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의 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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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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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제일기획 사보에 김수영과 함민복의 시에서 광고를 중심으로 한 마케팅과 연계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구절들을 엮어서 졸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재밌고 색다른 시각으로 광고를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평가가 있어서, 아예 시에 나타난 그런 부분들을 묶어서 책을 내볼까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사실 아직은 그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어제 우연히 기형도 시인의 ‘빈 집’을 읽게 되었다. 기형도! 그만큼 극적으로 시대를 상징하는 죽음을 맞이했던 시인이 있을까? 심야극장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풍속도의 하나였다. ’자유‘가 위험한 단어로 비공식적으로 등재되어 있을 만큼 억압된 기나긴 생활을 지나 어둠 속에서 그나마 시혜처럼 내려졌던 시공간이 바로 심야극장이었다. 통행금지나 ’남녀칠세부동석‘과 같은 긴 압제된 시공간과 관습이 끝나는 희미한 탈출구의 하나처럼 여겨졌으나, 그런 자유의 바람이 충만한 시공간과는 거리가 멀게 어두움이 주인처럼 행세하게 되었다. 희망의 씨앗 하나 소중히 품고 들어가 줄기로 키워보려다가 몇 날 밤을 두고 젖어든 축축함과 시큼하며 고약한 냄새 속에 이내 떨쳐 도망치듯 나가거나 거기에 몸을 내맡겨 버리는 양자택일이 강요되고 있었다.  
그런 곳으로 찾아 들어갔던 기형도 시인의 마지막이 되었을 밤이 너무나 안쓰럽다. 관객들이 꽤 들어차 팝콘과 콜라가 막간의 대화처럼 오고가는 심야극장이란 먼 훗날의 화려한 블록버스터를 기다려야 했다. 그 시절의 심야극장은 듬성듬성 자리가 차 있고, 거기에 혹여 애달픈 사랑을 만들려 애쓰는 연인들이 있어도 ’빈 집‘과 같은 곳이었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이란 구절이 특히 내 가슴을 후벼 판다. 그 열망들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광고였다. 또한 그 열망들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광고는 속삭였다. 특정한 소비를 예찬하는 시대에 그런 소비를 할 수 없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호흡할 수 있는 그런 공간에 대해 ‘80년대 그 섣부른 시대의 시인은 스스로 문을 잠그는 수밖에는 없었나보다. 뒤늦게 광고하는 이들이 ’진정성‘을 외친다. 그래도 그 소리의 크기만큼이나 광고하는 사람들은 심야극장에서의 한 시인의 너무나 이른 죽음에 책임이 있다. 그 소리조차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는 촛불처럼 흐느적거리는 밤이지만, 더 이상 어느 곳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자를 위한 열망의 노래는 부르지 말자.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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