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디자인과 브랜드를 연결한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된 강연 프로그램에서 강의를 했다. 디자이너나 디자인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청중의 주축을 이룰 것이라 예상했다. 대략 회사 다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여느 강의 자리와 다를 바 없는 청중들의 모습이었는데, 이제까지 청중으로는 맞아보지 못한 분들이 뒷줄에 넷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수녀님들이었다. 묘한 인연으로 대형 교회의 목사님들과 청년회 멤버들을 대상으로는 몇 차례 강의한 적이 있었는데, 수녀님들은 처음이었다. 궁금해 하면서 아무래도 수녀님들께 눈길이 자주 갔는데 그리 웃기지도 않은 유머에도 박수까지 치면서 크게 웃어주시고, 힘주어 얘기한 부분에는 고개도 그만큼 힘 있게 끄덕여 주시는 아주 좋은 청중이었다. 점심 직후 시간인지라 졸음이 와도 서로 순번을 정해 놓은 것처럼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졸았다. 한 수녀님이 졸 때면 나머지 수녀님들은 그 몫까지 하려는 듯 더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강의 후 나가는 길 통로에 있는 전시 부스 몇 군데를 대충 보면서 가는데,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하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까 수녀님 중 한 분이 계셨다. 고맙단 말씀을 드리고, 나도 궁금하던 차라 어느 수녀원에서 오셨냐 등 몇 가지 질문을 드렸다. ‘성바오로딸 수녀회’에 계신 분들이었다. 책도 만들고 음반도 제작하신다는 말씀을 들으니, 그 수녀님들이 왜 디자인 전시회에 오셨고, 브랜드 강의까지 내처 듣게 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종교 분야에서의 브랜드 활동과 어떻게 마케팅과 접목시키는가에 대한 책들이 외국에 많이 나와 있다며 몇 권 말씀드렸고, 트위터나 메일로 질문하시면 더 정보를 알려드릴 거라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른 수녀님들도 오셨는데, 고개를 살짝 돌려 시선을 맞추지 않으면서 말씀들을 하신다. 송구스런 말씀이지만 ‘70년대 수줍은 여고생이 얘기하는 듯 했다. 그런데 나는 계속 그럴수록 정반대의 활달하며 역동적인 무대매너를 자랑하는 어피 골드버그가 주연한 영화 <시스터 액트(Sister Act)>의 수녀님들이 생각나서 자꾸 웃음이 나와 참느라 힘들었다. 
사실 실생활에서 뵙기가 힘드니 수녀에 대한 이미지는 주로 대중문화 작품을 통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본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는 원래 수녀원의 약간 왈가닥 예비수녀였다. 그 때의 수녀원은 주인공인 마리아의 마음의 고향이자 상처를 치유 받는 아늑한 곳이었다. 증학교에 입학한 이후 한수산 선생의 자전적 작품 중에-쓰면서 약간 헷갈린다. 박범신 선생일 수도- 중학생이었던 작가가 수녀원 옆에 살면서 수녀들이 밭 매는 것을 주인공이 지켜보는 장면이 그리 기억에 남았다. 사춘기 소년의 성적(性的)인 환상까지 약간 가미되는데서 같은 또래로서 더욱 인상 깊게 남았을 수도 있다. 고등학교 들어서는 상당히 냉소적이었던 것 같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문이 학생 잡지를 장식하고, 문학청소년이면 수녀님의 시집이나 수필집 하나는 가졌어야 했는데 애써 외면했다. 그래서인지 성당을 무대로 한 어느 반공영화에서 악랄한 북한괴뢰군이 수녀의 베일을 확 벗겨버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멋지게 고데한 머리가 나와서 더욱 큰 동작으로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대학에 들어온 후 1983년 연극 <신의 아그네스>가 한국문화계를 흔들었다. 그걸 연극이랑은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고등학교 친구 하나와 함께 가서 보았다. 왜 그 녀석이랑 같이 갔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관객들이 정원의 두 배 이상으로 차서 소극장 안이 만원버스와 같았다. 당시 운현동 덕성여대 근처의 실험극장이었는데,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 원래 관객석이 아닌 무대 모서리 옆쪽에서 보았다. 공연 내내 사람들에게 밀치고, 무대의 거의 1/3은 보이지 않았다. 아그네스가 긴 대사를 우리 시선의 사각지대에서 하자 같이 간 친구가 “‘아그네스 좀 앞으로 나와서 해’라고 소리칠까?”하고 물어봐서 기겁을 하며 말렸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가 대중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사실 주제와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윤석화라는 걸출한 대중예술인의 역할이 대중적인 인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윤석화 씨 본인으로도 무거운 수녀의 이미지가 무척 부담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넌센스>는 그 무거움을 떨쳐버리며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게 연극무대에서는 종교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경건하고 무거운 <신의 아그네스>와 경쾌하고 발랄한 <넌센스>가 엇갈리는 가운데 실제 ‘80년대 대한민국의 수녀님들은 상당수가 조용한 민주화 투사의 역할을 하셨다. 그리고 ’90년대 들어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곳에서도 춤추고 노래하는 수녀님들이 출연하는 우피 골드버그의 <시스터 액트>가 나왔다. 성탄절 등에 재방영되는 것까지 합치면 이 영화 1편을 대여섯 번은 본 것 같다.  

강의장과 전시장에서 수녀님들을 뵈며 바로 <시스터 액트>가 생각난 걸 보면, 가장 최근에 보기도 한 까닭도 있지만, 영화에서 수녀님들의 이미지도 강렬하게 새겨진 것 같다. 어쨌든 강의장에서 실제 우리의 생활이나 하는 일과 가까이 있는 수녀님들을 바로 뵐 수 있는 것이 좋았고, 그게 라스베가스를 휘젓고 다니는 시스터 액트의 수녀들과 연결이 잘 되었다. 앞으로 성바오로서원서 나오는 책과 음반들 눈여겨 보기로 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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