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광고계에도 '한류'가 온다

입력 2011-07-09 11:24 수정 2011-07-09 11:24


세계 광고계에도 ‘한류(韓流)’가 온다 

지난 6월 21일 오후 늦게 세계 최대의 광고제(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가 열리고 있는 칸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최대의 화제는 제일기획의 미디어부문 그랑프리 수상이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제일기획이 출품한 홈플러스의 ‘지하철역 가상매장’이 전날의 프로모션/실행과 다이렉트 부문의 금상 3개 수상에 이어, 미디어 부문에서의 그랑프리까지 거머쥔 것이다.

호텔에 체크인한 후 습관처럼 인터넷을 연결해보고 주요 뉴스를 체크하는데, 바로 이 뉴스가 떴다. 믿어지지 않았다. 특히 나름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광고주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기에 더욱 뿌듯했다. 3년 연속 칸 광고제에 참가하면서 키워왔던 특정 기업을 떠나 ‘한국’의 광고인으로서 소망했던 꿈이 생각보다 이르게 성취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십 년간 칸을 드나들었던 선배 인사들의 감격스런 심정은 어떠했을까? 칸 광고제의 공식 신문을 비롯한 외국의 언론들이 ‘(칸 광고제에 참가한 지) 수십 년만에 한국이 최초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비서구국가들이 약진한 칸 광고제 

공식적인 수상작 발표와 시상식이 거행되는 첫날이었던 그 전날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프로모션/실행과 다이렉트 두 부문에서 동부 유럽의 루마니아가 초코바를 가지고 한 프로모션이 그랑프리를 휩쓸었다. 루마니아 사상 최초의 칸 그랑프리였다. 칸 광고제의 조직위원회 회장인 테리 새비지(Terry Savage)가 ‘2~3년 전에 루마니아가 동상을 탔을 때, 그 팀이 귀국 후에 대통령이 직접 시상을 다시 했다고 들었다. 이번에는 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기대가 된다’는 농담을 했다. 독재자 차우세스크의 오랜 학정에 시달리며 자본주의 경제 수용과 발전이 늦었던 루마니아가 만들어낸 쾌거였다. 개인적으로 이번 칸 광고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 바로 루마니아의 이 작품, 초코바 ‘ROM'의 프로모션이었다.

루마니아가 연호되던 첫날 제일기획도 세 개의 금상을 획득하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금상 수상만도 큰 위업이었던지라, 그날 저녁 푸짐한 축하연을 가졌단다.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첫날의 금상 수상에 워낙 흥분하여, 둘째 날의 그랑프리가 차라리 담담했다고 할 정도였단다. 미디어 그랑프리가 발표된 다음 날 아침, 제일기획이 4년째 주최하는 세미나에서는 이미 흥분이 상당히 가라앉은 상태였다.

3일째 인쇄광고 부문의 그랑프리를 중국이 가져가면서, 수상 국가의 지역 분포 관점에서의 이변(異變)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13개 부문에 이르는 칸의 출품 부문에서 그래도 가장 변하지 않고 예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바로 인쇄 부문이다.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필름은 최근 2분 이상의 길이로 만든 인터넷용 필름들이 주로 수상하고 있다. 옥외, PR, 미디어 등의 부문도 모두 인터넷이나 SNS와의 연계선상에서 평가되는 데 비하여, 인쇄 부문에서는 한정된 지면에서 보이는 장인의식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란 전통적인 잣대가 평가의 주류를 이룬다. 그런 측면에서 첨단 기술과는 거리가 있는 여행용 가방을 가지고, 중국이 인쇄 부문의 그랑프리를 차지했다는 것은 IT와 같은 신기술이 아닌 광고 창의성 본연의 측면에서도 그 뛰어남을 인정받았다는 데서 의의가 각별하다. 세계 최대의 광고전문지인 애드에이지(Ad Age)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지역의 이동(Shift in the geography of good ideas)'이란 표현을 썼는데 , 이동보다는 ’확산‘이 더 맞는 단어일 듯 싶다. 서구의 기준에 맞춘 아이디어 창출과 평가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의 실정과 배경에 따른 아이디어에 대한 수용과 인정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게 더욱 적합하다.

짐짓 놀란 체 하기는 했지만 칸 조직위원회에서는 아마도 뿌듯하게 이런 지역적 확산 현상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본격적인 심사가 시작되기 전의 심사위원 사전워크샵을 통하여, 칸 조직위원회는 대부분 전통적인 광고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와 서부 유럽 출신들이 다수를 차지한 심사위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대략 ‘자신의 국가와 문화를 넘어, 각 작품들이 나온 배경을 이해하면서 그 효과를 평가하라’는 내용이었다.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다. 서구 이외 국가들의 작품에 대해서 보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평가해 달라는 것이다.

사실 비즈니스 면에서 칸 광고제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광고제인 ‘스파이크 아시아(Spike Asia)'를 2008년에 조인트벤처로 창설하는 등 서구 외의 국가에 대한 활동을 강화해 왔다. 6천명 선까지 떨어졌던 참가자가 1만명 가까이 오르고, 출품작 수가 작년 대비 20% 가까이 증가하는 데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일랜드, 베트남, 싱가포르 등이 큰 공헌을 했다고 칸 조직위 관계자가 언급할 정도로 아시아 시장 공략이 효과를 보았다. 이러한 분위기가 한국을 비롯한 비서구 국가들의 약진에 일조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도 오랜 세월에 걸친 준비, 특유의 장인의식과 대담한 시도가 함께 어우러졌기에 가능했음은 역시 두 말할 여지가 없다.

한국적 마케팅의 인식을 제고한 행사  

중국의 인쇄 부문 그랑프리 수상 다음 날 저녁, 칸 광고제 행사장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광고물이 아닌 본격적인 영화상영회가 열렸고, 거기에 사람들이 몰렸다. 아이폰으로만 촬영했다고 화제가 된 KT가 기획·후원하고, 이노션이 제작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파란만장(영문명 : Night fishing)>의 상영회였다. 2004년에 바로 같은 곳에서 열린 칸 영화제에서 <올드 보이>로 대상을 받았고, <파란만장>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올해 금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지명도와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관심을 고조시키고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러나 단순한 성공적인 개최를 떠나서, 서구와는 다른 한국적인 마케팅의 한 유형을 보여준 데 이 행사의 의미가 있었다.

스폰서로 참여한 KT는 작품에 관하여 감독에게 철저히 일임하였다. 어떻게든 자신의 제품을 보이려 애를 쓰고, 로고라도 화면에 자주 비추게 하려는 일반적인 영화 후원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제 영화에서 제품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나오면 객석 곳곳에서 킥킥대는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소리가 나온다. 확실히 스폰서로서의 노출과 개입 절제가 수준 높은 작품을 낳았고, 국제 영화제에서의 수상을 이끌어 결과적으로 엄청난 마케팅과 PR에서 원래 의도했던 것 이상의 효과를 올렸다. 아이폰 영화, 곧 스마트폰 영화라는 새로운 영화 장르를 개척하며, 한국의 예술혼과 함께 시너지를 일으키는 한국 마케팅계의 도전과 실험정신을 보여준 것이 또 하나의 큰 의의였다.

그동안 칸 광고제, 특히 조직위에게는 ‘한국=제일기획’과 같은 등식이 받아들여졌다. 필자도 2년 전에 발표자로 섰던, 2008년 이래 매년 제일기획에서 주최하고 있는 공식 세미나를 통하여 한국 광고계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이번 KT와 이노션이 칸 현지에서 주최한 상영회를 계기로 한국 광고계에 대한 저변과 수준에 대한 인식을 보다 넓고 높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기대한다.  

상 자체가 목적이 아닌 진정한 한류를 위하여 

2008년 10월 미국의 어느 광고회사에서 새로운 사옥으로 입주하는 행사를 거행하고 있었다. 로비에 그 회사의 이름이 크게 새겨진 것 외에는 평범해 보이는 동판을 거는 게 그날 행사의 절정이었다. 그 동판에 이야기꺼리가 문자 그대로 녹여져 있다. 그 광고회사 사람들이 광고제에서 받은 트로피나 상패를 모아서 녹여 그 동판을 만든 것이었다. 그들이 입주한 빌딩의 벽난로 위에 걸린 그 동판이, 상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소비자에게 제대로 작용할 수 있는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들의 원칙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다른 광고회사 하나는 로비 구석의 쓰레기통에 상패와 트로피들을 마구잡이로 던져 놓았단다. 역시 이 회사도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제로베이스(Zero-base)'에서 출발한다는 의지를 버려진 상패와 트로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 이 회사는 과거의 광고예산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미래에 이룰 계획에 맞추어 광고 계획과 그에 따른 예산을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회사들은 사실 자기 브랜딩의 도구로 교묘하게 과거의 수상실적을 이용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를 쓰지 않고 아날로그 생활을 즐기겠다는 소위 ‘디지털 배척자(Digital-backlasher)를 보면, 디지털의 혜택을 먼저 누려, ’단물‘을 다 빼먹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한국광고계는 이제 글로벌한 무대에서 열매를 거두기 시작했다. 칸을 비롯한 국제 광고제에서의 한국과 중국과 같은 아시아의 강력한 대두와 그에 따라 형성되는 우호적 분위기를 십분 활용하여 더 많은 열매를 따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벤치마킹한다며 서구 기업들을 따라만 하다가 방향을 바꿔, 자신의 상황에 맞게 낸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상을 타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제일기획 어느 인사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 공통의 아이폰을 한국적인 마케팅 방식으로 요리하는 법을 보여서 칸 공식무대를 개척한 KT와 이노션이 펼친 것과 같은 도전과 실험을 행하는 한국 광고 기업과 광고주들이 많이 나타나리라 기대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칸 광고제와 나아가 세계 광고계에 더 큰 ‘한류(韓流)’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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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7.9.자 모신문에 실은 글의 원본입니다. 실제 신문에는 상당 부분 삭제되어 빠졌습니다. 자체겸열도 있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들어간 부분도 있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칸에서 나타난 트렌드를 꼭 칸에 출품되지 않은 것들이라도 한국이나 외국의 근래 광고에 나타난 것들과 비교하며 얘기하는 것을 강의에서는 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여기나 다른 지면을 통하여 게재할 에정입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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