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가 부부가 깊은 산속에 있는 그들의 별장으로 휴가를 갔다. 말이 휴가이지만 집필을 하기 위하여 한 달여 체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가는 날 그 지역에 폭풍이 닥쳐서 전기가 끊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다가 예전에는 모두들 그런 환경에서 살았으리라 생각을 했다. 정면으로 전기가 없는 상황을 극복해 보기로 했다. 차를 몰고 나가서 양초와 석탄과 땔감 장작을 사왔다. 양초를 놓을 자리를 마련하고 벽난로에 불을 피우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치하다시피 했던 별장 청소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촛불을 밝히고 벽난로에 불을 피우니 집안이 아늑해졌다. 열심히 몸을 굴린 후였으니 저녁도 맛있었다. 그 뿌듯한 느낌을 이어 자신들 본연의 집필 작업을 하려고 타자기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절망했다. 타자기가 전기로 움직이는 전동타자기였던 것이다.




‘80년대 초에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 읽은 짧은 이야기였다. 그 일화는 타자기가 전기가 있어야만 작동이 되는 전동타자기란 걸 발견하고 부부가 허탈해 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타자기에 끼워 넣고 칠 종이는 있었을 테니까 그 종이 위에 작품을 쓰게 되지 않았을까? 무대를 현재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비슷한 설문조사는 여러 가지로 행해지고 있고, 결과도 다양하다.




인터미디어(IM)라는 잡지사에서 ‘외딴 섬에 갈 때 컴퓨터, TV, 태블릿PC, 스마트폰 중 하나만 들고 갈 수 있다면 뭘 가져가겠느냐’고 물었단다. 결과는 컴퓨터가 52%로 압도적인 1위였다. 23%의 스마트폰, 19%의 TV,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블릿PC가 6%로 그 뒤를 쫓았단다. 미국에서 한 비슷한 조사에서는 ‘당장 없어서는 안 되는 품목’을 물었는데, 스마트폰이 과반수이상으로 나온 것을 보았다. 독일의 정보통신협회인 비트콤(BITKOM)이 14~29세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 이들 중 97%가 휴대폰 없는 일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답했고, 84%가 인터넷 없이는 절대로 못산다고 했다.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요즘 같으면 대체로 스마트폰 쪽이 당장에는 더 절실한 것 같다. 실제 회사에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컴퓨터를 하루나 몇 시간 동안 쓰지 못하는 경우는 사람들이 느닷없이 주어진 휴식시간처럼 받아들인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오거나 잃어버린 친구들은 완전 패닉상태이다. 사실 스마트폰 이전의 피처폰 시절에도 비슷한 상태에 빠지기는 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걸쳐서 몽골에서 주재생활을 하신 선배가 계셨다. 당시만 해도 몽골의 초원에 가면 휴대폰과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가끔 관광 온 사람들이 외부 세계와의 접속이 끊어진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초원을 향해서 갔단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초원에서 지내고 난 이후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온단다. 그 효과가 며칠 지속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초원에 있는 동안 사람들은 사람들과 다른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다른 모습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단다.




위에서 얘기한 비트콤 조사에서 휴대폰과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 독일의 젊은이들 중 43%만이 이성(異性) 친구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단다. 이성 친구란 존재는 64%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한 자동차에도 밀리고 있다. 46%의 독일 성인 여성은 2주 동안 인터넷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같은 기간 동안 섹스를 포기하겠다고 했단다. 35~44세 사이 여성은 52%가 인터넷을 섹스보다 우선시했다. 남성들은 이보다는 덜하지만, 남성들의 30%가 인터넷의 사용 여부가 섹스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은 정도가 아주 심한 편이고, 거의 모든 선진국들에 공통적인 현상인 갈수록 심각해지는 비결혼, 저출산 현상에 이런 인터넷과 다른 기기들의 영향은 얼마나 될까? 이런 새로운 매체에 새로운 기기를 이용하여 시간을 쓰면서 인간과의 접촉 및 교감의 시간이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김난도 교수는 2012년의 트렌드 중 하나로 여백을 뜻하는 ‘blank'라는 단어를 써서 ’blank of my life-스위치를 꺼라‘라는 것을 내놓았다. ’지친 일상에 서 완전히 방전된 소비자들은 이제 스위치를 잠시 끄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길 원한다‘고 했는데 어떤 스위치를 끄는 것일까? 김 교수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다. 숲속으로의 캠핑, 무인도 여행, 템플 스테이 등이 각광을 받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스위치를 끌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디지털의 초창기 때부터 있었다. 2000년에 디지털을 앞장서서 받아들인 이들이 ‘디지털 내치기(Digital backlash)' 현상에 대하여 쓴 적이 있었다. 위에 나온 독일의 조사결과는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크리스토프 코흐의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디지털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부류이면서 40일간 인터넷은 물론이고 휴대전화도 끊는 실험을 감행한 그는 온라인 일상으로 돌아온 후 그는 항시 온라인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 상태에서 생각을 정리한 후 온라인 접속을 했다.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써야할 경우 이메일 내용을 생각하고 준비한 후에 온라인에 들어가서 이메일만 보내고 바로 접속을 껐다. 그리고 토요일은 ’온라인 안식일‘이라고 하여 하루 종일 오프라인으로 지내는 규칙을 만들었다. ’온라인 안식일‘이 그의 경쟁력을 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토프 코흐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사용자라면 온라인에 얼마나 오랜 시간 접속하여 바로바로 일을 처리하는가 보다 오프라인에서 머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된다.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의 움직임이 좋다고 높은 평가를 받는 축구선수처럼 말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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