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기업 후원 생색내지 말라

중앙일보 1/5자에 실린 칼럼의 원문입니다.http://bit.ly/fcZYBQ
지면 크기 등을 고려하여 편집자가 손을 좀 보았더군요.
무엇보다도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내용이 그리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제 개인의 회억이 많이 빠졌습니다.
비교하며 읽으셔도 나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

노출이 능사가 아니다


        얼마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독일에서의 일정이 힘들어 음악이나 들으며 잠을 청하려 기내 TV프로그램을 보니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의 40여년만의 뉴욕공연’이라는 제목이 눈에 확 뜨였다.


        “저게 바로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쉐아스타디움이야. 너에게는 아마 비틀즈의 공연이 먼저 생각나겠지만 말이야.” 1990년대 초 뉴욕의 대학원에 진학한 필자를 JFK공항에서 맞이한 교포 친구가 뉴욕 시내로 차를 달리며 강렬한 파란색에 원통형으로 생긴 건물을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그 친구의 말대로 1965년과 1966년 두 차례 있었던 비틀즈의 전설적인 쉐아스타디움 공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실황 앨범과 회고의 기록, 다큐멘터리 등 공연과 관련된 것들이면 무엇이든 감격스럽게 보고 들었다. 그래서 팬들의 열광적인 비명에 가까운 환호 속에서 네 명의 멤버들이 야구장을 가로 질러 무대에 오르는 모습부터 마지막에 무대 가까이까지 댄 차를 타고 도망치듯이 빠져나가는 장면까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특히 1965년의 첫 번째 공연은 대형 스타디움에서의 공연이라는 새로운 문화의 전형을 만든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쉐아스타디움은 뉴욕의 내셔날리그 야구팀이었던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서부로 떠난 후에 새로운 내셔날리그 팀으로 메츠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변호사 윌리엄 쉐아를 기념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 평범하게 ‘플러싱 미도우공원 시립스타디움’으로 이름을 붙이려 했는데, 윌리엄 쉐아의 노력과 역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 바뀌었다고 한다. 뉴욕 메츠는 창단 후 최하위를 전전하다가 1969년 일약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가장 귀족적인 전통의 양키즈와 대비되어 뉴욕의 다양한 인종의 서민층을 상징하는 팀으로 그 성격을 확실히 했다. 그래서 성적을 떠나 서민의 팀으로 사랑을 받아, 가장 열광적인 팬들을 가지고 있는 팀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2009년 7월에 열린 폴 매카트니의 공연 중간중간에 1965년 비틀즈의 쉐아스타디움 공연이 자주 무대 좌우에 설치된 두 대형화면을 장식했다. 그런데 대형화면 사이의 글자가 계속 눈에 거슬렸다. 바로 대형 금융사인 시티그룹의 ’Citi’라는 로고였다. 그 구장은 더 이상 쉐아스타디움이 아니었다. ‘시티 필드’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시티그룹이 20년간 매년 2천만$을 내는 조건으로, 구장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소위 ‘타이틀 스폰서’의 자격을 산 것이다. 뉴욕메츠는 기존의 쉐아 스타디움을 완전히 헐어서 시티필드를 위한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구장에 달린 시티그룹의 로고를 보니 위에서 언급한 모든 추억과 가치가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폴 매카트니의 콘서트는 시티필드의 개장 이후 첫 공연이었다. 쉐아 스타디움의 마지막 공연은 뉴요커를 대변한다는 빌리 조엘이 맡았다. 빌리 조엘은 그 공연의 마지막 노래로 폴 매카트니와 함께 비틀즈의 히트곡인 “렛잇비(Let it be)”를 불렀다. 그만큼 비틀즈와 쉐아스타디움은 60년대의 아련한 연상 속에 함께 묶여져 있다. 쉐아라는 이름 속에는 우스꽝스런 뉴욕메츠의 초기 시절과 그런 가운데 단기간에 우승을 일구었던 기적의 역사와 그를 응원한 다양한 인종들의 눈물과 외침과 사랑이 담겨져 있다. 시티필드라는 이름에선 그런 감정과 역사를 담아낼 수가 없다. 시티는 그런 뉴욕메츠와 쉐아스타디움과 함께 한 추억과 그 친밀한 관계를 파괴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시티그룹 같은 경우는 20년간 총 4억$에 이르는 돈을 내고 자신의 이름을 노출시키며, 오히려 사랑보다 반감을 더 많이 자아내고 있는 셈이다.


        원래 뉴욕에 있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자이언츠의 홈구장은 ‘캔들스틱 파크’였다.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야구장으로는 최악의 기후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그래도 자이언츠의 팬들은 그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했고, 원정팀의 선수들이 당황하여 실수하는 모습을 보며 야유를 퍼붓고 놀림거리로 삼는 것을 즐겼다. 팜파일롯으로 유명했던 3콤(3Com)이  1995년에 캔들스틱파크에 대한 타이틀스폰서 자격을 샀다. 그 때부터 2002년까지 캔들스틱의 공식적인 명칭은 ‘3콤 파크’였다. 그러나 오로지 언론에서만 그렇게 불렀지 팬들과 선수들은 항상 캔들스틱파크라고 불렀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야구팀의 팬들에게 3콤은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다큐멘터리 영화계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감독 친구 하나는 기업들의 스폰서를 유치하며 항상 “관객들이 기업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다큐와 기업 모두 실패한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기업들이 어느 행사나 장소를 스폰서할 때, 기업이 주체로 앞에 나서서는 안 된다. 기업은 마케팅을 위한 공간이나 소재로만 활용하며 자신을 그 맥락 속에 엮어 넣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기업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기업의 이름이 몇 번이나 불려지고, 로고의 노출이 몇 사람에게나 되는가라는 점들만이 강조되고,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역작용은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기업의 노출을 넘어서 진정으로 함께 어울리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특히나 이러한 스폰서 활동에서는 우선이 되어야 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