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와 나눔

입력 2011-08-08 02:34 수정 2011-08-13 20:21


<DID로 세상을 이겨라>의 송수용 대표의 그 유명한 'DID(들이대)'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2007년 여름, 당시 그가 기획 이사를 맡고 있던 모음식점 체인에서 의욕적으로 문을 열었던 강남점에서 만났다. 그가 육사 동창생 친구 한명과 함께 나왔다. 당시로서는 벤처에 가까웠던 음식물처리기를 개발하고 있던 최OO 대표였다. 최대표의 음식물처리기 사업에 브랜드마케팅 관점에서 조언을 해달라고 했는데, 별로 쓸 만한 얘기는 못해주었다. 환경산업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음식물처리기 및 관련 산업군에 대해서 오히려 많이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한편으로 송수용 대표나 최 대표나 육사를 나온 흔히 만나 볼 수 없는 이력의 소유자인지라, 개인사에 관한 얘기도 물어보게 되었다. 그들도 그런 질문에 익숙한 것 같았다. 특히 최 대표는 좁은 한국사회기는 하지만, 내가 잘 아는 사람들과 직장 생활을 통하여 인연을 갖고 있기도 했다. 최 대표에게 음식물처리기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불쑥 이렇게 얘기를 했다. 

“금형을 뜨고 하는 일을 하는 기술자 분들이 저희 회사 핵심이십니다. 오랫동안 그 쪽에서 근무했던 분들은 거개 다쳐서 손가락 한두 개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공장에서 뭘 깎다가 잘못해서 손끝이 일부 베어서 떨어져 나갔어요. 그 순간에 가장 먼저 ‘이제 나도 저 기술자들과 같은 사람이 되었어’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거에요. 우습죠? 손가락 끝 조금 떨어져 나간 것을 가지고. 하하하.” 

나는 함께 웃을 수가 없었다. 기술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강했으면 자신의 살이 떨어져 나가는 그 순간에 똑같아졌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질 수 있었을까? 외경심을 가지고 쳐다보자 얼굴이 시뻘개지며, 최 대표는 서둘러 다른 화제로 옮기려 노력했다. 고은 씨의 만인보에 나오는 시인과 어린 시절 단짝이었던 ‘방죽골 달석이’에 대한 시의 몇 구절이 생각났다. 

그 애가 제 아버지한테 싸다듬이로 얻어맞고

코피 줄줄 흘리며

동고티 묏등에 왔을 때

나도 피 흘려야 했으므로

나도 내 코 때려 한 번에 안되어

세 번 네 번 때려 코피 흘려서

피범벅된 얼굴로 서로 웃었지

 

-<만인보> 1권 중, “코피” 일부 -

 

그 때 시인이 흘린 코피는 어린 시절의 그 우정만큼이나 진하고 순수했을 것이다.  

주말에 사진작가인 친우 양현모 군이 자신의 사진들이 실렸다며 준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이태석 신부 이야기>를 읽었다. 숙취가 쌓인 상태로 모로 누워서 찔끔찔끔 나오는 눈물을 숨기려 애쓰면서 훌쩍훌쩍 보았다. 그 이태석 신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의 하나로 다미안 신부가 있다.  

1840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다미안 신부는 1873년부터 하와이제도의 몰로카이란 섬에서 나병환자들을 돌보며 살아갔다. 1885년 어느 날 뜨거운 물을 발에 흘렸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그는 자신이 나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그가 돌보던 나병환자들이 슬퍼하는데, 그는 오히려 나병 환자들과 똑같이 되었다면 자신이 나병에 걸린 것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돌린다. 그리고 그는 나병환자로서 끝까지 그들과 함께 하며 행복하게 생을 마쳤다고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며, 진정한 행복은 나눔을 통해서 나온다.’ 양현모 군이 준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책에 나온 구절이다.  

‘~과 일치시키다’를 영어로 ‘identify with~'로 쓴다. 브랜드마케팅에서는 ’Identity'란 단어를 무척 많이 쓴다. 보통 ‘정체성’이라고 일컫는데,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특성을 말한다. 그런데 ‘identity'란 단어는 ’남과 다르다‘는 의미와 모순되게도 ’똑같음, 일치‘란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나는 이 모순을 다른 사람과 일치시킬 수 있을 때, 자신의 특성을 발현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나눔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 나온다고 했는데, 마케팅에서의 ’나눔‘은 내 것을 ’확보‘하는 데서 출발하고, 거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identity'를 일치보다는 ‘구별’에 초점을 두고 쓰듯이, ‘나눔’도 ‘share'가 아닌 ’segment'를 얘기한다. 그 결과는 유감스럽게도 광고주와의 영합 혹은 어떤 경우는 야합이라고 해야 할 일치가 있을 뿐이며, 소비자 고객을 발기발기 가르며 자신과의 간극만 넓혀 버린다. 결국 소비자에게 버림받고, 결과적으로 광고주에게까지 경멸받는 광고인의 초상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누구와 일치시킬 것인가, 누구와 나눌 것인가를 근본에서부터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사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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