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삼킨 아시아, 표준영어를 흔들다’라는 문구가 부제처럼 달린 책, <아시안 잉글리시>(리처드 파월 저 / 김경희 역 /아시아네트워크 간, 2010)을 읽었다. 그 책 중에 보면 광고 관련한 얘기가 꽤 나온다. (아래 궁서체 부분들이 책에서 직접 인용)

 

일본만 유난히 광고에 영어를 많이 쓰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도 나는 약간 이상한 영어 자막이나 나레이션이 흐르는 광고들을 봤다. 가령 “넘버 원 이미지(Number one image: 이미지가 어떻게 ‘넘버 원이라는 걸까? ㅡ리고 한국인들은 왜 ’넘버 원‘이라는 표현을 좋아할까?)”라던가 “프리미움 버거, 빅 태이스티(Premium burger, Big tasty: '프리미움 버거’도 이상하지만 뭐, 쓸 수는 있다. 그런데 ‘빅 태이스티’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같은 말들. 그리고 좀 더 표준영어에 가까운 “프리미엄 디지털 카메라(Premium digital camera: 한국의 광고제작자들은 ‘프리미엄’이라는 말을 유난히 좋아한다)”같은 말들이다.

 

여러 가지로 찔린다. 감추고 싶었던 곳을 정확하게 들킨 느낌이다. 저자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한국인의 역사와 생활 속으로 들어왔더라면 왜 한국인이 ‘넘버 원’과 ‘프리미움’이라는 말을 좋아하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넘버 원’은 모든 부문에서 한 치의 여유를 용납하지 않는 너무나도 치열한 경쟁의 왕국 한국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90년대 중반의 삼성은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카피를 헤드로 올린 소위 ’세계 1등‘ 혹은 ’세계 일류‘시리즈 광고를 그룹 차원의 캠페인으로 전개했었다. 그렇게 1등이 되어야만 살아남는다는 것과 함께, 1등에로의 쏠림현상이 또한 심했다. 아르바이트생을 써서 자체구입을 하든 해서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등을 만들어 놓으면, 그게 바로 다른 사람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하여 정말 1등이 되는 그런 현상은 아직도 많이 나타난다. 아주 부정적인 묘사였지만, 1980년에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인들은 우두머리만 쫓는 야생 들쥐인)레밍‘에 비유했던 것에 우리는 흥분하긴 했지만 사실 얼마나 그 비유에서 자유로운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 쓰이는 ‘프리미엄’은 원래 영어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더 내포하고 있다. 우리에게 프리미엄이란 말이 익숙하게 된 것은 부동산 관련해서이다. 원래의 가격에 덧붙여지는 ‘윗돈’이란 뜻의 프리미엄이 ‘투자자가 장래 얻을 수 있는 미래가치의 현재시점에서의 가격과 현재 거래가격과의 차이’라는 경제학적인 의미를 압도하며 널리 쓰였다. 그렇게 익숙하게 된 프리미엄이란 용어는 가격뿐만 아니라, 더 고급스러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 발전되었다. 그러니까 익숙한 용어의 의미확장을 통하여 한국에서는 프리미엄이란 말이 광고에서 외국인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많이 쓰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프리미엄을 비롯해 한국의 광고에서 쓰이는 다른 영어들이 원래의 뜻과 다르다거나, 문법적으로 혹은 쓰이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흥분하거나 낯부끄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으나, 아래 같은 책의 저자의 말처럼 별로 그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아시아의) 광고에서 영어는 어색할뿐더러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는지도 불분명할 때가 잦다. 그러나 이런 용법들이 정확하지 않다고 문제 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광고는 영어 원어민을 겨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광고에 쓰이는 영어는 실제 영어라기보다 영어처럼 보이는 이미지에 더 가깝다.

 

대다수 아시아 국가에서 모든 지역 사회를 목표로 삼고 긍정적이고 도회적이며 국제적인 분위기를 담으려고 하는 광고들은 대체로 영어를 쓰는 경향이 있다....이런 류의 광고에서 영어는 다른 문화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서 쓰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여기서 방점이 찍힐 부분은 ‘영어처럼 보이는 이미지’다. 뭔가 더 좋고 앞서 가는 것 같고,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영어를 사용함으로써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런 이미지를 광고가 집행되는 지역의 목표고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 그런 광고들을 보는 사람들은 아래 글에서 보는 것처럼 유식하게 문법의 잘못을 지적하는 분들보다 광고의 본질을 보면서 너그럽고 재미있게 광고에서 쓰인 이상한 영어를 받아들인다.

 

일부 대만인들은 과도하게 엉터리이거나 ‘중국적’인 영어를 싫어하지만 대부분은 광고용 언어가 특수하고 완전하지 않은 언어라는 것을 이해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에 미국 애들을 대상으로 내 자신이 간이조사를 한 적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슬로건 하나를 주고 어떻냐 물어본 것이다. 그냥 전자제품 만드는 기업이라고만 얘기했을 때는 이들이 내용과 관련된 것들을 지적했다. 예를 들면 ‘무엇을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고객이 얻는 혜택이 나타나지 않았다’ 등등이다. 그런데 그 슬로건이 일본기업이라고 얘기를 하면 문법이나 표현이 이상하다고 얘기한다. 애플이 오랫동안 썼던 슬로건인 “Think different'를 일본이나 한국기업이 썼으면 문법이 어떻느니 하면서 논란이 일었을 것이다. 아마 왜 ‘different'란 형용사는 올 수가 없다는 둥 문법 따지면서 기업 내부에서 통과되지 못했을 확률이 아주 높다.

 

이제 그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 중국 애들보다 더 경전 한 자 한 자에 매여서 스스로를 얽어매던 그런 과거를 영어로 그 대상만 바꾸어서 또 다시 사람들을 혼내고 굴레를 씌우지 말자. 광고에서 더욱 마구 우리 식으로 영어 한번 맘대로 써보면 좀 그런 콤플렉스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까?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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