란 거의 없었다. 386세대, 이제는 486을 거쳐 5자가 앞에 보이는 세대도 정치적 함의가 앞선 조어였다.‘80년대 그것도 1987년 이후에나 어느 정도 정치적인 숨통이 터지고, 글로벌 소비체제에 편입이 되면서 사회문화적인 세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론 미국에서 나온 X세대도 있었지만, 일본의 영향이 더욱 컸다.

        2차대전 전 일본의 세대 구분 기준은 천황이었다. 쇼와(昭和)천황이라는 히로히토(裕仁)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느 노인이 자결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천황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 ‘메이지(明治)세대’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유서를 남긴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당사자들도 구분을 했고, 당연히 메이지세대의 뒤를 다이쇼(大正)와 쇼와(昭和)세대가 이었다. 전후에 미국의 베이비부머에 해당하는 ‘단까이(團塊)세대’가 나타났고, 반항적인 청년 세대로 이시하라 신타로의 ‘태양족’이 화려하게 등장했다.‘60년대 이후 거센 학생운동의 물결 속에 이름부터 전투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전공투(全共鬪)세대‘가 사회를 뒤흔들었다. ’전공투‘란 ’전학공투회의‘의 줄임말로 ’80년대 한국의 ‘전대협(전국대학생협의회)’와 비슷한 기구였다. 전공투 세대도 여러 가지로 분화했다. 적군파(赤軍派)와 같이 과격조직화하며 내부 다툼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무리가 있는가 하면, 정치적 이슈에서 한걸음 빠져 작은 재즈바를 내며 소설을 쓰게 된 무라까미 하루끼와 같은 문화계로 진출한 인사들도 다수 있다. 전공투세대와 같은 정치성향은 과감히 탈색시키면서 나타난 세대를 일본에서는 그 때까지 전혀 보지 못한 유형이라고 해서 ‘신인류(新人類)’라고 불렀다. 어느 시대에나 있는 ‘신세대(新世代)’보다 앞선 세대와의 차이가 두드러진 표현이었다. 

        한국에서는 신세대가 주로 쓰였다. 신인류가 일본에서 나온 표현인 까닭도 있지만, 단순히 ‘새롭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차별화가 될 만큼 기성세대의 힘이 강고했으며, 변화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심리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신세대’라는 가치중립적인 용어로부터 발아된 세대 브랜딩은, 한반도와 정치라는 기존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권역과 라이프스타일의 영역까지 아우르며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기를 맞이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X세대였다.

세대명 짓기-관점을 명확히 해야

        ‘90년대 초 대학생들을 초청하여 집단간담회를 하는데 한 친구가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그러더니 바로 “그렇지만 저도 X세대라구요”라고 덧붙였다. 세대도 브랜딩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여기서 확연하게 나타난다. 기성세대의 가치도 존중하지만, 그들과는 선을 긋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는 말을 ’X세대‘라는 세대명 하나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당시 소위 미시족에 해당한다는 소비자집단과도 비슷한 집단토의를 했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더 위라서 그런지 적극적으로 자신을 미시족이라고 표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름 우리가 정했던 미시족의 요소들에 얼마나 많이 해당되는지 체크한 연후에는 자신들도 미시족이라며 은근히 자부하며 즐거워했다. 이들이 ’9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의 쇼핑생활을 앞장서서 이끌어갔다. ‘아줌마’라는 시대와 무관한 중성적인 존재감이 소비생활의 주체이자 우리 사회의 핵심인자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미시족’이라는 브랜딩에서 찾을 수 있다.

        브랜딩은 단순한 이름짓기가 아니다. 현재의 모습을 스냅샷처럼 집어내기도 하지만, 작자와 대상의 방향성이 우선 담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세대명과 다른 점이 있어서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88만원 세대’는 탁월하다. 경제학자로서 명명자의 관점이 명확하다. 그리고 해당 세대에게 현실을 직시하며 기성 질서를 바로 잡도록 행동을 촉구한다. 무엇보다 알파벳수프에서 빠져 나온 숫자 브랜딩의 힘이 있다.

        앞으로 어떤 세대가 나올 것인가? 시대를 읽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세대가 나올 수 있다. 같은 특징의 제품에 다른 브랜드가 붙기도 하지 않던가? 역사가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의 사실 사이의 부단한 대화의 산물이라면, 세대란 현재의 사실을 미래의 프리즘에 통과시켜 얻은 스펙트럼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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