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오늘의 책(www.bmceo.co.kr/today)'에 실린 <언씽킹>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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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는 행동 속의 인사이트 찾기

 

꽤 오래 전에 오리온 초코파이와 롯데 초코파이를 두고 소위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것을 했다. 사람들에게 초코파이를 잘게 자른 조각을 주면서 오리온 것인지 롯데 것인지 구분하라고 했다. 제대로 구분하는 사람은 2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오리온 초코파이는 롯데 초코파이보다 세 배 이상 많이 팔려 60~70%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였다. 롯데가 유통업체에 대한 영향력에서도 앞서고, 엄청나게 프로모션도 많이 벌이고, 실제 가격도 어디서나 싼 편인데도 시장점유율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초코파이의 주요 고객은 중고생과 군인이다. 이들의 소비자로서의 첫째 특징은 돈이 없어서 가격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더 비싸게 파는 오리온 초코파이가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들 잘 알고 있듯이 ‘정(情)’ 때문이다. 중고생이나 군인은 감성적으로 ‘정(情)에 굶주려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많은 경우 이들에게 ‘정’은 몇 백원 정도는 기꺼이 더 지불할 정도의 가치가 있게 여겨진다. 아무리 그래도 단순히 ‘정(情)’을 소재로 광고를 하고, 포장에 좀 크게 한자로 ‘情’을 새겨 놓은 것 때문에 반수를 훨씬 넘는 사람들이 굳이 값비싼 오리온 초코파이를 찾는 것일까? 정녕 많은 사람들이 롯데 초코파이를 주고받으면 정이 오가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것일까?

 

<언씽킹>에 나타난 초코파이 ‘정’의 성공 이유

 

<언씽킹>을 읽으며 왜 값비싼 오리온 초코파이가 더욱 많이 팔리는 이유에 대한 몇 가지 힌트를 찾아 정리할 수 있다. 저자인 해리 벡위드는 일상생활, 예술사, 기업의 마케팅 활동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특정 사안이나 현상에 대해 반응하는 모습들의 이면을 파헤쳐 12가지로 정리를 해서 보여 준다. 그가 ‘우리는 (....)하다’식으로 정리한 것들 중에서, 정을 주고받기 위하여 돈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더 비싼 초코파이를 사는 행태와 연관되었다 할 수 있을만한 것들을 추려보자.

 

- 우리는 진짜 이야기를 원한다 : 오리온 초코파이 광고에 나온 우체부, 전학생, 할머니를 근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얘기는 이후의 다른 어느 초코파이도 범접할 수 없는 원조, ‘진짜’였다.

- 우리는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식상한 것을 싫어한다 : 한국인에게 ‘정’은 굳이 배워서 알아야 할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매우 익숙하다. 그러면서 정은 매일매일 새롭다. 오래되고 싫어도 ‘더러운 게 정’이라고 한다. 결코 식상해지지 않는다.

- 우리는 특별한 것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한다 : 오리온 초코파이를, 바로 정을 주고받으며 서로 특별한 관계가 된다. 여러 가지 모임을 만들고 찾아다니며 소속감을 가지려는 경향이 강한 한국인에게 정은 딱 들어맞는 개념이다.

- 우리는 루저를 사랑한다 : 이 섹션에 있는 ‘우리는 거인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다윗의 꿈에 열광한다’는 꼭지의 제목처럼 사람들은 초코파이 하나로 정을 전하고 받을 정도의 상대를 원한다. 그런 정도로 응원을 하고 친밀감을 표시할 수 있는 만만한 사람을 갖고 싶어한다. 요즘과 같이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서 루저를 향하여 자신의 애틋한 상련의 정의 보내려 한다.

- 우리는 내일의 태양을 믿는다 : 초코파이의 광고들을 보면 예전의 애잔함이 주조를 이룬 정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정을 바탕으로 해서 더 나은 내일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암시한다.

- 우리는 단순한 것에 사로잡힌다 / 우리는 눈으로 생각한다 : 정에 복잡한 심사와 계산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포장에 표현도 최대한 간단해야 한다. 오리온 초코파이의 포장에 나타난 설명이나 수식도 없이 외롭게 선 큰 글씨 ‘情’을 보라. 정에 굶주린 학생들과 군인들이 무조건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손이 가도록 만들 만하지 않은가?

 

저자는 스포츠 잡지에 나온 조사결과 하나를 가지고 ‘우리는 언제나 생각없이 결정한다’는 부제가 붙은 머리말을 연다. 미국 프로농구 NBA 선수들에게 승부를 결정하는 마지막 슛을 현역 선수 중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당연히 코비 브라이언트였다. 76%, 네 명중 하나가 그를 지목했다. 그런데 실제 코비의 마지막 슛 성공률은 25%로 형편없었다. 통계 수치와 전혀 무관한 이런 결정을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 여기서는 NBA 선수들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을 두려움이라고 한다. 바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코비를 선택하면 멍청해 보이지 않는다. 코비가 실패 하더라도, 올바른 판단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함께 위로를 주고받을 사람들이 많다.

초코파이 경우에도 비슷한 종류의 두려움이 보이지 않게 작용한다. 자신이 ‘정’도 없는 인간으로 비추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특히 학급의 단체 생일파티나 ‘스승의 날’ 파티를 혹시나 망치는 장본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정’이 새겨진 초코파이를 사게 만든다. 암묵적으로 형성된 의식도구이자 징크스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농구 스타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저자인 해리 벡위드는 ‘이 세상 거의 모든 것’들을 통찰의 사례로, 지혜의 원천으로, 이야기의 소재로 활용한다. 시베리안허스키 개와 북극곰과 같은 동물들의 행태, 비틀즈로부터 밥 딜런과 롤링 스톤즈 등 팝음악의 전설들과 그들의 작품들, 미국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세 점의 그림, 생각보다 키가 작고 일반인에 가까운 용모의 최고의 영화배우 스타들, <60분(Sixty Minutes)>나 <메리 타일러 무어 쇼>와 같은 TV프로그램들 등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일견 기업 활동과는 무관한 듯한 곳에서 뽑아낸 통찰력 있는 숨겨진 진실, 바로 인사이트가 어떻게 기업과 제품의 성공이나 실패와 연계되는가 더 많은 사례들이 당연히 실려 있다. 필자가 서툴게 초코파이와 연결해 생각해 본 것처럼, 누구나 자신이 맡고 있는 제품이나 브랜드, 처한 상황과 결부시켜 볼 수 있고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 뒷면에 실린 추천사 중 ‘해리 벡위드는 이 책에서 말콤 글래드웰과 함께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는 것이 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말콤 글래드웰과 비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말콤 글래드웰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소재의 다양성과 스토리텔링적인 재미 측면에서는 해리 벡위드, 과학적 치밀함과 메시지의 무게 측면에서는 말콤 글래드웰이 낫다. 둘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이 책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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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 올해 1월 26일 발매 시작된 책이 3월 10일 한국에서 발간된 속도는 감탄스럽다. 그래서인지 눈에 거슬리는 번역이 종종 ‘옥의 티’처럼 눈에 띄는 점은 유감스럽다. 슬로건이나 영화제목의 표기를 원문병기 원칙으로 했으면 좋았을텐데 일관성이 흔들렸다. 회사 이름 등의 실제와 다른 발음 표기나 지나친 영어식 직역 표현도 손을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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