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심지어 게이'라고?!

거의 10년 전 일이다. 미국 대학이나 대학원 출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입사원 입사면접에 면접관으로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참가했다. 십여 명 진행하고 나서 약간 나이도 들고 무게 있어 보이는 남자 응시자가 들어왔다. 우리 면접관들 중에 안내와 진행을 맡은 친구가 다른 응시자들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도록 권유한 후,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넨 후 자기소개를 하도록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세 명의 면접관이 모두 어리둥절, 뜨악한 표정을 주고받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적 성취와 열정, 세계 각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even)’ 동성애자인 ‘게이(gay)’와도 잘 어울려 지냈던 친화력까지 과시하며 자기소개를 마무리했다.

“영어 참 잘하시네요. 그런데 왜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어요?”하는 진행을 맡은 면접관의 말에 지원자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 영어로 하란 말씀 아니셨습니까?” 다들 한바탕 웃으며 넘어가려는데, 괜한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기소개하면서 ‘심지어‘ ’게이‘와도 잘 지냈다고 하셨는데, 그런 표현을 써도 괜찮나요? 그것도 언론을 전공한 사람이!” 지원자가 부러 여유 있는 척하며 뭔가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갖다가 변명을 시작하려는 데 덧붙였다. “그리고 앞에 있는 면접관 중에 게이가 하나 있는데, 심정이 어떻겠어요?” 지원자가 급격히 당황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앉기를 반복하고, 얼굴은 벌개지고, 손을 박수를 치듯 모았다가 웅변하듯 내밀기를 또 엇갈려 되풀이하며, “저, 저는”하는 단어만 더듬거렸다. “세 명 중에 누가 게이인지 맞춰 봐요”라는 확인사살격의 말에 그 친구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까지 갔다. 다행스럽게 그 친구는 합격을 했다. 이후 회사에서 가끔 보았는데, 직접 함께 일한 적은 없었고 굳이 아픈 기억을 환기시킬 필요가 없어서 웃으며 눈인사만 나누곤 했다.

며칠 전 모TV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공개적으로 선발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예전의 ‘게이’사건이 일어났던 신입사원 면접이 생각났다. 그 친구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터지는 것을 애써 입가의 미소로 참아내다가 면접을 끝내고 박장대소를 하며 복기하는 것처럼 얘기를 나누었던 우리의 모습이 심사를 맡아서 질문하고 모니터를 다시 보면서 참가자들을 평가하는 현역 아나운서들의 이미지와 겹쳐졌다. 어떤 이미지인가?

‘나는 당신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철저한 불평등의 관계가 반영된 장난감을 앞에 두고 있는 듯한 이미지였다. 그 이면에는 ‘나는 당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까지 깔려 있다. 경쟁을 벌이는 ‘참가자’와 평가하고 판결을 내리는 ‘심판관’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진행되고 있으니 당연하다.

사회 자체의 양극화와 궤를 함께 하는 것일까? 입사 면접에서 지원자들의 자질을 알아보는 것과는 별 상관없는 어려운 문제를 주고, 지원자들이 쩔쩔매는 것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람을 가끔 보았다. 그 미소는 문제에 대한 만족감보다는 문제를 던질 수 있는 우월적 존재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인한 즐거움이 우선인 것으로 보였다. 이어 심한 경우는 당황하는 지원자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느끼는 새디즘까지도 연결되는 것 같다. 경계할 지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