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초였다. 새로운 마케팅 동향과 관련한 강연에서 당시 모경제연구소에 재직하시던 한 분이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를 가지고 얘기를 했다. 자신이 세컨드라이프 계정을 가지고 있는 앞서 가는 마케터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지만, 충심에서 새로운 마케팅 무대로써 세컨드라이프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셨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세컨드라이프에 들어와서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기업과 제품을 알릴 수 있고, 가상세계의 매장이므로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특히 새로운 상품에 대한 테스트에 아주 적합하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실제 당시 세컨드라이프의 기세는 엄청났다. 흡사 미국의 서부 신도시나 일제시대의 중국 만주 지역, 21세기 두바이의 변화와 성장이 웹상에서 압축되어 구현되는 듯 했다. 실제로 유수의 기업들이 자신들의 매장이나 빌딩을 세컨드라이프 상에 마련했다. 세컨드라이프에서 쓰이는 린든달러(L$)는 세컨드라이프 온라인상에서는 물론이고, US$ 현물화폐와도 서로 교환유통이 되었다. 세컨드라이프에서 제품을 판매하여 실제 돈으로 100만$ 이상을 번 사람이 나타났다. 대학과 대사관과 같은 기관들이 세컨드라이프에 입주했다. 일본의 덴츠는 수십만$을 투자하여 토지를 구입했다. 세컨드라이프에서 직원들을 모집하고, 인터뷰하여 채용하는 기업들도 나타났다. 그야말로 세상은 ‘실제(Real)'와 ’가상(Virtual)'의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 같았다. 가상 세계가 바야흐로 실제와 같은 비중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IT선진국이라는 한국에도 진출하였고, 2007년에 강연을 했던 분처럼 트렌드에 민감한 마케터라면 의당 세컨드라이프에 계정을 갖고 활동을 해야만 하는 분위기였다.




요즘 세컨드라이프에 대한 소식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난 1~2년 사이에 가끔 나오기는 했다. 잦은 CEO의 교체 소식, 30%에 이르는 직원의 해고 등 부정적인 내용들이 주로 전달되었다. 페이스북 팬이 20만 이상으로 늘었다는 것도 세컨드라이프 웹페이지가 아닌 페이스북을 통하여 세컨드라이프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데서 그리 긍정적인 소식은 아니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마케팅을 포함한 자신들의 활동에 세컨드라이프를 활용한다는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버즈(ebuzz.co.kr)의 김정남 기자는 올해 3월에 쓴 ‘세컨드라이프, 영광과 좌절’이라는 기사(http://www.ebuzz.co.kr/content/buzz_view.html?ps_ccid=88049#ixzz1MDtIMl80)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인을 들었다.

1. 프로그램 다운받기 등 초보자들이 이용하기에 복잡했다.

2.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높은 사양의 컴퓨터가 필요했다.

3. 음란행위, 도박 등의 부정적 행동이 범람했다.

즉 최초 제품을 취득하기도 힘들었다. 취득했어도 자기의 컴퓨터에서 사용하는데 한계를 느꼈던 사람들이 많았다. 바로 접근성에 장벽이 있었던 것이다. 마케팅 관점에서 정말 심각한 근본적인 문제는 세 번째이다.




점잖은 사람도 예비군 군복만 입혀놓으면 사람이 바뀐다는 말을 한다. 평소 자신을 얽어매던 현실을 벗어나 익명이 보장되는 가상의 세계에 들어서, 현실세계에서는 할 수 없었던 뭔가 일탈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런 일탈 행위가 집단행동으로 일어나면서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세컨드라이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사람들의 숨겨진 욕구가 분출되었다. 실제 세계에서 발현되기 힘든 사람들의 새로운 욕구를 발견하는, 마케팅 영역을 넓힐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예비군복으로 굴레에서 풀려난 사람들의 억압되었던 에너지가 일체의 규율을 거부하며 단추 몇 개는 풀어주어야 하고, 노상방뇨를 하고 동전던지기와 같은 유치한 사행성 놀이 등에 열중하는 퇴행성 행위로 귀결되듯 가상세계에서의 사람들은 건설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자신의 욕구를 발산했다. 대다수 기업과 제품들이 기대한 가상세계에서의 수요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가상세계 사람들의 주요한 관심이 엉뚱한 곳에 있었으니 홍보효과나 마케팅 테스트와 같은 것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가상세계에서의 물의를 빚을 행동은 현실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학교 안에서 여러 규정에 얽매여 있는 10대들의 행위와 함께 그들에게 끼칠 영향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심각하게 나왔다. 10대들만을 위한 세컨드라이프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가 결국 이용제한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이는 10대들을 세컨드라이프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세컨드라이프의 근본적인 조재가치를 허무는 조치였다. 현실과는 다른 삶을 꾸며보겠다는 데, 현실의 나이와 같은 굴레를 그대로 적용시켜 버린 것이다. ‘너희들은 너희들끼리 놀아라’는 식의 조치가 10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겠는가? 10대들만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물의를 빚을만한 행위들은 더욱 크게 문제가 되었다. 종국에 10대들의 이용 자체를 아예 막는 조치를 취했다. 이버즈의 기사에서도 지적했듯 이는 트렌드, 특히 IT와 관련된 부문에서의 트렌드 리더인 10대들을 배제한 결과가 되었다. 앞서 가는 트렌드를 보고자, IT의 첨단 물결을 타는 사람으로서 보이고자 세컨드라이프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가상의 세계와 실제 세계는 다르다. 사람들은 가상의 세계에서는 다른 것을 원한다. 가상 세계에서 한 마케팅 테스트 결과를 가지고 바로 현실 세계에 적용시킬 수 없다. 가상세계에는 현실세계와는 다른 소비자 특성이 발동되고 있다. 한때 가상세계를 즐기는 것이 앞서 가는 것으로 인식되던 시절도 있었다. 2007년의 세컨드라이프는 아마도 내가 겪은 중에 그 절정이었다. 

















‘가트너 하이프 사이클(Gartner Hype Cycle)'의 두 번째 단계인 인플레이션이 최고조에 오른 시기였다. 이후 ’Enlightenment'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nlightenment'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가상세계에서 합당한 몫, 역할이 정의되면서 가상세계의 사용자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의 관련자들이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런 공감대 위에서 현실세계와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직 세컨드라이프는 ’Enlightenment' 단계로 들어서지는 못했다. 들어설 수 있을지 조차 사실 의심스럽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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