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상 가장 맘에 들지 않고 힘든 강연 대상은 광고대행사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기본적으로 매우 앞서 나가는 족속이란 잘난 맛에 사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게다가 강연도 많이 하러 다니는 친구들이 꽤 있고, 강연 비슷한 프리젠테이션을 많이 하기 때문에 “너 한번 어떻게 하나 보자”는 식이다. 흡사 ‘전국노래자랑’의 심사위원과 같은 모습으로 언제 마음속에서 ‘땡’을 칠까하는 자세와 눈초리를 바로 느낄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대학 교수들이다.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항상 강의를 하고, 공부는 자신들만큼 열심히 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너 얼마나 아나 보자. 틀리면 바로 끝이야’하는 싸늘한 느낌이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얼마 전 ‘광고대행사 출신 교수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인문학과 광고의 만남”이란 그간 슬쩍 맛배기로 강연에서 얘기를 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주제로 다루어보지는 않은 것이었다.  

바로 위에서 한 얘기를 그대로 하고, 이실직고를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이 주제로 강의를 의뢰 받았을 때, 덥썩 하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전화를 받았을 때 바빠서 빨리 끊으려 그냥 ‘예, 예’하다 보니까 그리 되었다.” 실제 그랬다. 트위터 맛팔을 하며 서로의 동향을 빤히 파악하고, 트윗도 주고받지만, 전화로는 처음 말을 나누는 교수 분께서 전화를 했는데 마침 다른 사람이랑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주라는 얘기도 못하고 그냥 알았다고 한 것이 나중에 생각해보니 승낙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았다. 다시 전화해서 번복을 하기도 뭐해서 그냥 하기로 했다. 

이실직고는 이어졌다. “인문학이란 거창한 소재를 내게 내민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학부를 동양사학과를 나왔다고 그런 것 같다. 출판사에서 책 소개를 하면서 낯 뜨겁게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 어쩌고 한 것을 기자들이 바로 갖다 쓰고 하면서 정말 그런 것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버렸다.” 예상외로 광고계에 사학과 출신자들이 별로 없다. 어문학 계열은 제법 있고, 카피 쓰는 것과 바로 연결이 되는 것 같아서 숭고한 인문학으로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철학을 한 이들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선배들은 몇 분 아는데, 후배에서는 거의 모르겠다. 그리고 자신의 학부 전공을 그리 내놓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거창하게 ‘인문학’을 앞세우고 교수이자 동시에 광고대행사 선배인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어쨌든 강의 준비를 하면서 깨닫고 생각하게끔 만든 세 가지가 있다. 

1. ‘Liberal Arts'와 우리가 얘기하는 인문학은 다르다

‘Liberal arts'는 서구에서 교양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지식들을 모아 놓은 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굳이 그것을 두 갈래로 나누면 인문과학(Human science)와 자연과학(Natural science)로 나눌 수 있다. 문법, 수사학, 논리학이 인문과학에, 천문학, 기하학, 수학, 음악이 자연과학에 속한다. 음악이 자연과학에 끼어 있는게 특이하다. 자연을 소리로써 표현하기 위한 수(數)의 조합과 배열이란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문리대가 바로 이 ’Liberal arts'에 음악을 빼고는 잘 들어맞는 것 같다. 

2. 피터 드럭커의 경영학과 ‘Liberal arts'의 연계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럭커는 ‘Liberal'과 ’Art‘를 해체한다. ’Liberal'은 원리를 파고드는 ‘자유로운’ 사고를 의미하며, ‘Art'는 ’적용하는 실천‘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경영학은 자유롭게 분석하고 사고하여 그것을 적용, 실천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는 'Liberal arts'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실제 피터 드럭커 자신이 음악, 수학, 문학에 뛰어났던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이란 데서 그 해석이 더욱 힘 있게 느껴졌다. 
3. 원천으로 - Ad Fontes

경영대 대학원의 AMP라는 프로그램이 무엇을 축약한 말인지 물어보면 몇 개 단어 얘기하다가 바로 맞춘다. ‘Advanced Management'. 지극히 직설적이고 실용적이다. 훨씬 앞서 가는 첨단의 경영지식을 전달해주고 그런 경영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의지와 목표가 바로 느껴진다. 그런데 인문대의 ’AFP'는 이제 귀와 눈에 익었지만 ‘A'와 'F'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물으면, 추측들은 하는데 제대로 맞추는 사람이 없다. 바로 에라스므스의 저서에서 인용했다는 라틴어 ’ad fontes'에서 나온 것인데, ‘원천으로’라는 뜻이란다. - 참고로 이를 발의한 사람은 서울대 종교학과 의 배철현 교수이고, 원래 인문대에서 생각한 안은 ‘AHP(Advanced Humanities Program)'이었단다. - 경영학과의 차별점이 바로 느껴진다. 인문학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광고에서의 인문학에 대해서는 그저 내 자신의 경험으로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고, 앞서 얘기한대로 지식과 경험에서 선배들에게 누구처럼 얼굴에 철판을 깔고 청중들을 무시하며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어정쩡한 강연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으나, 내 자신에게는 인문학이란 잣대에서 그간의 지나온 시절과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과 계기가 되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